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아이들과 해외 여행하는 법
이 시국에 아이들과 해외 여행하는 법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1.08.24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깨달음 육아] 방학 이벤트, 세계 음식 맛보기

일주일간의 세계여행을 끝냈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음식여행. ‘휴가 계획은 자고로 휴가 전날 세우는 거지’ 하고 허세를 부리다가 망했다. 갈 곳이 없었다. 룸 컨디션이 괜찮다 싶으면 이미 예약이 8월 말, 9월 초까지 찼거나, 숙박비가 턱없이 비쌌다. 4인 가족 2박 비용으로 1박이라니. 이건 가지 말라는 거지.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2주 더 연장된 것도 여행을 떠나기 부담스러운 이유로 작용했다.

그렇게 휴가 동안 진짜 집에만 있게 생겼다. 세상 우울했다. 어딘가에 있을, 우리 가족이 몸을 뉘일 방 하나를 찾기 위해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는 남편에게 그만 포기하라고 말했다. 그때 재미난 생각이 하나 스쳤다. 아니 ‘정신 승리’라고 쓰련다. 요즘 애들이 즐겨찾는 가상현실에서는 프랑스 파리에도 가고 영국 런던에도 간다는데 우리라고 못 갈 게 뭐야.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상황극이 생각났다.

“얘들아, 올해 우리 휴가 콘셉트는 세계여행으로 하면 어때? 어디에 제일 가고 싶어?”

그때 마침, 텔레비전에서 화덕피자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래, 이탈리아로 가서 피자를 먹자. 피자는 역시 화덕에서 구워야 제맛이지. 한껏 들떠 정말 내일이라도 당장 이탈리아로 떠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그럼 우리 내일 전용기 타고 가는 거야?”

“그럼, 바로 네 옆에 기장님 계시잖아. 몇 시에 출발하냐고 물어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보았다. ⓒ최은경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보았다. ⓒ최은경

 그렇게 다음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공항까지 가는 수고로움도 없고, 짐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대기하고 또 대기한 끝에 좁은 좌석에 몇 시간씩 몸을 구겨 넣지 않아도 되는 세상 편리한 여행. 그저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준비된 전용기에 몸을 실으면 되는 그런 여행 말이다.

이탈리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엘리베이터 7층 버튼을 눌렀다. 우리가 원하는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주문 단계에서조차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완벽하게 봉골레 파스타와 마르게리따 피자를 주문했다. 현지에는 없는 피클까지 서비스되는. 그뿐인가. 콜라, 스프라이트, 환타, 커피 등 원하는 음료수를 셀프로(그것도 리필이 되는) 질릴 때까지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의) 지상낙원. 웃음이 절로 나는 걸 보니, 여기가 진짜 이탈리아인가요.

“이탈리아어로 안녕하세요?는 뭐라고 하지?” 그냥 던진 질문에 누구도 귀찮아하지 않고 파파고를 돌려 인사말을 한 번씩 들어보고, 이탈리아 국기 색깔 맞추기 같은 실없는 퀴즈를 내며 시간을 때웠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초고속으로 도착했다. 무려 이탈리아까지 다녀왔는데 피곤하기는커녕 잠들기까지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돌아서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틀었다.

아이들이 처음 먹어 본 인도 커리와 난. 밥도 현지에서 먹는 쌀로 지었는데 대단히 길쭉하고 점성이 없어 식감이 특이했다. 밥보다는 난을 좋아했던 아이들. ⓒ최은경
아이들이 처음 먹어 본 인도 커리와 난. 밥도 현지에서 먹는 쌀로 지었는데 대단히 길쭉하고 점성이 없어 식감이 특이했다. 밥보다는 난을 좋아했던 아이들. ⓒ최은경

전용기 정비(?)를 위해 하루를 집에서 쉬며 여독을 푼 우리 가족은 다음날 또 여행을 떠났다. 이번엔 인도 여행. 인도 음식 커리와 난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아이들을 위해, 이번에는 이탈리아보다 더 먼 거리의(이탈리아 식당보다 인도 식당이 더 멀었다) 인도로 떠났다. 식당에 입장하자마자 자동으로 몸을 흔들게 만드는 인도 음악. 둠칫둠칫. 야, 이곳이 바로 인도로구나.

나는 기꺼이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우스꽝스럽다며 웃었다(너희들이 즐겁다면야 망가지는 것쯤은). 특히 이곳은 인도인이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 오래간만에 짧은 영어를 해야 해서 당황했지만 진짜 여행이 실감 났다. 인도의 수도는 어디냐로 시작되는, 이탈리아 여행 때와 똑같은 레퍼토리가 이날도 계속 되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카레와 커리는 어떻게 다른지, 난은 어떻게 만드는지, 인도에서 먹는 쌀은 우리 쌀과 어떻게 다른지, 인도 디저트 라씨는 요거트랑 참 비슷한 맛이라는 걸 알게 된 아이들. 다행히 인도 커리는 아이들 입맛에도 잘 맞았다.

양고기를 처음 먹어 본 아이들. 고기 맛도 좋았지만, 고기를 굽는 과정을 더 신기하고 재밌어 했다. ⓒ최은경
양고기를 처음 먹어 본 아이들. 고기 맛도 좋았지만, 고기를 굽는 과정을 더 신기하고 재밌어 했다. ⓒ최은경
세계음식여행은 심지어 집에서도 가능하다. 아이들과 함께 베트남음식 월남쌈을 만들어 먹었다. ⓒ최은경
세계음식여행은 심지어 집에서도 가능하다. 아이들과 함께 베트남음식 월남쌈을 만들어 먹었다. ⓒ최은경

이날 외에도 우리는 (미국에서 온 쉑O 버거를 먹으러 송도까지 갈 수는 없다는 기장님의 반대로) 맥OOO 햄버거를 집에서 먹으면서 미국 여행을, 양꼬치를 먹으면서 중국을 여행했다. 일주일간의 짧고 굵은 세계 여행이었다.

어쩌다 보니 코로나와 함께 한 아이들의 두 번째 여름 방학. 나에겐 집밥에서 해방된 ‘맛있는 여행’이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어땠을까. 코로나로 집에만 있어야 해서 지겹고 심심하기만 한 방학이기보다는 그래도 꽤 재밌었던 이벤트로 추억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세계 음식 여행 콘셉트에 나는 정말 진심이었나 보다.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으로 친구들에게도 제안한 걸 보면. 

나 : "지금 당장 해외여행 갈 수 있다면, 이탈이라 가서 파스타랑 피자 먹을래? 일본 가서 일본식 카레나 돈가츠 먹을래?"

친구1 : "난 이태리!"

친구2 : "나도!"

그리하여 네일 스티커로 이탈리아 콘셉트의 드레스코드를 맞추고, 일주일에 두 번 피자를 먹었다는 이야기. 그래도 재밌었다. 다음 겨울 방학에는 아이들을 위해 또 어떤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나 고민할 만큼. 물론, 그 전에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세상이 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여권도 필요없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 너무 진심이었다. ⓒ최은경
여권도 필요없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 너무 진심이었다. ⓒ최은경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