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계약도 참습니다…'유치원 기간제교사'니까
노예계약도 참습니다…'유치원 기간제교사'니까
  • 기고 = 이윤재
  • 승인 2017.08.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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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계약직’이 꿈인 유치원교사들의 이야기

[특별 기고] 이윤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정책국장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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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의 과제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 지난 100일 동안 정부의 일자리 정책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교비정규직을 비롯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하며, 7월 20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이번 정규직 전환 대상에 ‘기간제교사, 영어회화전문 강사’ 등은 제외됐다. 워낙 이해당사자들의 찬반 여론이 뜨겁고 이들의 정규직 전환에는 여러 쟁점이 많기 때문이다. 대신 정부는 교육부에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교사, 학부모, 비정규직 당사자,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정규직 전환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지난 17일 교육부에서는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이날은 비정규직 당사자 면담이 있었는데, 명칭도 복잡한 ‘유치원방과후과정 시간제기간제교사’도 참가해 자신들의 억울함과 정규직화 요구를 호소했다. 이들의 요구는 ‘예전 신분인 학교비정규직(무기계약)으로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왜 정교사도 아닌 무기계약직을 요구하고 있을까?

 

◇ ‘정교사 발령 시 계약은 자동해지 된다’

 

‘기간제교사는 일시적 사유로 고용된 거 아닌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렸다. 적어도 2012년까지는 맞았다. 교육공무원법은 기간제교사의 채용사유를 ‘휴직교사대체, 특정교과의 한시적 담당 등’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그러나 2012년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는 유아교육법을 개정해 유치원의 교육과정을 교과과정과 방과후과정으로 구분했다. 동시에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 방과후과정에는 무제한적으로 기간제교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도 주 40시간 미만의 시간제교사로 말이다.


개정 이유는 ‘장기적으로는 교사를 채용할 예정이지만, 교원 정원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정원이 확보될 때까지 기간제교사로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는 비정규직 남용을 제한하는 기간제법, 교육공무원법의 입법 취지를 완전히 훼손했다.

 

유치원방과후과정 담당인력 현황(2017년 4월 기준, 교육부 자료).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유치원방과후과정 담당인력 현황(2017년 4월 기준, 교육부 자료).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이런 정책에 따라 2012년, 2013년 당시 유치원종일반(에듀케어) 강사의 절반인 3000여 명 정도가 기간제교사로 전환됐다. 전남, 경남 교육청 등에서는 당사자 의견 청취 없이 “정책적 결정”이라며 밀어붙인 결과, 현재 방과후과정 담당 인력의 100%가 기간제교사다. 광주, 충북 등 대부분의 교육청에서는 2년 미만 근속자만 선별해 기간제교사로 전환했다.


지난 5년간 기간제교사로 전환되지 않은 유치원종일제 강사들은 방과후과정강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중 3477명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이하 2017년 4월 기준).

 

유치원 기간제교사가 자신들의 상황을 풍자해 그린 만화. 시간 외 근로 요구, 학부모와 소통 금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유치원 기간제교사가 자신들의 상황을 풍자해 그린 만화. 시간 외 근로 요구, 학부모와 소통 금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 교육노동자들의 불안한 고용환경은 불안한 교육을 만든다

 

그러나 강사에서 기간제교사로 전환된 3755명은 ‘교사’의 이름을 얻었지만, 매년 재계약 불안과 온갖 차별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들의 채용권을 쥐고 있는 학교장에게 매년 재계약 때문에 잘 보여야(?) 했으며, 근무평가 권한을 쥐고 있는 정교사에게는 불합리한 점이 있어도 말 한마디 못했다.


이들 기간제교사들은 학부모와의 면담조차 정교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방학 기간에는 혼자 20여 명의 원아들을 하루 8시간 동안 꼬박 봐야만 했다. 정교사들은 방학 기간을 교육공무원법 41조의 자율연수기간으로 활용해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근로계약서에는 ‘(기간제교사의 자리에) 정교사 발령 시 계약은 자동해지 된다’는 조항이 달려 있다. 조건부 인생이다. 심지어 ‘하루 4시간 근로계약이지만 근무시간 외에도 출근해 업무를 도와야 한다’거나, ‘학부모 민원, 학교에 피해를 끼치면 계약을 자동 해지한다’는 등의 ‘노예계약’ 문구가 있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을 특별한 사유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차별과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교육 현장에서부터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현재 교육부의 유아교육 정책과 제도로는, 3755명에 달하는 유치원방과후과정 기간제교사는 앞으로도 기간제 신분이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른다. 게다가 정교사가 발령되면 하루아침에 해고 대상자가 된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는 이런 적폐들을 바로잡으라고 구성됐다. 지난 정권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제도로 교사, 학부모, 학생들 모두 피해자가 됐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교육노동자들의 불안한 고용환경은 불안한 교육을 만든다. 이번 정규직 전환 논의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실현되는 논의로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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