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사람을 피해야지, 사람이 차를 피해 다니면 되겠습니까?
차가 사람을 피해야지, 사람이 차를 피해 다니면 되겠습니까?
  • 칼럼니스트 김나희
  • 승인 2020.06.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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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정보 거기 서!] ‘보행권’은 운전자 아닌 보행자를 위한 권리입니다 

빨리 이동하는 것이 중요할까, 사람의 생명이 중요할까?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자동차는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늑한 공간이지만 자동차 밖의 사람들에게는 ‘달리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빨리 달리다 보면 사람 치는 사고가 날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신 듯합니다. 이렇게 ‘자동차 우선’인 운전자들이 많아서일까요, 보행자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인구 10만 명당 평균 보행 사망자는 1.0명인데, 우리나라는 3.3명에 달합니다. 특히 주거 및 상업지역의 보도·차도 공통 이면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그 빈도수도 잦고, 피해도 큽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자동차 수는 비슷하지만, 보행사망자가 우리나라의 1/3 수준인 나라는 어떤 점이 다를까요?

보행자 우선 구역에서도 사람이 먼저 차를 피해야 합니다. 이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베이비뉴스
보행자 우선 구역에서도 사람이 먼저 차를 피해야 합니다. 이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베이비뉴스

우선 그런 나라에서는 운전자들이 보행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사회 운동이 최소한 60년 이상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그 결과 ‘자동차는 자전거와 보행자를 보호하고 자전거는 보행자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정책과 법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정책과 법규는 ‘보행자 우선주의’라는 사회 통념으로 자리 잡았지요.

유럽의회에서는 1988년 제정한 보행자권리헌장(European Charter of Pedestrian Right)을 채택하여 ‘보행자가 도로 및 생활공간에서 신체적, 정신적 복지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매연과 소음 등이 없는 건전하고 건강한 환경과 공간에서 살 권리’를 명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보행권이 법적 개념이 되었지만, 아직도 「도로교통법」이 기본이기 때문에 보행자는 차량의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 되고, 사람과 차가 다니는 이면도로에서도 길 가장자리로 통행해야만 합니다. 횡단보도가 있을 때는 횡단보도로만 가야 하고, 차의 바로 앞이나 뒤로 횡단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보행자 우선 구역이라고 해도 사람이 차를 피해 다니는 것이 기본으로 되어 있고, 골목길이라고 해도 놀거나 눕거나 앉거나 서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게 당연하지 않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행권이 법적,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나라에서 보행자 우선구역은 그야말로 ‘보행자 우선’입니다. 사람이 차를 피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차가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합니다. 사람이 보차 공통의 이면도로 한가운데를 걸어가면 차는 사람 뒤를 조심조심 따라가야 합니다. 횡단보도가 아니라도 사람이 차도를 건너가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면 차는 무조건 멈춰 섭니다. 

또, 이런 나라는 사람이 길에서 놀 권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이면도로와 비슷하지만, 우선권이 역전된 이런 공간을 ‘공유공간’(shared space)이라고 불립니다. 아예 도시 전체가 공유공간인 독일의 봄테(Bohmte) 같은 도시도 있습니다. 모든 도로가 한국의 어린이보호구역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보행자를 보호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조차 "그럼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피하란 말이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대답은 명쾌합니다.

"응. 아이들은 용수철같이 튀어나오니까 그것까지 살펴서 방어 운전해!" 

실제로 스위스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스터에는 어린이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오니 늘 주의하여 어린이 보행자를 보호하라는 내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스위스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스터. 어린이들은 스프링처럼 튀어나오니 미리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김나희
스위스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스터. 어린이들은 스프링처럼 튀어나오니 미리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김나희

보행자 ‘전용’ 도로를 늘리고, 보행자 ‘우선’ 도로는 20km/h, 10km/h, 또는 보행자의 걸음걸이 속도 이하로 차량 속도의 제한을 강화하여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 교통약자를 포함한 보행자가 도로 위에서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행권의 핵심입니다. 자동차 이동을 제한하면 지구온난화와 도시 매연과 소음도 억제할 수 있고 보행이나 자전거로 닿을 수 있는 작은 공동체도 살아납니다.

“보행자 우선이라니, 그러면 자동차 더러 기어가라는 소리냐?”라는 말에 경쾌하게 대답해봅시다.

“응! 자동차는 기어가라는 소리야. 사람 나고 차 났지, 차 나고 사람 났냐?”

*칼럼니스트 김나희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한방내과 전문의)이며 국제모유수유상담가이다. 진료와 육아에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 둘 다 필요하다고 믿는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고 직접 자료를 뒤지는 성격으로, 잘못된 육아정보를 조목조목 짚어보려고 한다. 자연출산을 통해 낳은 아기를 42개월까지 모유수유했으며,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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