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더 많이!' 조기교육의 유혹이 아이 망친다
'더 빨리, 더 많이!' 조기교육의 유혹이 아이 망친다
  • 칼럼니스트 권장희
  • 승인 2018.04.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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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육아 지혜바구니] 천재적인 우리 아이, 무엇부터 가르칠까요?

Q. 요즘 세 살된 우리 아이를 보면 천재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빨리 배우고 익히는지 신기할 정도예요. 그래서 이렇게 똑똑한 천재를 방치하는 것은 부모로서 잘하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 무엇부터 가르쳐야할지 고민입니다. 영재들을 조기에 발굴해 교육하는 기관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곳에 보내야할까요? 아니면 집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좋은 조기교육 도구나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부모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아이의 행동을 즐거워하는 것만큼 영유아기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베이비뉴스
부모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아이의 행동을 즐거워하는 것만큼 영유아기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베이비뉴스

A.  먼저 천재성이 있는 자녀를 얻으신 것을 축하합니다.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로서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뇌과학은 3세 전후에 아이의 대뇌피질에서는 시냅스의 연결이 폭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천재적일 뿐 아니라 모든 아이는 이 시기에 천재적인 배움을 경험합니다.

이 시기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를 배우고,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성을 익히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선택하는 주의집중력을 키워갑니다.

돌아보면, 우리 부모들이 모국어를 배우는데 노력을 많이 한 기억이 없습니다. 학원을 다니고 사전을 외워가면서 모국어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냥 즐겁게 영유아기를 살아냈는데, 유창하게 모국어를 하게 됐지요. 이렇게 배우는 것을 ‘습득’이라고 합니다.

반면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우려면 시간을 내야하고, 학원도 다녀야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수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배우는 것을 구지 구분해 ‘학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영어를 배워서 하듯이 모국어를 배워야한다면 우리는 대부분 말을 하지 못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영유아기에 시냅스가 빠르게 연결되면서 우리는 모국어를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배우게 돼 의사소통과 사고력을 키우고 학습을 하며 창의력과 도덕성을 발휘하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말을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듯이 수고해야한다면 그 많은 시간 영어를 하고도 아직도 외국인을 만나면 말을 못하는 저는 얼마나 불쌍한 인간이 됐겠습니까?

이 시기에 부모는 조기교육에 대한 강한 욕구와 유혹을 갖게 됩니다. 사교육 시장은 이러한 부모의 욕구를 알기 때문에 조기교육 교구나 프로그램을 개발해 부모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상식적으로 빠르게 배우는 아이에게 가능한 더 빨리, 더 많이 가르치면 아이가 더 똑똑하게 자라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조기교육에 대한 마케팅을 접할 때 쉽게 혹하게 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교육학계에서도 조기교육의 효과성에 대한 찬반 주장이 팽팽합니다. 효과가 있다는 입장을 들어보면 그럴 듯하고 효과가 없다는 입장을 들어도 역시 그럴 듯합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부모로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기교육에 대한 부모의 판단에 도움을 줄 한 가지 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팀은 영유아기에 어떻게 배움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합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인지심리학자인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수 보존과제 검사'를 통해 4~5세 이전의 아이들은 수량에 대한 인지능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줄로 놓인 6개의 물병과 6개의 물 잔을 아이들에게 보여줍니다. 물병과 물 잔은 간격도 같고 줄의 길이도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느 줄에 물건이 더 많은지를 물어보면 아이들은 같다고 대답합니다.

이번에는 물 잔의 간격을 더 크게 해서 넓게 벌려놓고 같은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아동은 물 잔이 있는 쪽 줄이 더 많은 물체가 있다고 대답합니다. 피아제는 이 검사실험을 통해 3세 아이들이 물체가 얼마나 더 크게 보이는가에 따라 수를 판단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지심리학자인 자크 메흘러와 톰 비버는 독창적인 실험을 통해 피아제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그들은 적은 수의 구슬을 간격을 넓혀 길게 늘여 놓고, 더 많은 구슬을 줄이 짧게 늘여 놓은 후 어느 줄이 더 많은가를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수가 적지만 길게 늘어선 줄의 구슬이 더 많다고 대답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피아제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슬 자리에 M&M 초콜릿을 바꿔 놓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느 줄의 초콜릿 많은가를 묻지 않고, '어느 줄에 있는 초콜릿을 먹을래'라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구슬 실험에서는 긴 줄의 적은 개수가 많다고 말했던 아이들이 대부분 더 많은 짧은 줄의 초콜릿을 먹겠다고 선택한 것입니다.

사실은 2~3세 아이들이 수를 셀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2~3세 아이들에게 있어 물병이 많든 물 잔이 많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슬이 어느 줄이 많든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초콜릿을 먹으라고 하니 이제 자신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왕이면 더 많은 초콜릿을 먹어야겠고, 그러니 이제부터 세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두 개의 검사실험은 영유아기에 배움이 일어나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유아기의 배움은 ‘내적 동기’와 ‘자발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내적 동기’와 ‘자발성’이 충족된다면 아이들은 무언가를 하게 돼 있고, 언어와 창의력,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적 기술들, 필요한 것을 선택해가는 주의집중력 등을 배워가면서 시냅스의 연결, 곧 뇌를 발달시킵니다. 그것도 천재적으로 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일곱 살짜리가 우리말도 잘 못하는데 영어로 말을 하고 싶을까요? 영어로 말을 해야하는 내적동기와 자발성이 없는 아이들에게 단지 천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어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의 뇌를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다섯 살짜리가 한글을 읽고 싶을까요? '가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가 가을이란 글자를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이들은 글을 읽어야 할 이유도 없고, 의미없는 글을 읽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의 욕심과 입장에서 아이에게 한글 학습지를 시키고, 영어를 시키면서 아이들을 쓸데없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조기교육'은 어른들의 시각에서나 필요성이 있을 뿐입니다. 천재성을 발휘하는 영유아기에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모가 특별히 더 할 일이 없습니다. 부모가 무엇을 가르쳐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배우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오늘도 또 다르게 성장한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부모는 그냥 ‘우리 아이가 천재구나 천재야, 부모가 가르쳐주지도 않는 것을 오늘 또 배웠네’, 하면서 즐거워하고 감탄만 하면 됩니다. 부모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아이의 행동을 즐거워하는 것만큼 영유아기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칼럼니스트 권장희는 교직생활을 거쳐 시민운동 현장에서 문화와 미디어소비자운동가로 청소년보호법 입법을 비롯해, 셧다운제도 도입,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활성화, YP활동(청소년스스로지킴이, 미디어교육활동) 개발 보급 등을 해왔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중독예방을 위한 민간교육기관인 사단법인 놀이미디어교육센터를 설립해 기쁘게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 아이 게임절제력」, 「인터넷 게임세상 스스로 지킨다」, 「게임 스마트폰 절제력」,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구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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