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 유래로 알아보는 동지의 의미
허약한 아이들의 건강을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염원
[칼럼] 신천 함소아한의원 이혁재 대표원장

1년을 긴 하루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봄은 아침, 여름은 낮, 가을은 저녁 겨울은 밤으로 말이죠. 실제로 한의학에서는 1년을 긴 하루의 개념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동짓날은 1년이라는 긴 하루의 한밤중이 되고 동짓날의 밤은 한겨울의 밤, 밤중의 밤이 됩니다. 이 깊고 깊은 밤은 추위와 어둠이 가득하고 밝은 아침 햇살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조상들은 동지보다 더 깊은 밤이 없으니 동지만 무사히 잘 보낼 수 있다면 이후로는 생동하는 기운을 맞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동지 이후로는 밝은 아침과 따뜻한 봄의 기운이 점점 다가올 테니까요.
이런 탓에 동지는 예부터 ‘작은 설’, ‘시작하는 날’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즉, 부활의 기운을 온전히 담고 있는 날이죠. 그래서 동지의 길고 춥고 무서운 밤을 잘 이겨내는 것이 중요했는데요. 이때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위로해 주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붉은색이 도는 팥죽입니다. 어둠을 이겨내고 밝은 빛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음식이 바로 동지 팥죽이었던 거지요. 즉, 동지에 만든 팥죽은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위로해주는 정감 어린 음식입니다.
조상들은 동짓날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 고사를 지내곤 했는데요. 팥죽을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습니다. 사당에 모신 천신의 도움을 받아 집안 곳곳에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었던 거죠. 붉은색 반짝이는 팥의 힘으로 음침한 기운이 도는 악귀가 물러나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런 민속 행위는 특히 허약한 아이들의 건강을 바라는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같은 동지라도 날짜가 음력 11월 10일 안에 들면 ‘아기동지’라 하여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해서 팥죽을 쑤지 않았는데요. 대신 아기동지에는 팥으로 만든 시루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추측하건대 동지가 너무 따뜻하면 팥죽이 빨리 상해서 어린 아이들이 곤란을 겪을까 염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동지는 음력으로 11월 23일이니 마음껏 동지 팥죽을 만들어 먹어도 좋겠지요? 지방에 따라서는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옹심’을 넣기도 하는데요. 작은설 동지에 나이 수대로 옹심을 먹으며 만수무강을 바랐습니다.
조상들의 팥에 대한 사랑은 동지 때뿐이 아니었습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믿고,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도 있었죠. 재미있게도 재앙이 있을 때뿐 아니라 경사가 있을 때도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런 풍습이 이어져 요즘에도 중요한 일에는 시루팥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는데요. 팥에는 비타민B1, 코틴산, 인, 철분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안토시아닌 성분이 체내 활성산소 제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올 겨울 아이들 건강간식 재료로 팥을 활용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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