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화분을 엎었을 때 부모는?
아이가 화분을 엎었을 때 부모는?
  • 칼럼니스트 윤기혁
  • 승인 2018.04.17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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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남편의 알쏭달쏭 육아수다] 혼 내는 건 감정의 해소일 뿐

성큼성큼 여름이 옵니다. 여전히 큰 일교차와 잦은 미세먼지의 출현으로 봄기운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지만, 보름 후면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입니다. 나무는 연두 옷으로 맵시를 뽐내고, 몇몇 녀석들은 노랑, 분홍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저희 집에도 새싹이 있습니다. 둘째 ‘빈이’인데요. 두 발로 서고 뛰는 것은 물론이고 ‘옹알옹알’에서 ‘종알종알’로 말문을 터뜨리기 시작했답니다. 짧고 통통한 엄지와 검지로 젓가락을 움직여 아빠의 반찬을 빼앗을 때면 정말 놀랍기까지 합니다. 

그런 녀석과 어린이집 등원을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화롭게 아침을 먹고 나란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가방을 챙기려는데, 아차! 양치를 하지 않았네요. 그런데 제가 칫솔을 가지러 간 사이 빈이가 사라졌습니다. ‘아~ 어디 있지’ 하며 닫힌 문을 열어보는 순간, '탁! 팍!' 하는 둔탁한 소리가 발코니에서 들려옵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작은 화분 하나가 떨어졌네요. 커다란 곰 인형을 지나 바닥에까지 흙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1분 1초가 귀중한 아침 시간에 예상치 못한 일의 발생은 저의 이성을 빼앗기에 충분합니다. 그날도 스스로 제 입을 제어할 시간 없이 “빈아! 아~ 정말” 하는 말이 튀어나갑니다. 뭔지 모를 불길함에 스멀스멀 다가오는 빈이가 살짝 애처로워 보였지만, ‘이번엔 그냥 넘기지 않으리라.’ 다짐한 저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화분처럼 덜컥 이성과 감성을 모두 놓쳐버린 순간이 있습니다. ⓒ윤기혁
화분처럼 덜컥 이성과 감성을 모두 놓쳐버린 순간이 있습니다. ⓒ윤기혁

“빈이! 혼나야겠어!”

“응? (멀뚱멀뚱)”

“만약 생쥐가(빈이의 가상 친구) 화분을 빈이 인형 위에 엎었어. 생쥐가 잘못했으니까 빈이는 혼내겠지?”

“아니, 아니!”

“왜? 잘못했으면 혼나야지. 아니면 뭘 할 건데?”

흥분한 제게 빈이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청소해야지. 청소”라고 말이죠.

헉! 그렇더라고요. 혼내는 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제 감정의 일시적 해소를 위한 이상 반응일 뿐이었습니다. 말문이 막힌 저는 부랴부랴 빈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 거실 바닥을 훔치며 ‘아이가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었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가졌습니다.

우선, 상황을 바라보는 저의 태도를 생각해 봅니다. 떨어진 화분, 지저분해진 인형과 바닥을 보는 순간 저에겐 불쑥 화가 일어났습니다. 뜻하지 않은 청소를 부담으로 인식한 겁니다. 게다가 녀석의 행동이 절 더 힘들게 만든다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아빠를 골탕 먹이려 일부러 그렇게 했겠습니까? 아이는 그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한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눈높이보다 살짝 위에 놓인 그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었다가 놓쳤을 겁니다. 어쩌면 곰 인형이 “흙 놀이가 하고 싶어”라고 빈이에게 말을 건넸고, 이를 도왔을 뿐인지도 모르죠. 그러고 보니 이제야 ‘아이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엇이 궁금했을까?’,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사실 빈이의 “청소해야지. 청소”라는 말이 그렇게 적확할 수가 없습니다. 더러워지면 쓸고 닦는 청소를 하면 됩니다. 만일 떨어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면, 부모가 사전에 주의를 기울여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뒀어야 했을 것입니다. 즉, 사전엔 막을 방법을 찾고, 사후엔 개인의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사태 처리를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겠지요. 오히려 그날의 일은 화분이 떨어졌는데 아이가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이와 함께 하는 육아 일상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수없이 만납니다. 종종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요. 그럴 때면 결과를 두고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시선으로 원인과 해법을 같이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는 냉정한 훈육가가 아니라 냉철한 파트너가 아닐까요?

종종 저에게 ‘그럼 당신은 훈육가가 아니라 아이의 동반자냐’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 음… 그건 말이죠. 아직 비밀입니다.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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