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엄마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중 한 유형은 ‘죄송합니다’ 유형이다. 마음이 짠하고 아픈, 고개 숙인 부모님들. 뭐가 그렇게 죄송하고 미안한지, 늘 사과를 달고 산다. 이를테면, 아이의 일과를 알림장에 그대로 적어서 보내면 전화가 온다.
"오늘 00이가 기분이 좋았는지 웃으면서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어요.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금방 다른 종이를 주었지만, 벽에 그리는 것이 더 즐거웠는지 제가 준 종이에는 그리지 않았답니다."
이런 글을 교사가 써서 보내면, 부모는 알림장을 보자마자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낸다. 더 나아가서는 도배 값을 물어주겠다는 분도 종종 계신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선생님은 알림장에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고 하셨다.
어떤 날은 아이가 어린이집 문을 열고 뛰어나가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는 교사회의를 열어 자동으로 문이 잠기는 보안업체와 계약 하기로 했다. 그날 어린이집을 뛰쳐나간 아이의 어머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하겠다고 했다.
“왜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수습 비용을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냐”고 물어보니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내 아이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 언제까지 "죄송합니다"만 하시렵니까… 더 뻔뻔하게 세상에 요구해도 됩니다
세상이 변하고 변해 ‘복지’의 이름으로 ‘국가’가 아이를 ‘키워주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도, 장애아이들, 그리고 느린 아이들의 부모는 그 세상에서 자신들이 열외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 느린 아이들, 그리고 다른 아이들보다 손이 좀 더 많이 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까지 성공했다면 몇 개월마다 한 번씩 난관이 찾아온다.
갑자기 아이를 데리러 오는 시간을 바꿔야 할 때, 늦게까지 보육을 부탁해야 할 때, 여름과 겨울 교직원 휴가 기간에 등원시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등. 이럴 때 교사가 조금만 불편한 내색을 비추면 금방 다른 베이비시터를 알아보고 시골 어르신들을 모시고 와서 해결한다.
그래, 사실 나도 어린이집 원장인지라, 휴가 기간에는 최소한의 아이만 등원하게 하고, 최소한의 교사를 배치해, 이렇게라도 교사가 연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노력해주는 부모들이 한없이 고맙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아이를 키우다간,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도 이 시스템이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불편함은 있다. 이제 열세 살이 되는 내 딸아이가 엄마가 되었을 때도, 어린이집들이, 유치원들이 현재의 모습이라면, 내 딸아이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을까? 먼저 살아본 엄마로서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한다.
“좀 더 뻔뻔해지세요. 좀 더 뻔뻔하고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그럼 제가 안 됩니다! 라고 이야기할 거에요. 교사 휴가는 줘야 하고, 보조교사는 없고 등등 안 되는 백 가지 이유를 이야기할 거에요. 그럼, 부모님들은 더 당당하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세요. 답 안 나오는 어린이집에 부탁하지 말고 우리같이 손잡고 시청이든 보건복지부든 찾아가서,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 우리 아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보조교사 인건비 지원하라고 더 크게 외쳐야 해요.”
내가 느린 아이의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이 아이들을 잘 키우도록 부모들과 ‘원 팀(One Team)’이 되는 것이다.
◇ '느린 아이의 부모' 말고, 그냥 '부모'로만 살아도 충분합니다
뻔ᄈᅠᆫ한 부모가 될 준비가 됐다면, 이젠 아이를 맡겨놓고 그 시간을 즐기며 재미있게 살면 된다. ‘느린’, ‘장애’의 이름을 내려놓고 ‘아이’ 먼저 보라고 하는 것처럼, 부모도 마찬가지다. ‘느린 아이의 부모’, ‘장애 아이의 부모’라는 이름을 벗고, 그냥 ‘부모’만 하면 된다.
비장애아 부모는 사실 잘 먹이고, 깨끗하게 입히고, 충분히 안아주면 ‘좋은 부모’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하나의 굴레가 더 씌워지는데, ‘엄마가 노력해야 느리지 않은 아이가 될 수 있다’는 주변의 오지랖 넓은 참견들이다.
다양한 유형의 부모를 만나본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아이를 잘 가르치고 매번 달콤하게 안아주며 다소 ’닭살‘돋는 사랑 멘트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재주가 있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아이 돌보는 일보다 밖에서 내 일을 하는 게 더 즐거운 부모, 세상 육아만큼 힘든 일이 없는 부모도 있다. 아이를 낳았다고 그 성향이 한순간에 바뀌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부모들이 부모의 자질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배 아파 낳았으면 부모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고, 의식주 해결해주고, 종종 사랑의 표현을 해주면 ’평타‘는 치는 부모가 된다. 아이의 발달과 상관없이 모든 부모는 그래야 한다. 엄마가 노력해야 아이가 좋아진다는 압력은 사실, 좀 잔인하고 가혹하다.
느린 아이를 키우면 내 적성에 맞지 않아도 아이를 붙잡고 치료사가 시킨 과제대로 뭔가 애한테 시켜야 하고 성취를 끌어내야 좋은 부모가 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언젠가 부모들을 대상으로 집단 미술치료를 하는 날이었다. 가족화를 그려보라고 했는데 놀랍게도 열에 한두 명은 엄마, 본인이 없다. 왜 안 그렸냐고 물으면 “아, 제 얼굴도 그리는 거였나요?”라고 되묻는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사느라 ‘나’를 돌아보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잃어버린 내 삶을 되찾는 것은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먼저 행복해지는 것, 즐겁고 유쾌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부모가 즐겁게 살면, 아이는 느림과 장애와 상관없이 ‘사는 일은 즐거운 일’이라고 인식할 것이다.
삶에 대한 교육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어차피 아이보다 오래 살 확률이 낮다. 부모가 된 우리도 오늘날까지 세상을 살면서 ‘공부 잘 하는 놈이 가장 행복한 놈은 아니’라는 세상의 진리 정도는 파악하지 않았는가.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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