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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굽 따라 굽이굽이 “놀멍 쉬멍 가시리 걷다 갑서양”

[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5. 시간이 멈추는 여행 ‘제주 가시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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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같은 오름에 둘러싸인 가시리 마을. 지평선과 수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활짝 트인 평원과 풍력발전기의 풍광이 이국적이다. ⓒ김재원
병풍 같은 오름에 둘러싸인 가시리 마을. 지평선과 수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활짝 트인 평원과 풍력발전기의 풍광이 이국적이다. ⓒ김재원

오름과 오름을 잇는 아름다운 숲길. 큰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을 잇는 아름다운 갑마장길. 유채꽃프라자와 조랑말체험공원을 잇는 녹산로의 유채꽃이 눈부신 제주의 동쪽 마을 ‘가시리’(加時里)를 아시나요? 가시리는 더할 ‘가(加)’와 때 ‘시(時)’. 시간을 더하고 늘려준다는 뜻만큼이나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인데요.

한라산 동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병풍 같은 오름으로 둘러싸인 가시리 마을이 나옵니다. 새것과 옛것이 함께 하는 마을은 한가롭고 여유로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표선면 면적의 42%의 대평원을 품은 마을은 제주마(馬)의 역사와 자연을 느끼며 색다른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시리 어느 곳에서든 지평선과 수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데 활짝 트인 평원에는 총 13개의 크고 작은 오름들이 있습니다.

몰테우리(말떼를 돌보는 목동)들이 가시리 대초원 곳곳을 다니며 말들을 키워내며 다녔던 옛길을 '갑마장길'로 조성했다. ⓒ김재원
몰테우리(말떼를 돌보는 목동)들이 가시리 대초원 곳곳을 다니며 말들을 키워내며 다녔던 옛길을 '갑마장길'로 조성했다. ⓒ김재원

조선시대에는 가장 최고의 등급을 가진 말을 ‘갑마’(甲馬)라 불렀는데요. 가시리에는 조선 최고의 말을 길러낸 ‘갑마장’(甲馬場)이 있었습니다. 1794년부터 1899년까지 약 100여 년간 최고의 말을 길러내기 위해 ‘몰테우리’(말떼를 돌보는 목동)들은 가시리 대초원 곳곳을 다니며 말들을 키워냈는데요. 말들이 다니던 옛길을 지난 2011년 ‘갑마장길’로 조성했습니다. 

거대한 초원을 가로지르는 약 20km의 ‘갑마장길’은 7시간 남짓 소요됩니다. 탐방 시간이 부족한 제주 여행길이라면, 갑마장길 중에서 걷기 좋은 코스만을 뽑아서 만든 ‘쫄븐갑마장길’을 추천합니다. ‘쫄븐’은 ‘짧은’이란 뜻의 제주도 방언인데요. ‘조랑말체험공원’에서 ‘가시천’을 거쳐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대록산)을 돌아본 뒤 ‘유채꽃프라자’를 거쳐 출발 지점으로 회귀하는 코스입니다. 길이는 약 10km. 3~4시간 정도면 충분히 탐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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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랑말체험공원에서 여행객들이 조랑말 타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재원
조랑말체험공원에서 여행객들이 조랑말 타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재원

쫄븐갑마장길 탐방 시작점인 조랑말체험공원에는 제주마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조랑말박물관’을 비롯해 조랑말 타기와 먹이주기 체험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조랑말체험공원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어 봄이면 유채꽃과 벚꽃이 가득해 축제가 열리는 녹산로 길옆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체험공원 안쪽에는 가시리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이 가능한 유채꽃밭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탐방길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풍력발전기는 바람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에서 재생에너지 생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요. 가시리 마을 주변에는 풍력발전기 20여 기와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 있는데 마을은 이들 시설에 땅을 임대하고 연 1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는데 수익 일부는 가구당 전기요금 지원이나 아이들의 장학금과 어르신들의 연금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쫄븐갑마장길 너머 큰사슴이오름(대록산). ⓒ김재원
쫄븐갑마장길 너머 큰사슴이오름(대록산). ⓒ김재원

조랑말체험공원을 출발해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한참 걷다 보면 오름의 여왕 ‘따라비오름’을 만나게 됩니다. 고(故) 김영갑 사진작가께서 즐겨 촬영했던 오름인데요. 따라비오름은 정상까지 25분가량 걸리는데 가파른 계단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멀리 한라산과 표선면 일대의 대평원과 풍력발전소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이 압권입니다. 따라비오름은 억새철에 가장 아름다운데 석양이 질 무렵 풍경은 제주의 약 370여 개 오름 중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난 곳입니다.

부구리(진드기)를 제거하는 부구리구제장. 부구리는 말과 소에 붙어 피를 빨아 먹는 해충이다. ⓒ김재원
부구리(진드기)를 제거하는 부구리구제장. 부구리는 말과 소에 붙어 피를 빨아 먹는 해충이다. ⓒ김재원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중잣성(목장 경계를 표시한 돌담)은 제주에서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잣성인데 그 길을 따라 아름다운 삼나무숲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쫄븐갑마장길 탐방이 여러 여건상 어려울 때는 이곳 숲길 탐방만 하셔도 참 좋습니다. 잣성을 따라 다채로운 풍경을 만끽하며 걷다 보면 가시리 오름 군락이 시원스레 펼쳐진 전경을 품고 있는 ‘큰사슴이오름’을 만나게 됩니다. 큰사슴이오름은 가시리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더욱 빛이 나는데요. 큰사슴이오름에서 내려서면 유채꽃 광장과 함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평원이 눈앞에 펄쳐 집니다. 유채꽃 광장에는 건물앞에 설치된 커다란 의자를 주변으로 인생 사진을 담으려는 여행객들로 늘 붐비는데요. 아름다운 경관을 뒤로하고 녹산로 옆 숲길1.6km를 산림욕 하며 걷다 보면 어느덧 출발지인 ‘조랑말체험공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갑마장길은 탐방객이 올레길보다 많지 않아 이정표를 잘 살펴 걸어야 한다. ⓒ김재원
갑마장길은 탐방객이 올레길보다 많지 않아 이정표를 잘 살펴 걸어야 한다. ⓒ김재원

갑마장길은 때로는 표지판이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는 경우도 있고, 차량 진입을 막는 용도로 표시해둔 것이 사람의 탐방도 금해놓은 것처럼 오해가 되는 구간도 있기 때문에 잘 살펴서 걸어야 합니다. 탐방코스가 넓고 길며 탐방객이 많은 코스가 아니어서 비가 오거나 늦은 시간에 걷는 것은 지양하고, 되도록 혼자 걷는 것보다는 두 명 이상 함께 걷는 것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시리마을은 2009년부터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와 카페 그리고 세미나실을 갖춘 ‘유채꽃프라자’를 비롯한 마을사업이 활발한 곳인데요. 마을 공동사업으로 운영 중인 ‘유채꽃프라자 카페’와 조랑말체험공원에 있는 ‘마음 카페’에 들려 지친 발걸음을 잠시 쉬어가도 좋습니다. 카페에는 공정무역 커피와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 재료들로 만든 ‘쑥떡 쑥떡’, ‘댕귤차’, ‘청귤에이드’ 등 다양한 먹거리와 음료가 판매중에 있는데 맛도 아주 훌륭합니다.

가시리 마을에서 마을사업으로 운영중인 '유채꽃프라자'. ⓒ김재원
가시리 마을에서 마을사업으로 운영중인 '유채꽃프라자'. ⓒ김재원

대초원과 삼나무 숲길, 오름과 오름 사이를 걸으며 때 묻지 않은 자연풍경과 함께 테우리막(말테우리 임시거처), 곤저리 왓 물통(말급수터) 등 제주 600년 목축문화를 만날 수 있는 갑마장길은 제주의 올레길과는 또 다른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제주를 여행 중이시라면 시간이 멈추어 있는 마을 가시리 어떠신가요?

말발굽 따라 굽이굽이 “놀멍 쉬멍 가시리 걷다 갑서양”(놀며 쉬며 가시리 걷다 가십시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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