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체험기] 화학제품 없이 1주일 살기에 도전합니다
나를 지배해온 화학제품 30개 '훌쩍'...대체품 찾기 '험난'
[기자 체험기] 노케미족으로 일주일 살기_1탄
가습기살균제, 치약, 화장품, 이제는 생리대까지 화학제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노케미족'(No-chemi 族,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거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화학물질 공화국'인 우리 사회에서, 노케미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기자가 직접 일주일간, 생활 속에서 화학제품 없이 살아보는 노케미족 체험에 나서기로 했다. 그 기록은 세편의 기사로 남긴다. - 기자의 말
#내게 향기나는 삶은 너무 당연
25일 금요일 아침.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강한 민트향 치약 묻힌 칫솔을 입에 넣으면, 들숨을 타고 들어오는 싸한 상쾌함. 아침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리고나선 달달한 냄새가 진하게 나는 바디워시로 아침 샤워를 한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나서 건조한 모발에 영양분을 더하기 위해 헤어 세럼은 필수다.
내게 민낯은 익숙치 않다. 화장대 위엔 토너와 로션, 에센스 같은 기초 제품 외에도 파운데이션, 아이섀도우, 아이라이너, 아이브로우, 립스틱 같은 색조 화장품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화장을 지울 때에도, 꼭 클렌징 오일과 폼클렌저로 이중 세안을 하는 나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문을 나서기까지, 내가 사용하는 화학제품은 10종 가까이 되는 듯하다.
나는 몇 달 전 독립한 1인가구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누가 내게 ‘독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으면 “방에서 포근한 향기가 나고~”로 시작하는 그런 묘사를 하곤 했다. 그 때문에 화학제품은 내 하루를, 아니 나를 장악해 버렸다. 안 끼는 곳이 없다. 옛날 어떤 여배우의 하루를 CF로 묘사했던 것처럼, 나의 하루는 각종 화학물질들로 표현할 수 있다.
#화학제품에 거부감 없는 편
그동안 나는 별 거부감 없이 화학제품을 사용해왔다. 천연이나 친환경, 유기농보다는 ‘강력세정’, ‘효과 빠른’ 같은 수식어에 지갑을 열었다. 향 좋은 제품을 검색해 구입했다. 세제든 샴푸든 촉촉함과 부드러움이 탁월하다면 장보기 목록에 적어뒀다. 몇 년 전 오가닉, 자연주의 유행이 한창일 때도 시큼한 식초 냄새와 뻣뻣함이 두려워 샴푸를 쓰고 말았다. 밥은 잘 해먹지 않기에 쌀뜨물 세안도 해보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 현관문과 주방 사이에는 지인에게 선물받은 디퓨저가 있다. 여름철 기승을 부리는 하수구 냄새를 누르기 위해서다. 하루종일 입었던 옷은 옷장에 넣기 전 복숭아향 의류 방향제를 뿌려 잠시 밖에 걸어두곤 한다. 더위가 가시긴 했어도 여름은 여름이라 옷을 자주 빨아야 한다. 나는 세탁을 할 때, 분말 세제와 섬유유연제, 때때로 표백제와 울샴푸를 이용한다.
집에서 저녁을 해먹는 날엔, 석류향이 첨가된 주방세제로 그릇을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는다. 그리고는, 키친타올로 물기를 걷어낸다. 행주를 희석한 락스물에 담갔다가 말려 쓰기는 하지만, 그릇 닦는데는 행주를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방안에선 눈에 띄는 곳마다, 휴지와 물티슈를 놓고 쓴다.
#하지만, 생리대 논란은 위협적
그런데, 최근 국내 생산·유통 중인 생리대에 대량의 화학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여성인 내게 큰 충격을 줬다. 그 물질이 발암 논란이 있다는 사실은 더없이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들쭉날쭉한 생리주기나 생리량이 스트레스 탓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단 생각 때문이었다. 생리컵을 사용해보고 싶었지만 구입이 어려워 미뤄두고 있었던 터다.
내가 화학제품에 두려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기관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스프레이 형태로 된 살충제, 모발셋팅 제품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늘상 사용해온 화학제품들에 대해선, 별 거부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노케미족으로 일주일 살기 D-1
27일 일요일 밤. ‘노케미족으로 일주일 살기’ 체험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쓰던 화학제품을 방 한가운데에 모아봤다. 화장대, 욕실, 주방에서 얼추 모은 것만 20가지. 파운데이션, 립스틱 같은 화장품은 물론, 샴푸, 린스, 바디워시, 바디로션, 주방세제, 세탁세제, 휴지, 물티슈 등 매일 달고 사는 것들이었다. 여기에 필링젤, 마스크팩, 면도크림 등 이따금씩 쓰는 관리 제품까지 포함하면 30가지가 훌쩍 넘었다.
'이렇게나 많았나….'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긴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마지막 샤워를 했다. 바디로션도 듬뿍 발라줬다. 샤워를 마치고 졸음이 몰려올 때쯤, 내가 가진 옷 대부분이 합성섬유로 만든 것임을 깨달았다. 내일은 월요일, 하지만 나는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드디어 첫날, 내가 찾아간 곳은?
28일 월요일 아침. 화장도 샤워도 하지 못했다. 대체품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탓이다. 급한대로 물만으로 고양이 세수를 했다. 물기를 털어내고 습관적으로 로션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입을 여러 차례 물로 헹구고 집을 나섰다. 1시간 걸리던 단장이 10분으로 마무리됐다. 습기도 향기도 없는 아침이 무척 낯설었다.
내가 출근 전 찾아간 곳은 바로 대형마트 세제 코너.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대체품을 찾아 나선 것. 그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향긋한 냄새가 반겼다. 특히 바디케어나 헤어케어 제품이 진열된 곳은 흡사 꽃밭을 가로지르는 것 같았다. 알록달록 아름답게 채색한 패키지를 둘렀다.
‘자연’은 좋은 마케팅 수단이었다.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향기가 떠오르는 각종 과일과 꽃 이름이 세제들의 성격이 됐다. 브랜드명에 아예 오가닉, 내추럴, 자연 등을 넣은 제품도 많았다. 제주 열풍을 증명하듯 이름에 ‘제주’를 단 제품도 있었다. 아이들을 씻기기 위한 제품들도 나름의 소구방법을 가졌다. 마일드, 순한, 아토피 등이 주로 사용됐다.
향기는 또 다른 마케팅이었다. 어느새 나는, 상큼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샴푸와 바디워시를 하나씩 들어올려 향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유혹이 진할수록 쓸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패키지 뒷면에 적힌 전성분은 이런 추정을 확신케 했다. 성분표기가 작은 글씨로 9줄 넘는 제품도 있었다.
비싼 돈을 지불하더라도 대체할 물품을 찾아야 한다. 마트를 몇 바퀴 돌았다. 천연 ‘유래’ 제품은 찾을 수 있었지만 ‘천연 제품’은 찾기 어려웠다. 매대 한 켠에 유럽에서 왔다는 천연 샴푸·컨디셔너가 있었다. 각종 오일과 추출물이 다른 샴푸나 컨디셔너보다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은 전성분 표기로 확인했다. 그래도 ‘소듐라우로일메칠이세치오네이트’ 같이 발음하기 어려운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써도 되는지 안 되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이 제품은 100ml당 3920원으로, 옆에 놓인 일반 제품에 비해 3배 이상 비쌌다.
#'베·구·산'이 그나마 찾은 대안
의외로 세탁세제 코너에서 첫 대안을 발견했다. 일명 ‘베·구·산’, 베이킹소다·구연산·과탄산소다(산소계표백제)가 그것이었다. 주로 세정, 표백, 살균 등에 효과를 보인다는. 이것들도 천연물질이라 부르기 어렵지만 다른 화학제품에 비해 안전성은 검증돼 있다. 베이킹소다나 구연산은 식품첨가물로 활용될 정도다. 그래도 분말형태로 호흡기에 들어가면 독성 반응을 야기할 수 있어 사용 시 제품 주의사항을 잘 읽어보고 따라야 한다.
“그거 사실 거예요?”
과탄산소다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말을 건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A브랜드 과탄산소다는 내가 들고 있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장 저렴한 제품이었다. '베구산'도 4~5개 브랜드 정도로 비교적 다양하게 구비돼 있었지만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반면 옆칸 합성세제는 진열된 그대로였다. 조금 멀리 떨어진 생리대 코너도 한산했다. 평일 오전임을 감안한다고 해도 생활용품에 비해 식품 쪽에 사람이 많았다. 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기억을 더듬더듬 짚어 양치질 할 때 쓸 소금과, 린스와 섬유유연제를 대신할 식초, 보습에 필요한 코코넛오일 등을 샀다. 뭔가 더 사야 할까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천연 ○○ 만들기” 정보는 넘쳐났다. DIY는 일단 패스하고, 당분간 완제품으로 버텨보기로 했다. 아침에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얼굴이 자꾸 따끔거리고 간지러웠다. 붉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꺼칠한 입술에 습관적으로 침을 묻히게 됐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옷도 합성섬유잖아.”
나에게 ‘노케미족으로 일주일 살기’ 기획을 제안한 취재팀장이 입을 열었다. “아, 제발….” 옷만은 안 된다고 읍소하며 뒤돌아선 그때,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나는 휴지를 쓸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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