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이 거의 없어 보청기를 착용해도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필자는 아이와 동행하는 길에서는 늘 전방주시를 하는 편이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에는 골목길 안쪽에만 바짝 붙어 걸었다. 언제 어디서 차와 오토바이가 나타날지 몰라 늘 예의주시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기진맥진할 정도였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보듬어 주었던 사람은 바로 내 옆에 있던 아이였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어린이집을 하원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아이는 어른보다 낫다”는 것을.
뒤에서 차가 오는 소리를 모르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오토바이 소리도 몰랐던 그때, 갑자기 강한 완력을 느꼈다. 알고 보니 엄마보다 먼저 듣고 알아챈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길 안쪽으로 피했다. 그 ‘완력’을 느낀 순간 배달 오토바이가 내 앞을 지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엄마! 오토바이!” “그래, 엄마는 몰랐네. 고마워.”
보청기를 착용해도 웬만한 큰 소리가 나지 않는 이상 잘 느끼지 못할 정도의 중증 청각장애는 아이와의 사랑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누릴 때 더 잘 보고, 더 바라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지켜줘야 하는 의무 앞에서 무뎌져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됐다. 효과가 없어도 보청기를 착용하고, 또 이전보다 예의주시하며 골목길을 한번 더 확인하는 습관을 길들여야 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쌩쌩 달리는 자동차와 버스, 그리고 킥보드까지...아이들의 생명을 자칫 위협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서 청각장애 엄마로서 고민은 날로 깊어졌다.
하지만 아이에게 안전교육을 철저히 하며, “엄마 손 꼭 잡아. 여긴 위험한 곳이야” 하며 눈빛과 몸동작을 크게 하며 천천히 설명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손을 힘차게 잡았다. 이런 시간이 계속되니 엄마의 손을 먼저 잡으며 엄마가 먼저 나서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의 모습도 보게 됐다. 출근 시간과 등원 시간이 촉박해 걸음을 재촉하면 할수록 길에서 만나는 위험요소가 늘어나는 걸 느낀 만큼 오늘도, 내일도 조금 일찍 길을 나서 천천히, 골목길의 풍경을 살펴보는 시간을 만들었다. “예준아, 오늘은 개미가 엄청 많이 다니네?” “어! 개미다~” 하며 천천히 길에 앉아 자동차가 오는지 확인하며 걸어보는 이 골목길의 풍경을 눈에 담아봤다. 어느 길에 자동차가 많이 다니고, 어느 길에는 오토바이가 자주 다니는지를 기억하며 아이를 지킬 수 있도록 동선을 확인하면서도 아이는 골목길의 숨은 풍경을 찾아다니느라 바빴다.
필자처럼 장애가 있거나 고령자와 여성, 영유아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이 와닿을 수 있도록 혼자서가 아닌 함께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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