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다섯 시, 워킹맘이 찾은 ‘오프’ 스위치
매일 새벽 다섯 시, 워킹맘이 찾은 ‘오프’ 스위치
  • 최규화 기자
  • 승인 2020.10.19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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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 이혜선 작가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를 쓴 11년차 워킹맘 이혜선 작가.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를 쓴 11년차 워킹맘 이혜선 작가.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기자님도 육아휴직 꼭 하세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자 이혜선 작가가 한 말이다. 육아휴직을 할까 말까 고민 중이라는 기자에게, “강력 추천!”이라는 말로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 작가의 SNS 닉네임은 ‘이틀’이다. 하루를 이틀처럼 산다는 뜻. 19년 경력 직장인, 11년 경력 워킹맘인 이 작가는 일, 육아, 살림의 ‘1인 3역’ 워킹맘 생활에 잠시 쉼표를 찍고 육아휴직 중이다.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호우, 2020년)는 이 작가가 쓴 ‘워킹맘 리얼 생존기’다. 그 스스로 “흔히 기대할 법한 원더우먼 같은 워킹맘의 이야기가 아닌”(6쪽) 이야기라고 소개하는 책. “워킹맘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들과 마음의 소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았다”(6쪽)는 것이 이 작가의 설명이다.

하루를 이틀로 살아야 하는 1인 3역의 바쁜 삶 속에서 이 작가가 “행복과 불행의 반복이었던 출근길,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부부 사이, 때때로 사막 같았던 내 마음”(6쪽)에 대해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21일 서울 역삼동의 한 찻집에서 이 작가를 만나 워킹맘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 일, 육아, 살림의 1인 3역을 하는 와중에 글까지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둘째 임신했을 때였는데, 어딘가 하소연할 데가 필요했어요.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친구를 붙들고 얘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잖아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내 감정을 쏟아내는 데만 급급했어요. 그렇게 쓰기 시작했는데, 저랑 비슷한 분들이 많아서 서로 댓글도 주고받고 했죠.

그러다가 점점 더 정화된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런 글들이 가끔씩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라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글쓰기의 맛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성취감과 존재감.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나만의 사적인 것. 글쓰기는 저를 직장인이나 엄마가 아니라 ‘인간 이혜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도구였어요.”

- 글을 쓰는 건 의지만으로 안 됩니다. 시간이 필요한데요, 시간은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새벽에 일어나요. 그때 글이 제일 잘 써져요. 매일 다섯 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씩 글 쓰고, 글이 잘 써지든 안 써지든 일곱 시 되면 컴퓨터 딱 닫고 애들 밥 주고 출근 준비하죠. 밤에는 늦어도 열 시에는 애들하고 같이 자요. TV 볼 시간이 거의 없어서 누가 드라마나 연예인 얘기를 하면 잘 못 알아들어요.(웃음)” 

새벽에 일어난 다음부터, 정확히 말해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난 다음부터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훨씬 더 너그러워졌다. 고요하고 따뜻하게 나를 쓰다듬고 위로하며 마음이 여유로워진 덕분일까? (…) 성공과 인정을 위해 아득바득 살던 나는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다.(138쪽)

◇ 지금 워킹맘에겐 ‘뇌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혜선 작가가 쓴 ‘워킹맘 리얼 생존기’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이혜선 작가가 쓴 ‘워킹맘 리얼 생존기’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책 제목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워킹맘들은 어떤 스위치를 ‘오프(OFF)’ 해야 할까요?

“머릿속에 온/오프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출근하면 회사 온, 집 오프, 이렇게 돼서 집은 까맣게 잊고 일만 하다가,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반대로 온, 오프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스위치도 일과 육아 사이에서만 쓰는 거잖아요. 일이든 육아든 모든 스위치를 다 끄는 시간도 필요했다는 걸 알았어요.

새벽에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그 때문이에요. 나만의 오프 스위치를 찾은 거죠. 자기계발? 아침형 인간? 그런 목표가 있는 게 아니에요. 새벽에 혼자 있는 게 정말 좋아요. 매일같이 글만 쓰지는 않거든요. 책을 읽기도 하고, 해 뜨는 거 멍하게 보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필요하더라고요. 뇌를 비우는 시간.”

- 영화의 예고편처럼, 책에 실린 글 가운데 딱 한 편을 미리 보여줘야 한다면 어떤 글을 고르시겠어요?

“아무래도 책 맨 앞에 있는 서문이죠. 제 책은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애들을 잘 키웠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고, 대단하지 않은 인생이 버텨온 이야기죠. 워킹맘들이 성취에 집중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뭔가 잘 안 되는 날에는 자괴감에도 더 많이 빠지는 것 같고요.

저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 특히 저 같은 워킹맘들한테, 너무 멀리 있는 목표를 따라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모두 적당히 애쓰면서 적당히 빛났으면 좋겠어요. 회사에서 승진이 안 되더라도, 특별히 화려한 삶을 살지 않더라도, 내 삶은 내 스스로 빛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을 나누고 싶었어요.”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상담을 했는데,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담임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림 속에서 아이와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할머니와 아빠였고 엄마인 나는 한참 떨어진 곳에 아주 작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 엄마의 빈자리를 이렇게나 크게 느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65쪽)

- 책에 기록된 여러 날 가운데, 어린이집 학부모 상담 날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난 것 같아요. 제 상태가 좀 괜찮았다면 ‘좀 더 신경을 써야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지쳐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도 당황하시면서 ‘하루에 10분만 안아주시면 돼요’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10분의 시간이 안 나는데…. 집에 오면 너무 지쳐 있으니까 체력이 없어요.

정말 체력이 안 되면 10분 찐하게 놀아주는 것도 힘들거든요. 그래서 그날을 계기로 회사에 전배 신청을 했죠. 야근이나 출장이 적은 사업장으로. 직장생활을 계속하려면 거기 있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거기는 직원 50명 중 여성이 3명밖에 없었어요. 엄마가 되고 나서도 머물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던 거죠.”

가까운 미래에는 ‘아이 키우면서 다니기 좋은 직장’을 넘어 ‘아이 키우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회사와 가정은 두 마리 토끼가 아니다. 이 둘은 충분히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고, 그럴 때 더 높은 능률과 안정이 찾아온다.(68쪽)

◇ 대단하지 않은 워킹맘 이야기… “삶은 스스로 빛난다”

지난달 21일 이혜선 작가를 만나 워킹맘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21일 이혜선 작가를 만나 워킹맘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글쓰기 소모임 활동도 하신다고요. 글을 쓰고 싶다, 책을 내고 싶다고 묻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되는 일이에요. ‘매일 글쓰기 모임’은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모임이에요. 글은 정해진 시간에 매일 써야 실력이 는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글이든 매일 쓰고, 서로 체크해주는 거예요. 아무리 바빠도, 글쓰기니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 욕구는 다른 걸 넘어서는 것 같아요.

‘저도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그냥 쓰면 된다’고 대답해요. 일단 글을 쓰면서 익히는 거지, 기술부터 익힌다고 글이 써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무엇보다 먼저 ‘쓰는 행위’가 이뤄져야 돼요. 그게 없으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죠. 일단 글쓰기 근육이 붙어야 그 다음이 가능하니까.”

아이는 계속 울면서 주저앉았다. 하는 수 없이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한 팔로 아이를 안고 걸었다. (…) 길거리에서 우산을 내팽개쳐놓고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엉덩이를 때렸다. “왜 울어! 울고 싶은 건 나야! 네가 왜 울어!” 그러고는 길거리에서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다.(182~183쪽)

- 딱 한 번 타임머신을 타고, 워킹맘으로 산 지난 11년 중 하루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시겠습니까?

“비 오는 날 저녁에 퇴근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다가, 길에서 아이랑 같이 비를 맞으면서 엉엉 운 날이 있어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집에 안 가겠다고 우는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카페나 식당에 가서 맛있는 걸 사먹고 갈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아이에게 재촉했을까?’ 싶어요.

아니면 남편한테 ‘오늘은 당신이 좀 데리러 가줘’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는데,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내 틀에 나를 맞추려고 너무 무리했던 거죠. 돌아간다면 더 여유를 가질 것 같아요. 이제는 많이 바뀌었어요, 저도.”

- 끝으로 이 책에서 작가님 제일 좋아하는 문장을 한 문장만 꼽아주세요.

“어렸을 때, 제가 생각하는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동화 속에 나오는 희생적인 엄마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엄마가 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저는 제 머릿속 이미지만 생각하니까 엄마의 사랑을 느낄 새가 없었던 거죠. 엄마의 표현 방식이 달랐던 것뿐인데.

이 책에서는 ‘인생에 정답은 없다. 각자 다른 해답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42쪽)라는 문장을 꼽고 싶어요. 정말 평범한 문장인데, 평범하니까 사람들이 종종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우리 엄마들 역시 획일화된 모습보다는 각자의 방식, 각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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