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킹맘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한다. 그리고 퇴근 후 다시 어린이집에 가 아이 하원을 마치면 급하게 저녁을 해서 먹이고, 조금의 놀이를 한 뒤 씻기고 재운 후 회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업무를 마무리한다. 그러면 나의 하루가 끝난다. 엄마가 워킹맘이 되고 난 후 우리 아이, 영이의 자유롭던 일상에는 시간의 제약, 엄마 체력의 한계가 더해져 평소에 없던 규칙들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등원 전 2~3개씩 여유롭게 보던 EBS 프로그램도 엄마는 이젠 한편만 보고 나가자고 한다. 가끔은 한편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며 호시탐탐 TV를 끄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늘 영이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하고 싶은 방법으로 실컷 했는데, 요즘 엄마는 자꾸 “종이에만 하자”, “조금만 하자”, “매트 밖으론 나가지 말자” 등의 규칙을 만든다.
이전에는 영이와 놀이를 즐기며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시도를 일삼던 엄마가, 지금은 어떻게든 놀이의 시간과 공간, 방법을 축소하려 한다. 같이 놀자는 영이의 말에 엄마는 “응, 그래”, “응~영이가 해봐” 같은 성의 없는 대답만 하고 자꾸 흘려듣기 일쑤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집안일 때문이다. 복직한 지 이제 일주일인데, 영이에겐 벌써 엄마와 있는 시간이 불편해져 버린 듯하다.
“영아, 언제까지 할 거야?”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
엄마인 내가 힘들어서다.
일주일 동안 사실 아이가 불편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우리가 소소하게 만끽하던 일상에 문제가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동료들과 나의 근황을 나누며 요즘의 우리를 이야기하고 보니, 아이가 느꼈을 불편감과 불안감을 내가 무시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모도 사람인지라 주어진 환경, 처한 상황, 감정에 따라 행동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하물며 내가 아이에게만 예민했을까? 분명 남편에게도 예민했을 것이며, 어쩌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에게 하는 행동과 표현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그럼 이 문제를 누구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영이와 나의 관계를 권리주체자와 의무이행자의 관계로 연결해봤다.
권리주체자인 영이, 그리고 의무이행자인 나는 영이를 위해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직장 복귀는 의무이행자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의무이행자의 역할을 확장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의무이행에 어려움이 있을 때, 엄마의 어려움을 아이에게 사정하고, 하소연하고, 다그치기보다는 또 다른 의무이행자인 남편,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고 방법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방법을 찾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치열하게 긍정적인 방법을 찾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지속 가능한 업무와 아이도 엄마도 즐거운 육아를 고민하기로 하였다. 지금 이 시대 아이의 양육은 '가정'만이 아닌 '직장'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영이의 권리를 위해 기꺼이 의무이행자로 함께 해주길 자처한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칼럼니스트 이미연은 아동인권옹호활동을 하는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연구원으로,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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