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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더 재미있는 ‘제주 밭담 여행’

[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12. 흑룡만리(黑龍萬里) 제주 밭담길을 걷다

rlarudal4@hanmail.net

밭의 경계를 나타내는 '밭담'을 중심으로 제주 8개 마을에 밭담길이 조성되어 있다. ⓒ김재원
밭의 경계를 나타내는 '밭담'을 중심으로 제주 8개 마을에 밭담길이 조성되어 있다. ⓒ김재원

제주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게 돌입니다. 제주가 화산섬이고 용암이 분출할 때 현무암이 바닷가 마을까지 퍼쳐 내려가면서 수많은 돌들을 만들어 냈다고 하는데요.

제주 사람들은 그 많은 돌을 가지고 외담(한줄 담), 접담(두 줄 담), 잣백담(넓게 쌓은 담), 축담(초가의 외벽에 쌓은 담), 올레담(초가로 들어가는 길목에 쌓은 담), 밭담(밭의 경계에 쌓은 담), 환해장성(바다와 육지 경계지점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담), 불턱(해녀들이 물질할 때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피워 몸을 말리는 공간을 에워싼 담) 등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중에 오늘은 밭의 경계를 돌을 쌓아 구분했던 ‘제주 밭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밭담 너머 멀리 에메랄드 빛 제주바다가 보인다. ⓒ김재원
밭담 너머 멀리 에메랄드 빛 제주바다가 보인다. ⓒ김재원

밭의 경계를 나타내는 ‘밭담’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적 기록은 고려시대(1234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25세 젊은 나이에 제주 판관으로 부임했던 ‘김구(金坵)’(고종 21~26년, 1234~1239년까지 재직)가 '이웃 간의 분쟁을 막기 위한 경계를 표시하는 돌담을 쌓도록 했다'는 기록입니다. 말을 이용해 경작지를 밟아주거나 가춘분비료를 이용한 농작업이 행해진 탐라 지역에는 논은 없었고 밭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록을 근거로 이때부터 제주 지역에 밭담이 확산되었을 거라 추정하는데요. 

밭과 밭 사이의 경계마다 밭담이 줄지어 서있다. ⓒ김재원
밭과 밭 사이의 경계마다 밭담이 줄지어 서있다. ⓒ김재원

제주지역의 밭담은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를 이루는데, 돌담을 모두 이으면 그 길이가 자그마치 약 2만 2108km에 이릅니다. 중국의 만리장성(6400㎞)보다 길고, 지구 둘레가 약 4만 km이니 지구 반 바퀴를 돌고도 남는 길이인데요. 그래서 제주의 밭담을 '흑룡만리'(黑龍萬里)혹은 ‘Black Silk Road’라 부릅니다. 검은 현무암의 밭담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불구불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흑룡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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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밭담은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201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김재원
제주 밭담은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201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김재원

밭담은 이웃과의 분쟁을 예방하는 경계 표시 기능과 거센 바람을 걸러내고 토양의 유실을 막으며, 말과 소와 같은 동물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했습니다. 밭담은 인위적인 부역에 의해 조성된 것이 아닌, 제주 선조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쌓아졌다는 특징이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밭담은 이러한 창의성과 역사성, 과학성을 인정받아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2014년에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밭담을 따라 걷다 보면 제주 농촌 마을 풍경도 함께 엿볼 수 있다. ⓒ김재원
밭담을 따라 걷다 보면 제주 농촌 마을 풍경도 함께 엿볼 수 있다. ⓒ김재원

제주가 한여름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태풍을 맞이하는 곳이며 연중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고, 삼다도(三多島, 돌·바람·여자)라 불릴 만큼 바람이 강한 곳임을 감안해 볼 때 제주 밭담은 선조들의 지혜와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유산임이 분명합니다.

밭담 틈새를 지나는 바람은 주위 공기에 비해 큰 속도로 지나 주위보다 압력이 낮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바람의 힘은 틈새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는데요. 이 과학적인 원리가 손으로 밀면 그대로 넘어질 것 같아 보이는 밭담을 강한 바람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삶 가운데 익숙하고 평범하게 느껴졌던 밭담이 제주다움의 가치를 담은 소중한 유산임을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8개 마을에 밭담길 코스가 조성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했던 공간과 풍경이 여행객들의 시선에는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인데요. 

밭담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김재원
밭담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김재원

현재까지 조성된 밭담길은 △'진빌레 밭담길'(구좌읍 월정리) △'감수굴 밭담길'(구좌읍 평대리) △'물메 밭담길'(애월읍 수산리) △'수류촌 밭담길'(한림읍 동명리) △'영등할망 밭담길'(한림읍 귀덕1) △'어멍아방 밭담길'(성산읍 신풍리) △'난미 밭담길'성산읍 난산리 △ '공세미 밭담길'(애월읍 어음1리)까지 제주시에 6개, 서귀포에 2개소 등 총 8개 코스가 있습니다. 또 구좌읍 월정리 해안에서 서쪽 2km 지점에 있는 ‘제주밭담테마공원’에서도 밭담의 다양한 종류를 접할 수 있는데요. 

해녀가 물질하면서 옷을 갈아 입거나 쉬던 장소인 불턱도 제주의 돌로 만들어졌다. ⓒ김재원
해녀가 물질하면서 옷을 갈아 입거나 쉬던 장소인 불턱도 제주의 돌로 만들어졌다. ⓒ김재원

밭담길을 걷다 보면 제주의 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구경하게 되는데요. 당근을 캐는 손길로 분주한 고즈넉한 제주의 농촌과 마을풍경과 함께 해안도로로 이어지는 길목에서는 제주해녀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불턱(해녀가 물질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쉬던 장소)과 신당(신을 모신 곳) 그리고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별방진과 환해장성의 흔적 등 제주의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밭담 위에 올려져 있는 테왁(해녀들이 물질 할 때 몸을 의지하거나 망사리를 달아 채취한 해산물을 띄워둘 때 쓰는 도구). ⓒ김재원
밭담 위에 올려져 있는 테왁(해녀들이 물질 할 때 몸을 의지하거나 망사리를 달아 채취한 해산물을 띄워둘 때 쓰는 도구). ⓒ김재원

‘제주를 새롭게 보는 법’이 제주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요. 특히나 제주 올레길 탐방, 오름과 숲길 트레킹 등 코로나 시대에 맞는 웰니스 관광을 선호하시는 분들에게 제주 밭담길 탐방을 추천드립니다. 

바닷가 마을의 밭담길을 걸으며, 돌담을 통해 척박한 자연환경과 맞서 싸운 제주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담 너머 보이는 각양각색의 제주의 모습과 담장 너머 에메랄드빛 바다를 머금은 풍경이야말로 여러분들이 찾는 가장 제주다운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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