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공부하는 11살, 영어도 하냐고요?
일본어 공부하는 11살, 영어도 하냐고요?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1.06.1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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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아이가 좋아하는 것 인정해주기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열 살 아이는 어쩌다가 일본어에 꽂혔을까. 영어 공부는 싫은데, 일본어는 좋다고 했다. 아니 영어 공부를 할 바엔 일본어를 하겠다고 한 거였나?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어딘가 싶어 일본어 학습지를 신청했다. 작년 가을의 일이다.

사실 우리 집 아이들은 둘 다 영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큰아이는 한자 학습지를 4~5년 정도 하더니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고, 작은 아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종종 봐서인지 일본어에 흥미를 느꼈다. 둘 다 반드시 해야 하는 영어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영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아이들 대답은 한결같았다. “싫어.” 굳이 안 해도 되는 외국어보다 영어를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지만, 그거라도 하겠다는 게 어딘가 싶어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수학처럼 답이 떨어지는 과목이 아니었다. 미루고 미루고 밀었다가 학습지 선생님이 오기 전에 몰아서 하는 일본어 공부가 무슨 효과인가 싶었다. 학습지 선생님의 일본어 실력도 크게 미덥지 않았다. 이런 일본어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하지만 그만두자니 그것도 아쉬웠다. 아이들 어렸을 때 한글에 흥미를 보이면 읽기와 쓰기를 시작하라고 했던 것처럼 나는 아이가 일본어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걸 놓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일본어 선생님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학원을 보낼 수도 없고, 과외 선생님을 집으로 오게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공부에 가까운 일본어 수업은 나도 아이도 원하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일본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 나는 해줄 수 없는, 아이가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궁금해하는 질문에 언제든 답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선생님 말이다. 가령 "거북이가 일본어로 뭐야?" 같은 질문에 즉답을 해줄 수 있는!

그날그날 도장깨기 하듯 올리는 숙제. ⓒ최은경
그날그날 도장깨기 하듯 올리는 숙제. ⓒ최은경

자주 가는 지역 카페에 이런 나의 고민을 올렸다. 어딘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은인이 나타났다. 온라인으로 왕초보 일본어 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열 살이면 너무 어려서 수업을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면 들어와도 좋다고 하셨다. 중학교 1학년 학생도 듣고 있다면서.

그렇게 시작된 온라인 수업을 올해 1월부터 6개월째 듣고 있다. 매일 오전 선생님이 미션을 내주면 그날까지 완료하면 되는 게 전부다. 아이가 진도에 따라 녹음한 음성 파일과 쓰기 숙제를 카톡으로 보내면 그다음 날 아침 선생님이 역시 카톡으로 피드백을 주었다. 틀린 발음을 지적해주고(이건 정말 좋았다!) 문법도 알려줬다(솔직히 나는 아이가 문법까지 알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숙제를 하다 모르는 게 생기면 즉각적으로 카톡으로 물어볼 수 있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나는 이게 제일 좋았다. 그건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거라 더 그랬다. 

1월은 방학이라 시간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이는 억지로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한 달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숙제를 매일 했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이모티콘(!!!)을 갖고 싶다고 했다. 2월에도 숙제를 거르지 않았다. 3월에도, 4월에도 그랬다.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는 이모티콘 부자가 되었다. 선생님은 다른 건 몰라도 매일 숙제를 빠뜨리지 않고 하는 아이의 정성을 높이 샀다. 그맘때쯤 올게 왔다. 말하지 않아도 하던 숙제가 점점 뒤로 밀리는 것 같았다. 힘든가 싶어 아이에게 물었다.

“일본어 언제까지 계속 할 거야?”

“음... 글쎄... 난 초보 과정만 하려고 했거든...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있는데 이제 갖고 싶은 이모티콘이 없어.”

“응? 너 이모티콘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숙제한 거였어?”

“일본어가 재밌는 것도 있었지만... 그런 이유도 있지 모.”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그리고 버거운 게 당연했다. 성인들과 중학생이 함께 있는 온라인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아이가 별 말을 안 해서 모른 척했을 뿐, 내가 봐도 숙제 양이 많아 보였다. 그래 뭐 이 정도 배워서 히라가나 외운 게 어딘가 싶은 마음에 선생님에게도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잘 가르쳐주셨는데... 아이가 이제 그만 하고 싶은가 봐요. 그래도 5월까지는 한다고 하니까, 그동안 공부했던 거 정리하는 식으로 마무리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아이고. 그렇군요. 아이가 힘들어하던가요?”

“네, 숙제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노는 시간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닌 듯한데...^^”

“아... 숙제가 많은 건 맞는데, 잘 따라오길래... 그냥 둔 건데...”

“그러셨어요?(웃음) 그러면 이번 달은 숙제도 조금 줄여주시고 복습 차원에서 지도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의 피드백. 이걸 보고 아이는 스스로 뿌듯해한다. ⓒ최은경
선생님의 피드백. 이걸 보고 아이는 스스로 뿌듯해한다. ⓒ최은경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일본어는 아직 진행 중이다. 숙제를 줄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숙제가 줄어드니 너무 좋단다. 아이는 더 갖고 싶은 이모티콘은 없지만, 일본어는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으면 아이가 기특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그래도 영어는 해야 하는데”라는 분위기가 반 이상이다. 물론 나도 아이가 일본어보다 영어에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긴 하다. 영어 공부는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다. 

아직은 아이가 하기 싫은 마음, 또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을 존중해주고 싶다. 5개월 동안 히라가나는 읽고 쓸 줄 알게 되었고, 가타카나는 반 이상 아는 정도라고 스스로 진단하는 아이. 속도야 아무렴 어떤가. 나는 히라가나도 못 읽는데... 나 열 살 때를 생각해보면 아이는 이미 나를 뛰어넘었다. 하기 싫은 건 손도 안 대는 아이가 매일 일본어 숙제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고, 내게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큰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도 느낀다. 역시 엄마가 아이 앞에 설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영어 공부는 안 시키는 거냐?”는 질문이 들리는 것 같아서 한 마디 보태면... 학원 안 가고, 학습지 안 합니다. 다만, 10페이지가량의 영어 그림책(페이퍼북)을 매일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게 하고 있어요. 그림책에 나온 단어를 외우라고 하지 않고 그저 하루 한번 읽기만 합니다. 크게 실력 향상을 기대하지 않고 합니다. 사실 읽어주는 것도 황송해요. 큰아이는 그것도 안 했거든요. 대신 아이가 잘 못 읽는다고 해서 답답해하거나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본의 아니게 엄마의 연기력이 레벨업 되고 있습니다. 아직 11살이니까요. 핫핫. 아, 물론 저도 엄마인지라 깊은 한숨까지는 피할 수 없더라고요. 하지만 어떻게든 아이와 싸우지 않고 잘 읽어나가 보려고 합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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