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미국에서 아기 낳는 건 어때요?”
“언니, 미국에서 아기 낳는 건 어때요?”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2.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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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유학생 엄마의 육아이야기

임신 소식을 전할 겸 안부전화를 해 온 후배가 미국에서의 출산 경험을 물었다. 후배의 질문을 듣고는 두 번의 출산을 곱씹어봤다. 내가 첫 아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미국으로 출국하기 불과 석달 전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의 작은 대학 도시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한창 출국 준비 중이었고, 남편과 둘이 떠날 줄 알았던 미국행에 동행이 생기면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를 갖고서야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가 본, 자신의 몸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한 편이었던 여성이었고 한국에서의 첫 산부인과 방문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내가 방문한 산부인과의 의사는 무척 고압적이었고, 설명도 거의 없이 초음파를 진행하고는 질문이 가득한 나를 등 떠밀듯이 내보냈다. 후에 나는 지역맘카페를 보고나서야 내가 유난히 불친절하기로 소문난 병원에 갔었음을 알게 됐다. 엄마들의 후기에 따르면 얼마든지 친절하고 또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병원들도 많았다. 지병이 있던 나는 그 뒤로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대학병원으로 옮겨 재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진료를 받은 대학병원의 의사는 꼼꼼하게 질문에 답해주었고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고압적이지도 않았다.

미국에 도착해서 의료보험증이 나오자마자 한 일은 산부인과 예약을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의사의 진료를 받으려면 4~5개월 이상 기다려야한다고 안내받았다. 그나마 운 좋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에야 다른 전공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석달이 지나고서는 원하던 교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초조하게 아이의 상태를 궁금해하며 기다리던 사이 뱃 속의 아이는 훌쩍 자라있었고, 듣던대로 미국 산부인과에서는 그 흔한 입체 초음파는 커녕 초음파 자체도 거의 해주지 않았다. 배의 크기만 줄자로 재고는 늘 모든 것이 좋아보인다고 말하는 의사가 처음에는 그렇게 야속하기만 했다.

첫 아이 출산인데다 이국에서의 출산으로 불안이 가득했던 나는 의사를 만날 때마다 질문을 쏟아냈다. 의사는 그 어떤 엉뚱한 질문에도 당황한 기색없이 조근조근 모두 친절하게 답변해줬다. 의사와의 긴 대화에서 신뢰가 생겼다. 환자가 지정된 방에 들어가 기다리면 의사가 찾아오는 미국의 병원 시스템은 의사가 내가 있는 곳을 방문한 시간 동안은 전적으로 해당환자에게 귀 기울여주고 신경써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검사 방법이나 내용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해줬고, 진행 전 늘 동의를 구했다. 때문에 내진에 대한 공포가 심했던 나는 한국에서는 막달이면 필수에 가깝다는 내진을 두 아이 출산 당일 이 외에는 받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검사와 진료는 산모나 태아의 건강에 심각하게 직결되는 것이 아니면 모두 산모의 의사를 따라 결정한다.

미국 대학병원의 분만실 풍경: 이 곳에서 진통부터 분만까지의 과정이 전부 이뤄진다. ⓒ이은
미국 대학병원의 분만실 풍경: 이 곳에서 진통부터 분만까지의 과정이 전부 이뤄진다. ⓒ이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미국의 산부인과는 좋기만 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곳에도 그림자가 있다. 앞서 말한대로 한국과 비교하면 장기간의 대기 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의료보험이 커버하는 내용이 많지 않으면 병원비는 천정부지로 오르게 된다. 물론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와 같은 다양한 복지 혜택도 있으나 소득 수준이 지원 가능 기준을 살짝 넘을 경우, 혜택 가능성은 많이 떨어진다. 그나마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예약 자체를 받아주지 않는다. 보험이 처리 중이라 나중에 보험이 나오는대로 업데이트 하겠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실제로 나는 둘째를 임신했을 당시 주를 옮겨 이사를 하게 되면서 기존 보험을 새 보험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공백이 생겨 고생한 적이 있다. 임산부 장염 때문에 밤새도록 식은땀을 흘리고 통증에 시달리고도 병원 예약도 되지 않고, 응급실로 가기에도 병원비가 무서워 집에서 끙끙대며 흰죽을 끓여먹으면서 버틴 것이다. 장학금을 쪼개 근근이 생활하며, 종이값도 아껴보겠다고 이면지에 공부하는 유학생 부부에게는 보험처리 안 되는 병원비가 밤새 겪은 걱정과 고통보다 무서웠다. 실제로 주변에 급체가 와서 보험 없이 응급실에 갔던 한 지인이 두 달치 월급을 병원비로 내야했던 쓰디쓴 경험을 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참고 손이나 더 따 볼 것하고 눈가가 스산해지는 그를 보면서 우리는 함께 “웃프구나”를 외쳤더랬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은, 미국 의사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은 사실은 의사가 하룻동안 진료하는 환자 수가 한국만큼 많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지점이다. 한국의 의사들이 하루 58명 이상의 환자들을 진료(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02년 자료 참고) 하는데 반해 미국의 의사들은 15명에서 30명의 환자들만 진료한다고 하니, 할애되는 시간 차이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병원이라서 좋고, 미국 의사들이라서 친절한 것이 아니라 제도와 환경이 만들어낸 차이인 것이다.

다만 여의사를 지정했던 나에게 남성 스태프가 진료나 검사에 참여하게 됐을 때 반드시 동의 여부를 물어봐 줬던 것은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구성원을 대해왔던 그들의 경험에서 오는 배려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대화과정이나 진료과정에서 가장 중요시 되고 존중시 되는 것 역시 임산부 당사자의 의견과 생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두 번 다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버티기는 했지만, 무통주사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산모의 상태가 제일 중요하니 고통이 너무 심하면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이 꼭 이야기하라고 신신당부하던 의료진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둘째 아이를 갖고 나서도 이런 경험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두 아이를 갖고 출산했던 과정들은 어느 새 개인적인 추억을 넘어선 미국 사회에 대한 작은 공부와 이해로 남게 됐다.

아, 그나저나 후배에게 잊고 하지 않은 (사실은 차마 하지 못한), 제일 중요한 말이 있다. "있잖아, 한국에서 아기를 낳든 미국에서 아기를 낳든… 엄청 아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짓궂은 선배는 이만 어서 가서 그녀를 위한 출산 선물 소포를 준비해야겠다. 꾹꾹 눌러 쓴 손편지도 함께.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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