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알고 어른들은 잊은 것, '매 순간을 천천히 걷는 법' 
아이들은 알고 어른들은 잊은 것, '매 순간을 천천히 걷는 법'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1.02.01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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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소울(2020)

평생 간직한 꿈이 이뤄지기 직전에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면?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는 유명 밴드의 피아니스트로 합류할 기회를 얻는다. 평생 기다려온 순간이다. 조는 너무 기뻐서 뉴욕 거리를 뛰어가다가 그만, 맨홀에 빠지고 만다.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꿈꾸던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는 기회를 잡게 되는 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꿈꾸던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는 기회를 잡게 되는 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죽을 고비를 넘겨 우여곡절 끝에 조가 도착한 곳은 태어나기 전 세상. 이곳에서 영혼들은 성격이 형성되는데 지구 통행증을 얻기 위해 채워야 할, 성격의 마지막 조각은 불꽃이다.

여기서 만난 '영혼 22'는 열정, 꿈에 해당하는 불꽃을 거부하여 태어나기 전 세상에 계속 머물고 있다. 태어나기 싫은 영혼 22와 다시 지구로 돌아가 약속한 공연을 미치도록 올리고 싶은 조. 둘은 지구 통행증을 두고 은밀한 거래를 하고 지구로 떨어지게 된다.

관성적으로라면 조와 영혼22가 합심해서 감동 스토리를 자아내는 게 맞는데, 어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관성적으로라면 조와 영혼22가 합심해서 감동 스토리를 자아내는 게 맞는데, 어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가 여기까지 진행되자 내가 관성적으로 예상한 결말은 냉소의 아이콘 영혼 22와 열정의 아이콘 조가 합심해 조가 성공적으로 공연을 올리는 것이었다. 오래도록 그린 꿈이 이뤄지는 훈훈한 그림, 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애니메이션!

그러나, 나의 예상은 얼마나 무성의한 것이었는지. 영화는 꿈을 이룬 후의 삶은 어떻게 살 거냐고 관객들에게 묻는다. 삶이 과연 꿈을 위해 존재하는 거냐고.

◇ '삶이 꿈보다 크다'고 알려줘야지…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바라던 대로 유명 클럽의 무대에 오르게 된 조... 그런데 영화는 묻는다. 삶이 과연 꿈을 위해 존재하는 거냐고.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바라던 대로 유명 클럽의 무대에 오르게 된 조... 그런데 영화는 묻는다. 삶이 과연 꿈을 위해 존재하는 거냐고.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오래 전 스무살 때 기억이 났다. 대학 입시가 끝나자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대학에 붙어서 물론 기뻤지만, 대학에 붙었다고 세상이 천지개벽하지도 않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내 앞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대학 입시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라고 외치던 기세 좋은 청소년이었는데도, 허무했다.

이게 내가 전력을 다해 달려온 경기의 끝인가? 사회는 20년간 대학 입시 외에 다른 길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런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사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어른들에게 배신당한 것만 같았다.

 ‘소울’이 꿈 대신 관객에게 내미는 것은 일상의 순간들이다. 지구처럼 지루한 곳이 어디 있냐던 영혼 22가 지구에 매혹된 순간은 자신만의 거창한 꿈을 찾았을 때가 아니었다.

영혼 22가 주머니 속에 넣어둔 물건을 보면 그가 지구라는 별에서 찾은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피자의 도우, 이발사 데즈와 신나게 대화하고 받은 막대 사탕, 뉴욕의 가을 바람에 날리던 여린 꽃잎.

인생은 꿈보다 크고, 삶은 꿈이 이뤄진 후에도 계속된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생은 꿈보다 크고, 삶은 꿈이 이뤄진 후에도 계속된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쌍둥이 아기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면 늘 이 아이들이 ‘무엇이 될까’를 상상했다. 조가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열렬히 꿈꿨듯이, 내 아이들에게도 꿈이 있었으면 했다. 아이들에게 삶의 가르침을 준다면 ‘무엇이 될지’ 꿈꾸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은 꿈보다 크고, 삶은 꿈이 이뤄진 후에도 계속된다. 꿈을 위해 전력질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온 사회의 메시지는 그놈의 ‘전력질주’에 치우쳐 있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조는 대답한다.

“글쎄요, 그냥 매 순간을 즐기면서 살 거예요."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지금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면 매 순간을 천천히 걷는 방법이다.

피아노를 치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피아노를 치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주변에 흩뿌려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을 지나치지 않고 잘 주워 주머니에 넣는 방법을 가르쳐줘야지. 이런 이야기를 원고에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주말에 아기들과 48시간 붙어 뒹굴다가 깨달았다.

아이들은 이미 순간을 즐기는 법을 알고 있다. 아기들에겐 오직 현재밖에 없다. 바다가 보이는 인천의 한 공원에 데리고 갔더니 둘이 나란히 서서 뚫어지게 바다를 바라봤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작은 갤러리에서 아기 그림을 보더니 (자기도 아가면서) 아가를 세상 처음 본다는 듯이 “아가, 아가?”라고 속삭였다. 내 품에 안겨 유리창 너머로 큰 달을 함께 보면서 “달!”이라고 외치고 달님에게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날마다 같이 찾아보며 인사하는 달인데 오늘도 새롭게.

꿈을 좇다가 현재를 잊는 것은 어른들이었다. 아기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현재를 살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아기들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 아니라 아기들에게 배워야 할 사람이었다. ‘소울’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불린다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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