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은혜 기자】
첫 아이를 임신한 김정미(가명) 씨는 출산 시 제대혈을 채취해 제대혈은행에 보관할 것인지를 두고 며칠째 고민 중이다. 또래보다 결혼을 일찍한 터라 주변에 결혼 안한 친구들밖에 없어 조언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다. 출산을 앞두고 있다면 여러가지 준비할 게 많은데 제대혈 보관에 대해서도 한번쯤 따져봐야 한다. 제대혈의 특성상 출산 때만 채취할 수 있는데, 제대혈 보관 비용이 꽤 비싸기 때문에 임신 초기부터 제대로 정보를 찾아보고 깊게 고민한 후에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제대혈 보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셀트리 제대혈은행를 운영하고 있는 메디포스트의 도움을 받아 제대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 탯줄·태반서 채취한 피 '제대혈'
엄마와 아기를 연결해주던 탯줄과 태반에서 채취한 피가 바로 '제대혈'이다. 제대혈에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풍부해서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겸상적혈구 빈혈 등 난치성 혈액질환에 주로 사용된다.
또한 연골, 뼈, 근육, 신경 등의 장기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간엽줄기세포가 다량 함유돼 뇌성마비와 발달장애, 기타 난치성 질환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제대혈은 분만과정이 모두 끝난 후 탯줄 내 정맥에서 채취되므로 산모나 아기에게 아무런 위험성이 없으며, 산부인과 의료진에 의해 철저히 무균적으로 채취된다.
채취된 제대혈은 36시간 내에 제대혈은행으로 운반돼 가공·검사 등 여러 단계의 처리 과정을 거쳐 -196도의 질소탱크에 냉동 보관됐다가 필요할 때 해동과정을 거쳐 치료에 사용되게 된다.
이러한 제대혈의 보관 가치는 국가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11년 7월 1일 시행된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에서는 제대혈에서 채취한 조혈모세포가 백혈병 등 악성 혈액질환 및 여러 유전성 질환 등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체 줄기세포의 원천으로서 연구와 바이오산업의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 소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사용 가능
제대혈 이식은 1988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시행된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의료 선진국에서 활발히 진행돼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기증 제대혈 634건, 가족(자가) 제대혈 155건이 조혈모세포 이식에 사용됐다. 여기에 줄기세포 이식과 연구 등에 사용된 제대혈을 포함하면 전체 제대혈 사용 건수는 7000건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제대혈 이식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울산 북구에 사는 이아무개(16개월) 양은 지난해 ‘신경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그간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신경모세포종은 부신수질이나 교감신경에 발생하는 소아 악성 종양이다.
다행히 제대혈을 보관한 이 양은 지난해 12월 울산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제대혈 이식수술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세포종 치료를 위해 투입되는 고용량의 항암제는 아이의 골수를 파괴할 수 있는데 제대혈 속 조혈모세포가 골수를 회복해주는 역할을 해서 지속적인 항암제 투여와 치료가 가능했다.
제대혈은 소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사용된다. 유럽 제대혈은행협회(Eurocord)에 따르면 2002년까지 100건 이하였던 성인의 제대혈 이식은 2006년부터 매년 300건을 넘어서며 이미 소아의 제대혈 이식 건수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제대혈은 유방암, 폐암, 난소암 등 성인암의 완치 보조제로 사용되고 재생불량성빈혈 등 난치성 혈액질환은 물론 고셰병, 선천성면역결핍증 등 선천성 질병, 류마티스, 루푸스 등 자가면역질환에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 타인보다 본인 제대혈 효과적
학계에서는 제대혈 이식 시 조직적합성항원(HLA)의 일치도가 높을수록 통계적으로 좋은 치료성적을 보인다고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혈액질환 중 유전적 소인에 의해 발병하는 1% 미만의 특정 질환을 제외하면 타인의 제대혈보다 자신의 제대혈이 치료효과가 높고 면역억제 치료도 병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훨씬 유용하다.
이 밖에도 가족 제대혈은 현재 치료 가능한 질병 외에도 향후 보관자들이 성인이 돼 림프종이나 암에 걸렸을 경우 항암요법 이후 제 기능을 내지 못하는 골수를 재생하기 위해 실시하는 ‘말초혈액 조혈모세포 이식’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가족 제대혈이 아직 소아 연령기의 질병에만 국한돼 사용되고 있지만 성인에 빈발하는 암이나 기타 난치성 질환의 조혈모세포 이식에 제대혈을 활용하는 시기가 오면 보관했던 가족 제대혈의 사용률은 급격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한다.
◇ 제대혈은행 선택 시 보관규모 등 따져봐야
제대혈은 15년 이상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혈은행을 선택할 때는 회사 규모가 큰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제대혈은행은 크게 '기증'과 '가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증 제대혈은행은 일반인들로부터 분만 시 기증받은 제대혈을 보관했다가 공공의 환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며, 가족 제대혈은행은 본인이나 가족이 사용할 수 있도록 비용을 받고 개인의 제대혈을 보관하는 곳이다.
해외에서는 미국에만 32개의 가족 제대혈은행이 있고 아시아와 유럽, 남미와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많은 나라에서 10여 곳 내외의 가족 제대혈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은 17개의 제대혈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먼저 가족 제대혈은행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메디포스트 셀트리 제대혈은행'과 '차바이오텍 아이코드 제대혈은행', '라이프코드 제대혈은행', '세원셀론텍 베이비셀 제대혈은행', '보령아이맘셀뱅크 제대혈은행' 등이 있다. 기증 제대혈은행으로는 서울시에서 설립한 '보라매병원 올코드'와 '영남대학교병원 제대혈은행',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부산경남지역 제대혈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한 제대혈은행 관계자는 "제대혈은행을 선택할 때는 보관규모, 시설과 장비, 의료진 등 제대혈 분야 전문 인력, 제대혈 관련 연구 실적, 기업 신뢰도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