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구연 인기만발
양천구 어르신 봉사단 예산 끊겨도 활동 지속 매주 1회 연구모임 통해 동화구연·손유희 시연
“숲속 초막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 토끼 한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이야기 할머니 선생님~ 이야기 들려주세요!”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를 들려줄 거에요. 기름장수가 뭐하는 사람이냐면 친구들이 엄마아빠랑 주유소 가서 차 밥을 주잖아요? 달리 말하면 그 사람이 기름장수에요. (앞에 앉은 할머니를 보며) 기름장수가 뭐라고요?”
“기름장수요!” (웃음)
한 할머니의 능청스러운 답변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질문을 던진 할머니도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맞았어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기름장수는 아주 용감한 사람이에요. 그는…”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신월어르신복지센터 강의실 문틈 사이로 할머니의 맛깔스런 동화구연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날 1조로 편성된 고순금(69), 장정희(66) 할머니가 2인 1조로 짝을 이뤄 선보인 동화구연은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다.
호랑이에게 통째로 잡아먹힌 기름장수가 킨 등잔불이 호랑이의 배를 아프게 해 소금장수, 정육점 아저씨 등 이미 잡아먹혔던 주민들을 무사히 구하는 내용이다. 호랑이 뱃속에 들어가면 죽었다 생각하고 포기할 수도 있지만 침착한 행동과 긍정적인 생각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교훈을 주는 전래동화다.
이어서 2조 할머니들이 동일한 주제로 동화구연을 선보였다. 같은 내용이지만 억양을 어떻게 구사하고 목소리톤을 조절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할머니들은 실제로 아이들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선 땀을 흘리며 온몸으로 연기를 펼쳤다.

◇ 동화구연 시연 통해 배우고 나누고
각 조별로 준비한 동화구연 시연이 끝나자 서로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잘한 점은 더욱 잘 할 수 있게끔 독려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 지 토론을 통해 알아보는 것이다.
한 할머니가 “아이들이 잘 안 따라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다른 할머니가 “저 친구 손은 너무 귀해서 집에 두고 왔나보다. 누구 손 있는 사람?”이라고 재치있게 답변했다.
아이가 이야기를 듣지 않고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질러 방해하는 등의 행동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를 두고 할머니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신나는 손유희 동작을 보여줘요.”
“아이를 불러 이야기해봐요.”
이중 “어머! 저 친구는 밥을 많이 먹고 와서 에너지가 넘치네. 그래도 지금은 이야기 할머니가 동화를 들려주니까 이따가 놀까요?”라고 말한 한 할머니의 답변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
아이들이 동화를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래동화에 있는 문구를 현대식으로 바꾸는 작업도 이뤄졌다. ‘소금장수와 기름장수’의 경우 기름장수를 주유소 아저씨로 설명하거나 기름을 차가 먹는 밥으로 설명하는 등 연령대에 맞는 용어를 활용, 아이가 실생활에서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강구민 신월어르신복지센터 팀장은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구수하고 정답게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라며 “서로 논의하고 비교하는 시간을 통해 좋은 것은 나눠쓰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기회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 대부분 초등 교원 출신으로 전문성 갖춰
매주 목요일 오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여 동화구연 연구모임을 갖는 이들은 바로 양천어르신종합복지관 부설 신월어르신복지센터(센터장 유갑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야기 어르신 봉사단’이다.
만 65세 이상 양천구민으로 구성된 ‘이야기 어르신 봉사단’은 대부분 초등학교를 정년퇴직한 교원 출신으로 센터에서 1년 이상 발성 연습과 책 읽어주는 요령 등의 교육을 마친 전문가들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다소 줄어든 16명만이 ‘이야기 어르신 봉사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09년 ‘이야기 어르신’이 일자리사업으로 전환된 이후 매년 수십 명의 ‘이야기 어르신’이 지역사회와 연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올해 일자리사업 예산이 갑자기 삭감돼 운영이 어려워지자 이들은 ‘이야기 어르신 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주1회 양천구내 어린이집 7개소와 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찾아가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통비 정도의 경비만 지급되지만 아이들에게 말벗이 돼 주고 책을 읽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동화구연 활동을 멈출 순 없었다.
고순금 할머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할머니 동화 들려주세요’라고 말할 때나 더 들려달라고 붙잡을 때 참 보람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일은 나에겐 천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 최종 목표는 영유아 인성도모 위한 체계 구축
날이 갈수록 ‘이야기 어르신 봉사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양천구내 여러 장소에서 초청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 어르신 봉사단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아이의 성장발달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기승전결에 맞춰 동화구연을 진행하고 중간중간 아이의 인지능력과 소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는 손유희 활동을 넣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아이들과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전문성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동화구연지도사 3급 자격증과 NIE(신문활용) 자격증 등을 대부분 갖췄고 내년까지 동화구연지도사 3급 자격증을 전원 취득할 계획이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흔히 알려져 있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를 직접 발굴·각색하고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잊혀진 마을 이야기를 중심으로 창작동화 만들기에 도전하는 것도 이들의 도전과제다.
강구민 팀장은 “어르신의 전통적 가치와 경험이 가족과의 단절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본다”며 “우리의 최종 목표는 영유아의 인성을 도모할 수 있는 한국형 종합적 지식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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