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세상 ‘제주 오름 이야기’
올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세상 ‘제주 오름 이야기’
  • 칼럼니스트 김재원
  • 승인 2021.06.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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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7. 제주 오름 탐방 – 민오름과 거슨세미오름

며칠 전 한림읍 금악리 방면으로 지나가던 중에 난데없이 교통체증이 생겨서 ‘무슨 사고가 난 건가?’ 싶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싶어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니 ‘금오름’으로 향하는 차량들이 갑자기 몰리면서 생긴 정체였는데요. ‘세상에나 언제 이렇게 금오름이 유명해졌나?’ 싶어 인스타그램을 열어보니 금오름에서 찍은 갬성 가득한 사진이 피드에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제주에 살면서도 금오름이 이렇게 핫하고 힙한 곳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걸 몰랐었습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멋지고 유명한 곳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일 텐데요. ‘맛집’이 있으면 주변 ‘옆집’도 있는 법! 오늘은 유명한 오름 옆에 있다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오름 두 곳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하루에 두 오름 모두 탐방해보실 수 있도록 위치가 서로 멀지 않은 곳으로 선정해봤는데요.

준비되셨다면 첫 번째 오름으로 떠나볼까요? 

민오름앞 벵듸(평편한 초원이라는 뜻의 제주어, 화산이 만들어낸 초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에서 풀을 뜯고 있는 제주마. 해질녁 민오름 앞 풍광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김재원
민오름앞 벵듸(평편한 초원이라는 뜻의 제주어, 화산이 만들어낸 초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에서 풀을 뜯고 있는 제주마. 해질녁 민오름 앞 풍광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김재원

먼저 가볼 곳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선흘리 ‘민오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어마무시한 타이틀 때문에 괜스레 주눅이 들지만, 석양이 질 무렵 민오름 앞 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제주마의 환상적인 풍경은 세계 100여 국을 여행해본 필자의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제주에는 민오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름이 다섯 개나 있는데요. 오라동 민오름, 봉개동 민오름, 선흘리 민오름, 송당리 민오름, 수망리 민오름이 바로 그것입니다. 민오름은 과거에 ‘민둥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어느 한 곳도 민둥산인 곳은 없습니다. 민오름 주소(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141)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도착할 때쯤 되면 누구나 당황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선교로(선흘-교래까지 가는 도로명) 한복판에서 갑자기 도착했다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때 당황하지 마시고, 왼쪽편에 수줍은 모습으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민오름을 확인하신 뒤,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진입로가 보이면 그 길을 따라 최대한 올라가시면 됩니다. 이후에 주차를 하고 오름 입구까지 약 5분 정도 도보로 이동하시면 되는데요. 별도의 이정표가 없지만 이동하실 때 공동묘지가 보이신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입니다. 묘지를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오름 입구를 만날 수 있는데요. 원래는 민오름으로 향하는 입구가 별도로 있어서 지금 안내해드린 복잡하고 헷갈리는 루트로 가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선흘 동물테마파크’ 공사 문제로 진입로가 폐쇄되어 현재는 선교로 쪽에서 걸어 들어가는 방법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민오름 입구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묘지들. ⓒ김재원
민오름 입구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묘지들. ⓒ김재원

찾아오는 길이 쉽지 않아 오름에 도착하기도 전에 피곤이 쌓였더라도 오름 초입에 들어서면 그 고생길이 보상되는 기분을 만끽하게 됩니다. 입구부터 바로 펼쳐진 조성된 삼나무와 편백나무숲길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비밀의 숲으로 가는 길과 닮아있는데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오름이라 신비한 모험이 가득할 것만 같은 미지의 숲을 탐험하는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거문오름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냥 넓은 초원에 덩그러니 있는 초라한 이름을 가진 민오름이지만 오름 속을 들여다보면 그 어떤 유명한 오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우며 감성을 자극하는 신비스러움이 간직된 곳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 정상에 오르면 멀리 세미오름, 우진제비오름, 바농오름, 대천이오름, 꾀꼬리오름과 가까이에 골체오름과 부대악까지 자연의 숨소리와 함께 멋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오름입니다. 

민오름 입구에서부터 펼쳐지는 삼나무숲길의 웅장한 자태. ⓒ김재원
민오름 입구에서부터 펼쳐지는 삼나무숲길의 웅장한 자태. ⓒ김재원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거슨세미오름’입니다. 민오름에서 내려와 ‘선화교차로’에서 표선으로 향하는 번영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대천교차로’를 만나게 됩니다. 교차로에서 구좌읍 송당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면 삼나무숲길로 유명한 ‘비자림로’를 지나게 되는데요. 3km 정도 가다 보면 ‘안돌오름 비밀의 숲’으로 가려는 수많은 차들이 붐비는 지점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오른쪽에 거슨세미오름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는데요. 좌회전 후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비밀의 숲으로 향해 직진 하기 때문에 이곳에 거슨세미오름이 있다는 것도 대단히 멋지고 한적한 숲길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문데요. 

거슨세미오름은 노약자나 어린이들도 충분히 탐방 가능할 만큼 평탄한 구간으로 되어 있다. ⓒ김재원
거슨세미오름은 노약자나 어린이들도 충분히 탐방 가능할 만큼 평탄한 구간으로 되어 있다. ⓒ김재원

거슨세미오름은 이국적인 숲의 분위기로 인스타 핫플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안돌오름 비밀의 숲’ 옆에 위치해 있어 조금은 외롭지만, 오히려 이곳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지금처럼 영원히 유명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오름 입구에서 왼쪽으로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편백나무와 삼나무숲길이 이어지는 둘레길과 연결되어 있는데요. 거슨세미오름은 정상 등정보다는 둘레길을 걷는 것이 더 좋습니다. 어린아이와 노약자들도 충분히 탐방 가능할 만큼 평탄한 구간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좋은 길입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거슨세미오름 둘레길. ⓒ김재원
삼나무와 편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거슨세미오름 둘레길. ⓒ김재원

숲길을 거닐다 보면 상쾌한 편백나무와 삼나무 향에 취하게 되는데요. 하늘 높이 울창하게 자란 편백과 삼나무로 가득채워진 숲길은 약 1km 정도 계속 이어지는데, 온몸에 긴장을 풀고 모든 세포를 개방한 채 고즈넉이 삼림욕을 즐기며 걸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둘레길을 걷다가 오르막길에 계단이 시작되는 구간이 나오면 왔던 길로 돌아오면 되는데요. 부족하다 생각되면 같은 구간을 몇 번 반복해도 좋습니다. 거슨세미오름은 자생한 숲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오름과 숲이 가지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오름입니다.

거슨세미오름 둘레길. ⓒ김재원
거슨세미오름 둘레길. ⓒ김재원

오름은 일종의 기생화산인데 제주 전역에 크고 작은 오름 360여 개가 존재합니다. 매일 한곳씩 올라가도 모자랄 정도인데요. 제주 출신의 화가 강요배 선생의 말을 빌리면 “오름에 올라가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 주변에 터를 잡아 살고 밭을 일구며 말과 가축을 키우며 오름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제주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오름과 그 주변에 여전히 남겨져 있습니다. 웬만한 오름은 둘러보는데 한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육지의 높은 산에 비하면, 가파르다고 소문난 오름도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름에 올라 바라보는 풍광은 오직 제주 오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과 특별함을 선사해줍니다. 

오름 정상에서 마주하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김재원
오름 정상에서 마주하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김재원

지난번 올레길 탐방과 더불어 제주의 숨겨진 오름을 틈틈이 시리즈로 연재하여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올레길과 오름 주변의 마을과 사람들 그리고 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는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제주를 이해하고 좀더 자세히 바라보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세상 ‘제주 오름 이야기’.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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