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시작하면, 나도 아이 낳을 수 있는 거야?"
"생리 시작하면, 나도 아이 낳을 수 있는 거야?"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02.0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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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딸과 나의 '피의 연대기'

작은아이가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 화장실에 대단한 것이 생겼다며 맞춰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스무고개처럼 문제를 내던 아이가 알려준 사실은 학교 여자 화장실에 ‘위생용품수거함’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건조대에 널려있는 언니의 면생리대를 만지작거리며, 작은 아이가 물었다.

“엄마, 생리하면 아파?”

“엄마랑 언니는 생리통이 없어서 너도 없을 가능성이 큰데, 아주 많이 아파서 학교나 직장에 못가는 사람들도 있지. 그래서 생리휴가라는 것도 있고.”

“와~ 짱 좋다!”

“엄마, 생리는 어떻게 나와?”, “학교에서 생리를 시작하면 어떻게 해?”, “그러면 맨날 생리대를 가지고 다녀야해?”, “옷에 묻으면 어떻게 해?” 한 번 시작된 ‘생리’에 대한 궁금증이 봇물 터지듯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 작은 따님, 학교에서 성교육 안 받았나보구나.”

“아니, 받았는데, 생리에 대한 건 안 받았어.”

“그래? 그럼 엄마가 가르쳐줄게. 엄마 생리대 하나 가져와봐.”

그리고 아빠가 방으로 벌컥 들어오면 깨질 분위기를 고려해 문을 잠갔다. 아이의 속옷을 가져오라고 하고 직접 아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생리대 사용법을 알려줬다. 생리주기, 기간, 처음 생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엄마와 언니는 언제 생리를 시작했고, 어떤 점이 불편했는지까지도.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는데 아이는 내 옆에 앉아서 눈을 반짝 반짝 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끊임없는 질문과 이어지는 “아~”하는 감탄사.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딸과 함께 찾아본 우리 주변의 성차별. ⓒ엄미야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딸과 함께 찾아본 우리 주변의 성차별. ⓒ엄미야

어느 부모나 아이를 키우면서 성교육에 대한 고민과 마주한다. 우리 세대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된 성교육, 거부감 없이 열린 성교육을 받게 해주고픈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방법은 잘 모른다. 그리고 부부사이에 운전 가르치기가 가장 어렵고, 부모자식간에 공부 가르치기가 가장 어렵듯, 부모가 내 아이 성교육을 해주기란 만만찮게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무려 민주노총 성평등 강사이고 조합원들 교육은 꽤 여러 번 했다는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야지, 해야지” 하는 사이에 큰 아이는 중 2가 돼 버렸고, 작은 아이는 “생리를 시작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엄마로서 직무유기를 한 셈인데, 그래도 다행인건 ‘학교에 새로 설치된 위생용품 수거함을 계기로 곧 닥칠 생리에 대한 교육은 엄마가 해 줄 수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내가 왜 아이의 성교육을 어려워했던가. 우선 나는 성교육이라고 하면 자궁과 나팔관, 남성의 생식기와 여성의 생식기, 그리고 성관계와 피임도구. 뭐 이런 걸 떠올렸던 것 같다. 자궁과 나팔관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해 32년 간 생리를 한 나 역시도 잘 알지 못하는 의학의 세계였고,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 성관계 이야기로 가면, 이건 뭐, 말하기가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나 드라마는 굳이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모 마음이 성교육에도 똑같이 적용됐던 것 같다. 순전히 내 세대의 고리타분한 경험과 생각인거지.

그런데 아이에게 곧 다가올 ‘생리’에 대해, 그리고 ‘생리대’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니 말하기가 쉬웠다. 아이에게 젓가락질이나 라면 끓이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처럼 실용적이었고, 듣는 아이도 생활의 지혜 하나를 익히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이는 더 물었다.

“엄마, 생리를 시작하면 나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되는 거야?”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는 그래서 생리 이후에는 어떻게 자기 몸에 대해, 타인과의 신체접촉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이는 “그러면 여자와 여자가 하는 신체접촉은?”이라고 물어봤다. 물론 아이가 동성애를 염두하고 물어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그런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어 볼 만 했다. 참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사실 성교육에 집착하는 것은 딸 가진 부모들이 더하다. 그것은 ‘이 세상은 여전히 여성이 성적 폭력에 절대적으로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우선은 스스로 알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듯 하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딸 가진 부모들은 걱정이 먼저 밀려오지만, 아들 가진 부모들은 여자 친구가 생긴 아들을 자랑한다. (심지어는 아들이 바람둥이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세상이 험하다. 딸 가진 부모는 그래서 두렵고 걱정이 많다. 조선시대냐고? 여성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라고, 요즘 여자들 참 편하다는 말들 많이 한다. 안다. 맞다. 그런데 못 쫓아간다는 거지. 세상 다른 것들이 바뀌는 속도를 성적으로 평등해지는 속도가 못 따라 간다는 거다.

얼마 전 큰 문제가 된 서검사의 성폭력 고발 글 전문을 읽어보다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머물렀던 구절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아들을 낳아서”

그런데 ‘74년생 엄미야’는 딸만 둘을 낳았다. 이제는 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도 걱정하며 싸워야 하는 과제가 더 얹어졌다. 아이구, 내 팔자야. 그래도 다행이야. 딸 둘과 이렇게 ‘피의 연대’를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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