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에 필요한 공부
성교육,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에 필요한 공부
  • 칼럼니스트 김보민
  • 승인 2021.06.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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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아이 성교육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이는 언제나 바쁘다. 학교를 다녀오면 동네 친구와 놀이터에서 온 몸이 땀에 젖도록 뛰어 놀아야 한다. 실컷 놀고 집에 들어와서는 손을 씻기 무섭게 동생과 방안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 놀이도 했다가 비행기 놀이도 했다가 학교 놀이도 한다. 저녁을 먹고 씻고 자러 들어가서야 비로소 아이의 눈을 제대로 마주할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오늘 어땠냐고 물어보면 ‘좋았어’로 짧고 간결하게 답할지라도. 

나란히 누워 책 몇 권을 같이 읽고 방 한 쪽에 다 읽은 책을 쌓아 놓고 불을 끄기 직전이었다. 아이는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는 듯 나를 불렀고 불을 끄려 몸을 일으켜 세우는 나를 바라보고 배시시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엄마도 아빠랑 ‘그거’ 해?” 

뭔가를 곧바로 연상케 하는 손동작을 보여주며 ‘그거’를 하냐고 물어봤다. 연달아 한마디 더 한다.

“내 친구가 그러는데 동물들도 그 걸 한대.”

잠깐 머릿속이 하얘졌다.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지고 입을 뗐다.

“아 그거,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이런 이야기도 하는구나. 그렇구나. 오늘은 너무 늦었네. 이제 불 끄고 어서 자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작은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보통 때 같으면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옛날 이야기를 해주거나, 주말에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놀 지 이야기를 나눌 텐데 아무 말도 내뱉지 않고 아이들이 잠들기만 기다렸다. 

잠든 아이들을 뒤로하고 내 방으로 달려와 남편을 불러 앉혔다. 성교육을 해야 할 시점이 코 앞에 들이닥쳤다는 특급 뉴스를 알려줬다. 남편은 나보다 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말을 잃었다. ‘그거’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하는 것인지 지금 당장 알려줄 내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기에 우선 우리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아이에게 굳이 양말을 신겨주며 한마디 건넸다. 

“네 몸은 진짜 소중해. 다른 사람 몸은 그 사람에게 진짜 중요하고. 그래서 네가 네 몸을 먼저 사랑하고 소중하게 다뤄야해. 누군가가 네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불편하고 아프게 하는 건 옳은 게 아니야. 정말 잘못된 거지. 엄마, 아빠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네 몸을 아프게 할 수 없어. 알겠지?”

“응, 알아.”

스쿨버스를 타러 아빠와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무슨 말을 했는 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지금 당장 중요한가 생각도 해봤는데 무슨 말을 해줘야 할 지 몰라서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말들 같았다. 이마를 살짝 짚으며 한숨 섞인 ‘아이고’를 한번 내뱉았다. 아이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해야 하나. 큰 숙제 하나를 부여 받고 여태껏 끙끙거리고 있다. 

길다가 만나는 이파리 하나도 들여다 보는 아이 눈에 세상 사람들 사는 모습은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내가 어렸을 때 받은 성교육을 잠시 떠올려봤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커다란 노른자 같은 곳을 향해 헤엄쳐 달려오는 올챙이들을 영상으로 봤던 기억, 중학교때 친구들과 봉긋 올라온 가슴에 대해, 월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 브래지어와 생리대의 불편함을 토로했던 기억, ‘그거’를 어떻게 하는 지 알게 된 친구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설명을 귀 쫑긋하고 들었던 기억,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 한 살 어린 여동생에게 ‘그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온 몸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나에게 ‘그거’를 단도직입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 어른이 없었다. 내 곁에 있던 어른들은 나이가 차면 자연스레 ‘그거’를 알게 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거’를 어른이 나서서 알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아무도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 

세상에 끔찍한 사건 사고가 연일 뉴스를 뒤덮는 세상에서 아이에게 해야 할 성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내가 너무 많이 보여줘서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까 봐 불안하고, 이번 대화를 시작으로 아이가 호기심을 너무 많이 가질까 두렵고, 내가 먼저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것만 앞세우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성교육은 어디로 가야하는 지 방향을 잡는 것부터 내가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이와의 짧은 대화 이후 다행히도(?) 아이는 ‘그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나에게 시간을 준 셈이라 치고 서둘러 이것 저것 알아보러 나설 채비를 했다.

지난 주말도 어김없이 크고 푸르른 나무가 가득한 공원에 가서 반나절을 놀았다. 발을 굴려 그네를 타던 아이가 속도를 조금씩 늦추더니 멈춰서는 나를 바라보고 말을 걸었다.

“엄마, 엄마는 왜 프랑스 사람이랑 결혼 안 했어?
(내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프랑스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나에게 외국인은 프랑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이 없었어.”

“나도 엄마처럼 한국사람이랑 결혼해야 해?”

“아니, 너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랑 하면 돼. 꼭 한국 사람이랑 결혼 안 해도 돼.”

“엄마, 나 여자랑 결혼해도 돼?”

“응 너가 여자를 좋아하면 여자랑 결혼해도 돼.”

“엄마, 난 결혼 안하고 엄마랑 계속 같이 살고 싶어.”

“그래, 그럼 우리 계속 같이 살자.”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엄마, 아빠와 다른 모습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왜 한국 사람이랑 결혼을 했을까, 우리 엄마는 왜 남자랑 결혼을 했을까, 우리 엄마는 왜 결혼을 했을까로 질문이 이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온 세상이 초록인 곳에 머무를때면 아이들과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다.

아이에게 성교육은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배우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체가 되고, 그 수정체가 분열을 하면서 아이가 된다’라거나, ‘난자와 정자가 만나기 위해서는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 되어야 한다’가 아닌 것 같다. 섹스라는 행위에 성교육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다. (물론 이런 기본적인 지식은 반드시 제대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큰 성교육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 몸은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고, 내 몸과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 지 스스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해야 하는 성교육은 아이가 제 두발로 이 땅에 조금 더 단단하게 서기 위해 꼭 필요한,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나아가 충만한 감정과 삶에 대한 만족감을 찾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교육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나는 맴맴 도는 생각을 따라다니느라 정작 숙제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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