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계획 세웠어요?”
“아뇨. 아~ 오늘부터 알아봐야겠어요.”
“날씨는 점점 좋아지는데, 무얼 할지 고민이에요.”
요즘 직장에선 아빠들이 모이면 아이들과 함께할 주말 일정을 나눈다. ‘이제 수요일인데 벌써 주말 타령이다’고 할 테지만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집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불만 요인이 되고, 이는 곧 온 집안을 짜증으로 채우는 사태를 초래한다.
그래서일까? 매번 기다리는 주말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걱정스럽기도 한 주말이 됐다.
아내와 공동육아를 시작하기 전, 나는 아내가 계획하는 대로,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는 지능 없는 로봇이었다. 그러다 점점 아이들이 걷고 뛰며 온몸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하면서는 아빠의 주체적인 육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빠이니 이제라도 변해야겠다며 호기롭게 ‘아빠놀이학교’, ‘100인의 아빠단’ 등 초보 아빠를 위한 카페에 가입해 실생활에 즉시 적용 가능한 선배들의 일급 노하우를 쏙쏙 모았다. 하지만 이런 정보도 실행해야 보배가 되는데, 게으른 나에겐 그저 작심삼일의 대상일 뿐이었다. 게다가 미세먼지의 출현으로 야외활동의 기회가 줄어들자 ‘집 밖은 위험해’라는 괴팍한 논리로 자연스레 집안에서 뒹굴려고 했다.
지난 연말.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나는 집에서 퍼져있었다. 어쩔 수 없었던 과로와 피할 수 없었던 과음을 핑계로 뒹굴뒹굴했더니, 오후가 되자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싸늘한 아내의 침묵과 첫째 은이의 투덜거림, 특유의 귀여움을 장착한 둘째 빈이의 말똥말똥하고 간절한 눈빛.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는 뭐라도 생각해냈다면 좋았을 텐데, 순간 멍해졌다.
다시는 꺼내고 싶은 않은 주말을 보내고서야 나는 꾀를 하나 냈다.
매번 닥쳐서 세우던 주말 계획을 한 달 단위로 계획하는 것이다. 그러면 날씨나 집안 대소사, 건강상태 등 다양한 변수의 발생에도 당황하지 않고 취사선택이 가능해져 실행에 옮길 확률이 높아진다.
-1주 : 대림미술관 전시 : PAPER, PRESENT
-2주 : 눈썰매장
-3주 : 가족 음악극 ’한여름 밤의 꿈‘
-4주 : 서울 과학관
지난 1월의 월간계획이다, 예를 들어 날씨가 좋아 대림미술관 전시회를 가게 되면 근처 통인시장에 들러 엽전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체험을 추가할 수 있다. 덜컥 비가 내리거나 갑작스런 미세먼지의 출연으로 야외활동이 어려워져 이런 활동을 할 수 없다면, 동네 키즈카페나 블록 방을 간다. 이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아이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놀거나 팝콘을 사다가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는 플랜B를 가동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산뜻한 봄에는 주말 나들이가 훨씬 다양해진다. 딸기체험, 동물농장을 가거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최하는 축제를 따라 여행을 하는 것도 좋다. 또 멀리 가지 않더라도 고개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개나리, 진달래를 들여다보는 것도 즐겁다. 사진을 찍으면 이름과 꽃말을 알려주는 앱이 있어 식물공부를 시키려는 아빠에게, 날아오는 벌을 가리키며 “나도 날개를 갖고 싶어. 우리 택배로 받을까”라고 하는 녀석의 엉뚱함에 놀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한 나태주 님의 다른 시 '풀꽃2'가 떠오른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사소함에도 맘껏 웃는 아이들을 보며 한 걸음 더 서로를 알아가는 주말이 되기를. 그래서 가족이 모두 연인이 되기를. 여러분도 그러하길. 감히 기대해 본다.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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