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하는 하루에서도 엄마는 한뼘 배운다
[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유학생 엄마의 육아이야기
여기는 미국 오하이오주. 아침저녁 기온이 섭씨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털모자를 꺼내 쓰고 목도리도 단단히 두른다. 오전반 킨더가튼(kindergarten, 한국에서 유치원에 해당)에 다니는 큰 아이의 수업이 끝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작은 아이가 잠든 사이 점심 준비도 미리 좀 해두고 식탁 위에 올려둔 책도 한 페이지 읽어보려 했건만. 집안 정리 조금 하고는 어영부영 넋 놓고 있다 보니 시간이 다 지나버렸다.
다행히 늦지 않게 나서서 조금 미리 도착.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선생님의 인솔을 받아 나올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오롯이 혼자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 머리 속은 이런저런 잡생각들로 가득하다. 생산성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다.
언젠가 뒤적였던 인류학자 헤더 몽고메리(Heather Montgomery)의 책, ‘유년기 인류학 : 인류학자가 본 어린이의 삶(An Introduction to Childhood : Anthropological Perspectives on Children’s Lives)’을 보면 세계 곳곳의 다양한 방식의 육아와 훈육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들, 아이들과 맺는 관계 방식도 사실은 각기 다른 문화 다양성에 기반을 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육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내가 아이들을 이해하고 대하는 태도들도 조금은 바뀌고, 또 절충점을 찾아갔던 것 같다. 꼭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아니더라도 어떤 집단을 만나고, 어떤 지역 문화를 접하느냐에 따라 나도, 아이도 변화하고 배우고, 또 때로는 내 것을 더 단단히 하는 계기가 되었겠지.
인솔 교사를 따라 줄지어 나오던 아이들의 무리에서 큰 아이가 신나게 손을 흔든다. 선생님과 눈인사를 하고는 내게 달려온다. 온 우주가 내가 내달음질 쳐 오는 것만 같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킨더가튼에 대해 궁금한 이야기며, 집에서 먹을 점심 메뉴에 대해 조잘거린다. 백미러로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는 장난기와 (벌써 멋있는 남자인 척하는) 근엄함이 반쯤씩 섞여 있다.
조잘거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예스(Yes) 또는 노(No)로만 대답한다. 조금 섭섭하다가도 엄마랑 더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할 것을 알기에 모르는 척 내가 더 수다를 떤다. 나름 과묵했던 내가 내 평생 이렇게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춰본 적이 있던가. 조용히 단답형 대답만 하던 아이가 이내 같은 반 어느 아이가 오늘 방귀를 빵 뀌었다고 이야기하고는 깔깔 웃기 시작한다. 만국 공통의 아이들 유머코드, 방귀. 깔깔 웃는 아이의 얼굴에 내 표정도 덩달아 실룩거리기 시작한다. 대화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영부영 웃음으로 마무리 지어도 둘 다 기분 좋으면 그만이지.
큰 아이와 현관에 들어서니 둘째 아이가 눈가가 촉촉해져 아빠 품에 안겨있다. 곧 늦은 출근을 해야 하는 아빠는 외출복 바지에 둘째 아이가 게워낸 젖 자국이 수놓아진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다.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아이들 아빠의 얼굴을 대하니 본격적인 하루가 이제서야 시작되는 기분이다. 니체의 명언을 되새기며 소매를 걷어 올린다.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한 시간 뒤면 나는 니체 같은 인간형은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자각하겠지만, 뭐 어떤가. 지금은 잠시 그저 용감한 엄마이고 싶다. 평범하지만 사소하지는 않은 미국 유학생 엄마의 일상이 지금부터 비로소 시작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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