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유모차전용주차구역' 어때요?
주차장에 '유모차전용주차구역' 어때요?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6.10.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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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는 왜 타?" 시민 눈총에 주눅드는 엄마들 유모차향한 인식 개선 필요, 버스 내 유모차 마크 설치 등 변화돼야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만 9개월 아기를 키우는 신소라(30, 가명, 서울 영등포구)씨. 신 씨는 부모님 댁이나 장난감도서관을 방문할 때 지하철과 저상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매달 교통비만 4~5만원이 나올 정도로 유모차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도가 텄을 법도 하지만, 매번 어렵게만 느껴진다.

“버스정류장에 유모차가 서 있는 게 보일텐데 그냥 지나치는 버스가 있어요. 저상버스는 자주 오지도 않는데, 또 기다려야죠.”

버스를 그냥 보낼 수 없는 신 씨는 정류장에 버스가 들어서는 게 보이면 그때부터 ‘여기 유모차 있어요’라고 손가락으로 유모차를 가리키며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버스 탈 때만의 고충이 아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유모차를 향한 시선은 냉랭할 때가 있다. 특히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면 “이 좁은데 유모차는 왜 타는 거냐”는 어르신들의 말에 당황하기도 한다. 신 씨는 “유모차를 끌다보면 아기 낳으라고 하면서도 사람들 인식은 아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해했다.

신 씨의 경험은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선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교통약자인 아이와 부모는 언제, 어디에서나 배려 받을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유모차 이용자를 바라보는 사회 인식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유모차를 바라보는 인식이 올바르게 확립되려면 유모차 이용자들이 교통 약자라는 생각이 우선돼야 한다. 이런 인식 개선의 시작은 유모차가 움직이는 곳곳에서의 작은 변화부터 이뤄져야만 가능하다. 유모차가 다니기 좋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교통선진국 등의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국내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봤다.

◇ 버스에 유모차 마크를!

저상버스 문 옆에 장애인 그림표지가 붙어있는 가운데, 그 옆을 유모차 이용자가 지나가고 있다. 저상버스에서는 장애인 그림표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유모차 그림표지는 찾을 수 없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저상버스 문 옆에 장애인 그림표지가 붙어있는 가운데, 그 옆을 유모차 이용자가 지나가고 있다. 저상버스에서는 장애인 그림표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유모차 그림표지는 찾을 수 없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들이 가장 두려운 건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민폐’라는 인식이다. 이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유모차 공공안내그림표지(이하 그림표지)를 버스나 지하철에 부착하는 작업을 시행하는 건 어떨까?

기자는 지난 25일 서울시 내에서 무작위로 저상버스 4곳에 탑승해봤다. 버스 회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버스 외부의 승하차하는 문 옆에는 장애인 그림표지가 붙어있는 반면, 유모차 그림표지는 볼 수 없었다. 버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의자를 접어 휠체어나 유모차를 세워둘 수 있는 공간에는 장애인 전용, 교통약자석(혹은 노약자석) 이라는 글귀와 함께 장애인 그림표지가 붙어있었고 교통약자를 나타내는 임산부, 영유아동반자, 노약자 등의 그림표지만이 부착됐을 뿐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 내 ‘이동편의시설의 구조·재질 등에 관한세부기준’에서는 ‘교통약자용 좌석 옆에는 교통약자를 위한 좌석임을 나타내는 안내판을 부착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안내판의 종류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버스회사마다 부착하는 안내판의 기준이 다르다.

한 지자체 저상버스 담당 관계자는 “저상버스에서 장애인 표지만 봤지, 유모차 표지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교통약자 좌석임을 나타내는 안내판을 부착할 때 어떤 걸 부착해야 한다고 버스회사 등에 따로 안내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림표지는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그림기호로 만들어 사용하는 표지다.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만큼 시민 모두의 약속이라는 것을 사회 안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교통선진국인 영국의 경우 저상버스 내부에 유모차 이용자나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하는 공간이라고 시민들이 인식하도록 유모차와 장애인 그림표지를 함께 부착한다. 단, 유모차 이용자는 장애인이 없을 경우에만 이용하라는 안내문도 있다. 스페인의 저상버스 내부에도 유모차 그림표지가 함께 부착돼 있어, 이 공간은 유모차도 이용할 수 있다는 공공의 약속을 알려준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저상버스 내부와 외부 문에 유모차와 장애인 그림표지가 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한 엄마는 “유모차를 나타내는 마크라든지 유모차를 타도 된다는 안내 같은 게 있다면 보다 대중교통을 당당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주차장 '유모차전용주차구역' 보장 필요해

캐나다 나나이모 내 주차장에 마련된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의 모습. 유모차전용주차구역 앞에는 안내판이 크게 붙어있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캐나다 나나이모 내 주차장에 마련된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의 모습. 유모차전용주차구역 앞에는 안내판이 크게 붙어있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을 이용하는 유모차 이용자를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

자동차에 유모차를 싣고 마트나 백화점을 방문하는 부모들은 주차장 이용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주차공간이 협소해 유모차를 꺼낼 때 진땀을 빼기 때문.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는 정영숙(35) 씨는 “아기를 데리고 마트에 자주 가는데, 갈 때마다 유모차 꺼내는 게 너무 어렵다”며 “트렁크에서 빼는 것도 힘들지만, 유모차를 펼칠 공간도 마땅하지 않다. 그래서 꼭 아기띠에 아기를 앉히고 실내로 들어가서 유모차에 옮겨 태운다”고 토로했다.

해외에서는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을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엄마든 아빠든 유모차를 이용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주차구역보다 넓은 유모차전용주차구역에 주차할 수 있는 것.

캐나다는 마트 등의 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을 운영한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과 같이 다른 주차구역보다 공간이 넓으며, ‘유모차 이용자만 사용하라’는 안내 표지판도 세워두고 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바로 옆에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나 여성전용주차구역은 있지만,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은 생소하다. 유모차 이용자가 대부분 엄마라 여성전용주차구역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전용주차구역은 공간이 일반주차구역과 별반 차이가 없어 유모차 이용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을 운영하는 곳이 있긴 하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등이 있는 서울시여성플라자는 ‘노유자전용주차’ 공간을 운영 중이다. 노유자전용주차 공간은 노인과 유아를 위한 전용주차공간으로 지하 1층 전체로 운영되고 있다. 이중 9곳은 일반주차공간보다 차폭이 넓게 만들어져 유모차나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데 편리하다. 서울시여성플라자 관계자는 “지하1층부터 3층까지 운영되는 주차장 중 지하1층이 건물 내 접근성이나 안전성에서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운영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일부 백화점에서도 운영 중이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은 지난해부터 주차장 4~7층 4개 층 100여 곳에 일반 주차공간보다 1.5배 넓은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선진국처럼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될 필요성이 크다.

6개월 아기를 키우는 진서연(31,세종시) 씨는 “마트나 백화점 주차장에 들어서면 유모차 꺼내기가 편하도록 조금이라도 넓은 자리를 찾게 된다”며 “유모차전용주차구역이 생기면 남편 없이도 가기 부담 없고 편할 것 같다”고 전했다.

◇ “여기 유모차 있어요!” 승차벨로 알리자

버스의 뒷문에 있는 승차벨이 있는 프랑스 파리의 버스.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교통약자를 위한 승차벨이다. 김고은 기자 ⓒ베이비뉴스
버스의 뒷문에 있는 승차벨이 있는 프랑스 파리의 버스.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교통약자를 위한 승차벨이다. 김고은 기자 ⓒ베이비뉴스

버스기사가 유모차 이용자나 휠체어 장애인을 보지 못하고 출발하거나 ‘탑승했겠지’하고 빨리 출발할 때가 있다. 이때 버스 외부에 승차벨이 있으면 ‘버스에 타겠다’는 의사를 버스기사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유모차 이용자나 휠체어 장애인은 앞문보다 공간이 넓고 경사로가 설치된 뒷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승차벨이 뒷문 근처에 설치돼 있으면 보다 탑승이 용이할 수 있다.

프랑스나 영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버스 외부에 승차벨을 설치하고 있다. 교통약자가 있다는 것을 미리 버스기사에게 알려, 보다 안전하게 버스를 탑승하도록 하는 것.

서울시 내에서 저상버스를 운영하는 한 버스기사는 “승차벨은 처음 들어본다. 장난으로 일반인들이 누르고 장난치지 않는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괜찮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직접 승차벨을 이용해봤다는 한 엄마는 “이렇게까지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영국 사람들에게는 당연했다”며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는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사회가 잘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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