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선 참 어려운 경제적 독립
돈으로 가족을 통제하려는 것은 큰 잘못
[연재] 심리학자 아빠의 행복한 육아
결혼 전까지는 부모와 함께 지내는 한국 사람들과 달리 서구인들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독립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부모를 떠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차이는 한국이 개인보다는 집단(특히 가족)을, 서구사회는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생겨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혼만 봐도 두 문화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한국에서 결혼이란 양가의 결합이다.
따라서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그리고 자녀의 결혼을 위해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은 당연시된다. 반면 서구사회에서는 철저하게 당사자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반대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또한 부모님보다는 은행 대출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결혼을 준비하는 편이다.
두 문화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 문화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영역이다. 어떤 문화든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 문화의 경우 장점은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가족이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반면 가족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거나,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해 새로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가족치료로 유명한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의 보웬(Murray Bowen)은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분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문제 상황에 감정적으로 미숙하게 대처한다는 것이다.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부모, 부모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자녀는 너무 많다. 상대를 위한 아름다운 양보와 희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분화는 자신과 상대의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다.
집단주의, 가족주의로 대변될 수 있는 우리 문화는 미분화의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문화의 본 모습이 아닌 왜곡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문화에서 이상적인 부모자녀 관계는 내리사랑이다. 미분화가 부모와 자녀의 주고받는(give and take) 관계라면, 내리사랑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결국 미분화란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들이 ‘내가 널 위해 이렇게 희생했으니, 너도 날 위해 희생하라’고 직접 요구를 하거나 자녀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부모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분리하지 못해서 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많다. 자녀가 수능에 실패했다고 자녀와 함께 투신자살을 기도한 엄마, 노부모 걱정에 주말마다 본가에 가자고 아내에게 요구하는 새신랑, 내가 널 위해 희생했으니 이제는 네가 나를 위해 희생하라며 자녀를 괴롭히는 부모, 부모의 고생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모의 과도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자녀들, 부모의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은 모두 미분화의 결과다.
물론 부모 없이는 자식 없고, 가족 없이는 개인이 있을 수 없다. 이 사실을 부인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는 분명히 독립된 존재다. 서로 욕구와 생각이 다르고, 삶의 환경이 다르다. 당연히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누가 누구를 통제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소유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물 중 하나는 심리적 독립이다. 자녀가 마음 건강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어떻게 심리적 독립을 시킬 수 있을까?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경제적 독립이다. 많은 사람들은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경제적으로 독립하라고 조언한다. 가능하다면 부모님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돈은 통제의 의미가 있다. 부모자식 간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돈을 가지고 자녀를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고 하며, 자식도 돈으로 부모를 통제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상대를 통제하다보면 자칫 미분화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경제적 독립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자녀가 돈을 벌게 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부모의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돈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를 어렸을 때부터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경제 주체가 되었을 때 진정한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강현식은 ‘누다심’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심리학 칼럼니스트다.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www.nudasim.com)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심리학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일보다는 두 아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행복한 아빠다. 많은 아빠들에게 아빠 육아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아빠 양육』1, 2권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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