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워킹맘의 일과 육아 저글링,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달로 아이는 세 돌이 되었다. 잘 뛰고, 가끔은 어디서 보고 배워왔는지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던가'하는 재주도 부리며 엄마인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다.
개구쟁이 꼬마아가씨로 크는 모습이 뿌듯하기도 하지만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배변훈련은 꽤 일찍 시작했으나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 한 것. 소변은 괜찮지만 대변을 볼 때에는 반드시 기저귀를 차야 한단다. 이제는 아이가 기저귀가 있는 옷장 문을 열고 꺼내서 스스로 입기까지 한다. 정말 기저귀를 뗄 수는 있는 건지, 이러다 평생 못 떼는 것은 아건지 싶을 정도로 기저귀를 찾는다
게다가 보통 '애착이불'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집착이불'이라고 부르고 싶은 꼬질꼬질한 이불을 항상 끌고 다닌다. 적어도 외출할 때 만은 이 이불을 안 가지고 나갔으면 하는데, 없으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또 가끔은 아기띠를 해달라고 힙시트를 질질 끌고 나오기도 했다. ‘힙시트는 진작 없앴어야 했거늘!’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아이가 워낙 워킹맘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 보니 가끔 안아주고 업어주는 것이 나쁘지 않겠지 싶어서 조금 망설이다가도 그냥 그대로 안아주고 업어주고 있다.
이러한 일상을 보내던 얼마 전 조리원동기모임에 나갔는데 '누구는 이미 형, 누나를 따라 한글을 읽네', '누구는 벌써 얼마나 말을 하네' 주변에는 천재소년, 소녀들이 가득한 것만 같다. 우리 아이는 아직 배변훈련 중에 애착이불을 어디든 끌고 다니고, 아기띠로 가끔 업어도 주는데 말이다. 반면에 아직 아이의 언어습득 속도가 느려 걱정하는 친구, 어딘가 몸이 아프거나 성장이 더뎌 걱정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방금 했던 내 생각이 부끄러워진다.
또 신체적 성장에는 문제가 없으나 엄마아빠의 잦은 싸움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놀이치료를 받는 친구의 아이도 있다. 듣고보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집집마다 문 열어 보면 걱정이 없는 집이 없다. 특히 아이를 키우고 일까지 하는 워킹맘의 입장에서는 그 걱정의 깊이도 폭도 넓고 깊다.
그런데 이제 겨우 엄마경력 3년인 나. 아직도 초보맘이지만 출산 직후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그랬지'하는 것들이 있다. 호르몬이 끓어 넘치던 출산 직후, 산후조리원에 찾아오는 아이 장난감과 학습지세일즈맨에 부응하지 않으면 모성애나 학습열 떨어지는 엄마라 여길까 열심히 듣고, 연락처도 적어놨다.(물론 구입하지는 않았다)
누구는 목을 가누네, 누구는 뒤집기를 하네, 누구는 걷네, 심지어는 모유수유를 하네, 못 하네 등등. 타고난 한국인의 비교경쟁의식이 에스트로겐의 탄력 받아 절절매던…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이었던가.(물론 출산 후 호르몬이 덜 끓었었는지 천성적으로 그쪽으로 관심이 적었는지, 아니면 학습지 할부로 끊기에 지갑이 얇았는지 뛰어난 경쟁심을 보이지는 않았기는 하다) 겨우 초보엄마 3년의 경력을 가지고도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으로 돌아보면 아이가 기저귀 좀 오래 하면 어떠랴(물론 기저귀 값이 좀 아깝긴한데, 무리해서 떼려다가 심리적 충격이오는 것 보단 낫지 않나), 집착이불좀 가지고 다니면 어떠랴, 남들이 보기에 '쯧쯧' 할지 모르지만 아이에게는 소중한 물건인데 꼭 그걸 굳이 빨리 끊어야 하는 법이 어디 있나? 아기띠좀 하면 어때? 좀 무겁긴 한데 그래도 내게는 여전히 아가인 것을… 그리고 지금 걷기나, 말하기 등등의 속도가 느리다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그 이상의 탤런트가 불쑥 나와 엄마를 놀래키는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성장의 속도가 좀 느려도 인생의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생의 속도가 뭐 그리 중요한가? 빨리빨리 흘러가서 빨리 흥하고 망하느니 천천히 음미하며 각 모멘트마다 '의미'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은가.
깊어가는 가을… 이런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아이와 나의 이 모습 이대로를 음미하며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워킹맘이라는 죄책감으로 어쩌면 더 커져 있을지 모르는 불안과 걱정, 그리고 조급함도 잠시 내려놓으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이 시간도 조금만 더 지나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그냥 맘 껏 즐겨도 될 시간이었음을 생각하며…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이와 함께 하늘을 바라 보고, 산책을 하며 워킹맘으로서 더 했을지 모르는 고민과 조급함을 잠시 내려두자. 그래도 괜찮다.
*칼럼니스트 김신희는 올해 서른 여덟의, 14년 차 직장인이자 네 살 된 딸을 키우는 엄마다. 일하느라 결혼 7년 만에 아이를 낳고 다시 복귀하여 치열하게 일하고, 치열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의 성장과 동시에 스스로도 성장하고 싶은, 그래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괴롭기도 한 이 시대의 전형적인 워킹맘. ‘워킹(Working)’으로는 오랫동안 경영 컨설턴트였고, 지금은 외국계 소비재 회사의 디지털마케팅팀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맘(Mom)’으로서는 꿈이 엄마이자, 육아좀비, 그리고 동네 아줌마이다. 최근에는 초보 워킹맘의 일과 육아저글링 스토리 '워킹맘의 딸'이라는 책을 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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