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지진 경험한 딸바보 아빠가 전하고픈 이야기
경주 지진 경험한 딸바보 아빠가 전하고픈 이야기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18.04.2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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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재난재해, 우리들의 자세는?

가슴에 담아왔던 지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2016년 9월 12일 경주발 지진의 여파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포항도 덩달아 흔들렸습니다. 당시 집이 좌우로 흔들리며 창문은 깨질 듯이 덜컹거렸고, 책장 상단부의 책이 우르르 쏟아졌으며 설거지를 마친 식기들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 후 우르릉 거리는 느낌만 들어도 심장이 덩컹 내려앉습니다. 처음 겪는 지진인지라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4살이었던 첫째 서율이가 놀이방에서 미친 듯이 달려와 제게 안겼었죠. 녀석은 소리를 지르며 저를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아직도 제 몸이 그 떨림과 공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진 후 아이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관찰하게 됩니다. 평소 아이의 감정을 알기 위해 그림책을 보여주며 그림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상황이고, 무얼 하고 있는지를 즐겨 묻습니다. 그림 속의 원숭이들이 어떤 것 같냐는 질문에 "나무에서 떨어질 것 같아. 지진이 나면 어떡하지"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빠, 지진 나면 어떻게"라며 문뜩문뜩 지진을 언급합니다. 여진이 있었을 때는 "아빠 눈 떠. 눈 감지 마. 나 보고 있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을 지켜보라고 합니다. 그래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생존을 위해서 하나의 경향성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원숭이가 신나보였는데 지진 후 모든 것이 불안해 보입니다. ⓒ문선종
예전에는 원숭이가 신나보였는데 지진 후 모든 것이 불안해 보일 것이다. ⓒ문선종

그 후 2017년 11월 15일 포항 지진 진도 5.4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집은 진앙지에서 불과 1.7km 떨어진 곳이었으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곳은 퇴적암 지역이라 경주 때보다 피해는 심각했습니다. 서율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완파돼 갈 곳을 잃었고, 우리가 사는 20년 넘은 2층 벽돌집은 곳곳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5.4 지진 당시 집에 있었던 아내와 둘째는 의자 아래 숨어서 혹독한 흔들림을 감당해야 했죠. 그 후 서율이는 잠을 자다 소리를 지르며 식은땀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둘째는 9개월이라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 얇은 옷만 걸치고 집을 나온 아내와 둘째, 무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습니다. ⓒ문선종
추운 겨울, 얇은 옷만 걸치고 집을 나온 아내와 둘째, 무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문선종

◇ 재난재해, 예측할 수 있을까? 통제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합니다. 예측 가능한지?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지? 하지만 재난재해 상황은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정말 극심한 스트레스입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재난재해 이후 피해자들은 불안, 두통, 근육통, 위장장애, 소화불량, 기억상실, 마비 등 다양한 증상이 복합적으로 발생한다고 합니다. 특히 아동의 경우 취약한데 취학 전 아동의 경우 사람에게 매달리거나, 손가락을 빨거나, 어둠을 무서워하거나 야뇨증, 겁먹은 표정과 상실 또는 식욕의 증가, 밤을 두려워하는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Lacroix et al., 2007) .

경주 지진을 겪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통제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지진 발생 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비하는 것뿐이었죠.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상황별 대처법을 숙지하고, 차 트렁크에는 생존 가방을 비치했습니다. 포항 지진 후 학자들의 추측성 예측 기사가 많아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라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연구논문을 뒤져가며 공부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지진으로는 국내 1호인 이기화 박사님이 1983년 경상분지 특히 양산단층에서 지진이 날 것이라고 예지를 했다는 사실이었죠. 그리고 최근의 논문을 보며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당장 큰 지진은 없겠지만 향후 큰 지진은 반드시 온다라는 것입니다. 분명 재난재해는 예고 없이 우리를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1964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역사상 3번째로 강력한 지진(굿 프라이데이 지진)으로 기록되는 순간 규모 9.2, 진도 8.4 지진의 경우 적은 사망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건축물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사회는 콘크리트 구조라 지진 시 낙하물과 파편으로 인한 사상자가 많고, 또한 가스누출과 화재로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합니다.  특히, 아동, 노약자 등의 피해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죠.

방재모자를 쓰고, 아빠의 교육을 듣고 있는 서율. ⓒ문선종
방재모자를 쓰고, 아빠의 교육을 듣고 있는 서율. ⓒ문선종

◇ 재난재해, 우리는 생존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끊어지면서 9.2 강진이 발생한다는 설정으로 만든 영화 「샌 안드레아스(San Andreas , 2015)」에서는 재난재해 구조 전문가 드웨인 존슨이 위기상황에서 가족들을 척척 구출해냅니다. 무려 쓰나미를 넘어버리는 과감한 아빠였습니다. 이런 슈퍼맨 같은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제 현실은 겁쟁이 아빠입니다. 지진 발생 순간 그냥 얼어버린 것처럼 모든 것이 마비돼 버렸죠. 

거동이 불편한 서율이의 외증조부모를 모시고, 대피소를 갈 수 없어 단층 슬레이트 집으로 피신한 모습. ⓒ문선종
거동이 불편한 서율이의 외증조부모를 모시고, 대피소를 갈 수 없어 단층 슬레이트 집으로 피신한 모습. ⓒ문선종

제가 마주했던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실존에 대한 흔들림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지만 '지진'이라는 큰 사건은 우리를 그와 직면하게 만들죠.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더욱 극심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도 '생존'을 위한 스스로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외상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만든 반응이라는 것이죠. 이런 힘을 가지고, 지진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로 대처할지 적극적으로 부딪혀봐야 합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증상을 만들어 내기에 현장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심리상담이 적절히 이뤄져야만 합니다. 특히, 보호자는 아이들과 충분하고, 상당한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한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연구보고 「네팔 지진 생존자들의 피해 경험 실태와 심리치료 프로그램 효과성 연구(2017)」에서는 언어적으로 활발하게 스트레스를 표현하지 않는 문화적, 가족적 특성에서는 신체화 증상의 발생률이 높을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으로 가서 그때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온몸에 퍼져있는 긴장을 완화시켜야 하는 것이죠.

◇ 사회 시스템도 되돌아봐야

포항 5.4 지진 당시 아내가 둘째를 안고 집을 나와 가장 먼저 간 곳은 첫째의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아내가 도착했을 때 서율이 반은 학교 운동장으로 대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을 도와 아직 대피하지 못한 아이들을 차에 태워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위기상황에서도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자본과 신뢰가 기반이 된 곳이면 위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 발생 시 절대 집에 가지 않습니다. 편의점에서 모든 물품을 공급하기에 먼저 대피소로 갑니다. 재난 상황에서 모두가 해야 하는 '공유지식(관습)'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개발도상국과 같이 사회적 시스템이 결여돼 있는 사회의 경우 이야기는 다릅니다. 네팔과 아이티 지진에서는 심지어 지진 후 아동 매매가 성행하기도 했죠. 그야말로 사회의 안전시스템이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는 반파이상을 주장했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평가방식으로 소파판정을 받은 모습. 제도적 개선도 시급하다. ⓒ문선종
우리는 반파이상을 주장했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평가방식으로 소파판정을 받은 모습. 법과 제도적 개선도 시급하다. ⓒ문선종

우리는 지진 전 통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삶의 전반을 관통하는 안전교육(지자체, 학교, 지역사회 연계교육)과 지진 후 안전 확보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잘 짜인 매뉴얼 사회지만 그에 따른 맹점이 있습니다. 현장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주체성이 없다는 것이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과제를 던져주고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도쿄 스기나미구의 중학생 구조대 활동이 대표적이죠. 우리는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통제 가능성을 높이고 있을까요? 가족을 지키는 우리 아빠들은 어떤가요? 대비하고, 또 대비해야합니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입사해 포항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며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된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현장에서 녹여내는 지역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유쾌한 모험을 기대해 볼 만한 아빠 유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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