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돌아가는 게 뭐예요?” 쉽게 답할 수 없는 아이의 물음
“엄마, 돌아가는 게 뭐예요?” 쉽게 답할 수 없는 아이의 물음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4.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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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아이에게 죽음과 이별을 이야기할 때

아이가 몇 번씩 반복해서 보는 애니메이션 중에 '겨울왕국'이 있다. 작년 이맘때 처음 본 후로 스무 번은 족히 본 것 같다. 같은 영화지만 아이가 전하는 감상이나 반응은 매번 다르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아이는 주인공 엘사 여왕이 마법을 부리던 장면만 서툴게 흉내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 속 노랫말을 주워섬기더니 대사를 줄줄 외우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내 역할놀이에 재미를 붙인 아이는 엘사를 자청하며 나에게 안나 공주와 그 밖의 등장인물들을 모조리 떠맡겼다. 그렇게 일인다역을 맡은 나는 아이와 함께 우리만의 겨울왕국 이야기를 만들며 엄마 역할을 다했다. 그러다 지난겨울 어느 날, 영화를 보던 아이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엄마, 돌아가는 게 뭐예요?”

다섯 살 너에게 '겨울왕국'은 특별한 기억이 될 거야. ⓒ한희숙
다섯 살 너에게 '겨울왕국'은 특별한 기억이 될 거야. ⓒ한희숙

영화 초반부에 엘사 자매의 부모는 배가 침몰해 사망한다. 폭풍우 치는 밤, 파도가 배를 집어삼키는 장면으로 죽음이 암시되는데 엄마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내 설명에 아이가 물어온 것이다. 그전에는 이 장면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이였다. 물론 그에 대한 상황 설명도 달라진 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다섯 살 아이 인생에서 최초로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 정도로 답했던 것 같다. 반면 너무나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가 내 품에 와락 안겼다는 사실이다. “엄마, 돌아가면 안 돼요”라는 울먹임과 함께였다. 아이의 격한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아이에게도 엄마는 다시없는 소중한 존재이니까.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에서 목숨이 다한 오리에게 명확한 실체를 가진 ‘죽음’이 다가온다. 지금 곁에 온 이가 죽음임을 인지한 오리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죽음을 받아들이고 최후를 맞는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 같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책인데 이야기 속 죽음조차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물며 어린 자식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나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엄마는 빨리 죽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아이를 다독이자 다행히 아이는 더 심각해지지 않았다.

그림책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한희숙
그림책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한희숙

아이가 느꼈을 그때의 슬픔과 두려움을 엄마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책이 있다. 일본 작가가 쓰고 그린 그림책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이다. 세상을 등진 엄마가 유령으로 나타나 아이를 위로해 주는 이야기인데 장담하건대 엄마라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책이다. 다섯 살배기 어린 자식을 두고 엄마가 죽었다는 설정에서 이미 깊은 슬픔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삶이 간절해진 게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 마음은 다 그럴 텐데 어린 자식을 두고 엄마가 죽었다니 제아무리 그림책 이야기라고 해도 마음이 아파온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엄마를 잃은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중에는 “엄마가 잘 때 입 안에 코딱지를 넣었”다든가 친구들에게 엄마가 예순다섯 살이라고 말했다는 둥 거짓말을 백 번쯤 했다는 둥 아이다운 기억도 섞여 있다. 아기자기한 그림체도 분위기를 필요 이상으로 무겁지 않게 이끈다. 아이 또한 제법 씩씩하게 엄마 없는 시간을 견뎌내 독자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든다. 이 책은 엄마와 쌓은 추억이 아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니 내 아이와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다섯 살 내 아이는 그 시절 겨울왕국에 푹 빠져 역할놀이를 하자며 허구한 날 나를 졸라댔다. 아이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텐데 정작 나는 귀찮다고 대충대충 했던 게 이제야 마음에 걸린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놀기 지칠 때면 지금을 떠올려야겠다.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는 시종일관 엄마 독자들의 눈물샘을 힘껏 자극하는데 나는 꾹꾹 참다가 마지막장에서 터져버렸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엄마 팬티를 입고 그대로 잠든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힌 채로 아이는 무슨 꿈을 꾸는지 웃으며 잠이 들었다. 꿈에서라도 엄마를 만났으면… 그림책 속 아이는 엄마 없는 삶을 씩씩하게 견뎌냈지만 이렇듯 엄마와 자식을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갈라놓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며칠 뒤면 자식 잃은 엄마 마음을 온 사람들이 아프게 느끼는 날이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더 무겁다. 그저 하루하루를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기차를 좋아하는 건이가 좋아. 친구한테 친절한 건이가 좋아. 블록을 잘 만드는 건이가 좋아. 어리광을 피우는 건이가 좋아. 셀 수도 없을 만큼 건이가 좋아서, 엄마는 가슴이 벅차. 건아, 고마워. 건이의 엄마라서, 엄마는 행복했어.”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난 그림책 속 엄마가 아이에게 남긴 마지막 고백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라도 특별한 건 없다. 평소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다. 지금 당장 아이에게 고백해야겠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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