브라질에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되는 이유
브라질에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되는 이유
  • 칼럼니스트 황혜리
  • 승인 2020.01.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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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브라질 육아] 한국에서 느낀, ‘배려’를 빙자한 ‘차별’ 

아이와 함께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친한 언니를 백화점에서 만났다. 아이들은 각각의 유모차에 태우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는데, 언니가 다른 곳으로 가자는 것 아닌가?

“언니, 엘리베이터 기다려야죠?”

“응. 근데 저쪽에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어.”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라고? 언니를 따라가 보니 진짜로 유모차 표시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나는 그 엘리베이터가 굉장히 낯설었다. 브라질에는 이런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선 못 본,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 ⓒ황혜리
브라질에선 못 본,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 ⓒ황혜리

◇ 배려와 감사가 자연스런 브라질… 배려 바라면 '맘충' 소리 듣는 한국

내 글을 계속해서 봐온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브라질은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에 대한 배려문화가 한국보다 잘 되어 있다며? 그런데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없다. 왜냐하면,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배려문화가 당연해서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 자체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아기를 데리고 있는 사람(유모차를 가지고 나온 사람 포함)들이 먼저 탈 수 있도록 자연스레 양보해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모차를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배려를 바라면 ‘맘충’이라고 욕을 한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단 듯이 얄밉게 “원래 엘리베이터는 유모차가 먼저 타는 거예요!”라면서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가는 부모들은 욕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태도의 문제이니 말이다.

브라질에서는 양보를 받는 사람도 그 양보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억지로 엘리베이터에 밀고 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양보를 받으면 감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라면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서 조금은 양보해주는 게 어떨까?

첫째, 일단 유모차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사람 한두 명 정도는 엘리베이터가 꽉 차 보여도 한번 타보려는 시도라도 할 수 있지만, 유모차는 시도 자체가 어렵다.

둘째, 유모차를 가지고 있으면 엘리베이터 말고는 건물 내에서 층간을 이동할 방법이 없다. 유모차가 없다면 그냥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한두 층 정도는 계단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유모차를 가지고 나온 사람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면 유모차는 접어서 손에 들고, 아이와 그 외 짐도 이고 진 후 타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가 1~2kg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한쪽 팔로는 아이와 짐을, 다른 한쪽 팔로는 유모차를? 계단은 당연히 엄두도 못 낸다.

◇ 유모차 갖고 나온 사람들에게 조금만 아량을 베푸는 사회가 될 순 없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유모차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타기 힘드니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를 만든 게 아니냐고. 그러면 당연히 그 사람들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우선 이용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어찌 보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건물의 수많은 엘리베이터 중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는 과연 몇 개나 될까? 많아야 한두 개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필자가 한국에서 봤던 백화점은 층마다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정도 있었고, 곳마다 엘리베이터가 서너 개씩 있었는데, 그중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는 단 한 개뿐이었다. 

말인즉슨, 유모차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우선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라도 빙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전용’을 빙자한 차별이 아닐까? 심지어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에는 유모차가 없는 일반인들이 타는 경우도 많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에스컬레이터 딱 한 번만 타고 내려가면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가 있어도 에스컬레이터는 탈 수 없다. 빙 돌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이 꽉 차 있으면 어김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엘리베이터에 공간이 생길 때까지.

배려문화가 한국에 단숨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점차적인 단계가 필요하며 그 과도기에서 생긴 것이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라는 것도 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생긴 제도라면 제도라도 잘 지켜주는 건 어떨까? 유모차 없이 다니는 일반인이라면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다른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또한, 일반 엘리베이터 앞에서 유모차를 가지고 나온 부모를 본다면 자기 자식이 미래에 겪을지도 모르는, 혹은 자신의 부모님이 겪었던, 혹은 지인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 생각하고 조금만 양보를 해주는 건 어떨까?

*칼럼니스트 황혜리는 한국외대 포르투갈(브라질)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브라질에서 두 살 아들을 기르고 있는 엄마입니다. 브라질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이 문화들을 한국과 비교하고 소개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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