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말에 귀가 아닌 '눈' 기울이는 엄마 이야기
아들의 말에 귀가 아닌 '눈' 기울이는 엄마 이야기
  • 칼럼니스트 이샛별
  • 승인 2020.06.02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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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엄마는 지금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아

나는 선천적으로 달팽이관 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소리’라는 건 당연히 없는 것인 줄 알았다. 다만 나는 소리를 ‘빛’과 ‘진동’으로 느꼈다. 그러니 청각을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빛이 적은 곳을 걷는 일, 밤늦게 다니는 일이 두려웠다. 

유난히 청개구리로 살아가고 싶었던 나의 어린시절. ⓒ이샛별
유난히 청개구리로 살아가고 싶었던 나의 어린시절. ⓒ이샛별

‘수어(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 사이에서 쓰이는 몸짓과 손짓에 의한 의사 전달 방법. 손가락이나 팔로 그리는 모양 및 그 위치나 이동에 덧붙여, 표정이나 입술의 움직임을 종합한다)’를 만나기 전 내 습관은 늘 같았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도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 신경 써야 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가장 먼저 ‘입 모양’을 봤다. 입 모양에 이어 표정까지 번갈아 보며 흘러가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열심히 유추해야 했다.

그래서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 시선이 왜 자신들의 입에 머물러 있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청각 장애가 있음을 밝히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후 충주 성심학교에서 입술을 읽는 ‘독순 교육’을 받았다. 그 이후 엄마 아빠의 ‘입 모양’이, 사람들의 ‘입 모양’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입술의 움직임을 읽어가며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네게 사랑을 말하고 싶은 마음만큼, 엄만 지금 너의 '말'이 보여 

우리 아들 예준이는 돌이 되기 전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두 살이 다 되어서야 ‘엄마’라는 말을 떼었단다. 친정엄마는 그때를 떠올리면 못내 미안해지고 아련해진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다.

나는 언어 습득 시기인 옹알이 시기가 지나고, 언어 훈련이 필요해 여섯 살 때까지 특수학교 유치부에 다니며 입 모양을 보는 방법과 내 목소리로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기간을 거친 농인들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우리 엄마 아빠는 내게 단호하지 않았고, 엄격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친근하게 언어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네가 하고 싶고, 보고 싶은 대로 자라면 충분해"라는 태도로 나를 격려해 준 부모님 덕분에 나도 부모의 언어와 문화를 체득하려 애썼다. 그렇게 나의 첫 언어는 수어가 아닌 한국어가 될 수 있었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성장한 농인 자녀에게 첫 번째 언어는 수어가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나는 내 가족이 쓰는 언어가 한국어인 만큼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접하게 됐다. 

요즘 '소리의 세계'를 알아가는 아들 예준이. 나는 그런 예준이의 언어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샛별
요즘 '소리의 세계'를 알아가는 아들 예준이. 나는 그런 예준이의 언어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샛별

지금 나는 소리의 세계를 알아가는 예준이의 언어를 존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준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두 가지의 언어를 접했다. 소리의 세계에서 쓰는 언어인 한국어와, 부모의 언어인 한국수어를 번갈아 사용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축복을 누렸달까.

물론 예준이는 앞으로 자라면서 부모의 언어와 사회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데에 많은 혼란이 있을 것이고, 큰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엄마로서 그 점이 참 미안하다. 농인 부모에게 자란 아이 예준이가 앞으로 사회에서 받을 차별은, 내가 그동안 받아온 차별과 또 다른 종류일 것이라는 짐작밖에 할 수 없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봐 온 우리 부모님의 마음도 이런 심정이셨을까.

‘농인 부모’를 향한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을 예준이가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에 최선을 다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엄마다. 나는 아들에겐 엄마고, 남편에겐 아내다. 그들과 눈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며 진정어린 마음이 가닿을 수 있게 노력한다. 

오늘도 나는 아들의 입 모양을 보며, 이 아이가 지금 내게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맞춰 나간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 내게 늘 사랑을 ‘말’해주고 싶었던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내 마음속에 쏙 스며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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