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어요
일곱 살 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어요
  • 칼럼니스트 김정은
  • 승인 2018.06.06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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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그람 엄마글] 말 트임이 늦었던 딸의 그림이야기

일곱 살 초가을의 어느 날 A가 말했습니다.

“수린아, 우리 집에 같이 갈래? 고양이 보여줄게.”

수린이는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A네 고양이는 눈 색깔이 파래서 이름이 ‘파랑이’랍니다. 파랑이를 보러 A네 집에 여러 번 놀러갔습니다. 파랑이가 예뻐서 파랑이 그림도 여러 장 그렸습니다.

고양이(8세 그림). ⓒ유수린
고양이(8세 그림). ⓒ유수린

수린이는 자꾸 A 생각이 납니다. A와 노는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처음엔 고양이 파랑이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진짜 파랑이 때문일까?’ 고개를 갸웃거릴 때 A가 말했습니다.

“수린아, 나 너 좋아해!”

수린이와 A는 커플이 됐습니다. 고백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화단의 나무에 꽃들이 활짝 펴 있더랍니다. 늦가을 나무에 꽃이 필 리 없는데 말입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7세 그림). ⓒ유수린
사랑이 꽃피는 나무(7세 그림). ⓒ유수린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일곱 살 수린이가 첫 고백을 받은 날 그린 그림입니다. 큰 나무 아래 수린이와 A가 있습니다. 둘은 좋아서 두 눈이 반달눈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날, 늦가을 나무에 사랑의 꽃이 피었습니다. 나무 주위로 나비가 날아다닙니다.

나무 둥치를 자세히 보면 수린이와 A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의 징표를 남기고 싶나 봅니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일곱 살 커플은 나무에 둘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그림을 보다가 ‘나무에 이름 새기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요.

여덟 살 수린이와 A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 수업이 마치면 만나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투어를 했습니다. 손을 꼭 잡고 화단에 핀 꽃을 구경했습니다. 동네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이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야! 유수린, 너 A 좋아하지?”

세대가 달라도 ‘얼래리 꼴래리’하며 놀리는 건 똑같습니다.

“그래. 나 A 좋아한다! 왜?”

수린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덤비자 놀리던 아이들은 할 말을 잃은 듯 했습니다. “그, 그래. 알았어.” 라며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하루는 동네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답니다.

“수린아, A랑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너희들 우정 오래 갔으면 좋겠다.”

수린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답니다.

“우정 아닌데요. ‘사랑’인데요.”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그날의 일을 전해 듣고서 제가 물었습니다.

“수린아, 우정이랑 사랑이랑 뭐가 달라?”

엄마는 그런 것도 모르냐는 눈빛을 하고서 대답했습니다.

“음... 사랑은 우정보다 좋은 거야. 엄청!”

A가 수린이에게 꽃을 선물하면 수린이가 A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고, 수린이가 A에게 편지를 쓰면 A가 수린이에게 답장을 쓰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9세 그림). ⓒ유수린
사랑이 꽃피는 나무(9세 그림). ⓒ유수린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수린이가 다시 그린 ‘사랑이 꽃피는 나무’입니다. 나무와 나뭇잎에 명암을 넣었습니다. 나무 아래 벤치를 입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수린이와 A의 인체 비율 또한 사실적입니다. A와 함께 있을 땐, 해님이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으로 바뀌나봅니다.

아홉 살 수린이에게 사랑의 시련이 닥쳤습니다. 같은 반 친구 B가 말했습니다.

“야! 유수린, A 다른 여자 친구 있대.”

“뭐? 진짜?”

수린이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슬프고 또 화가 났습니다. 남자아이들이 놀려도 꿈쩍하지 않고 동네 아주머니께도 당차게 대답하던 수린이가 이번엔 달랐습니다. 집에 오면 드러누워서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 그림에 화풀이를 했습니다. A의 머리에 뿔을 그려 넣고 ‘배신자!’라고 썼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습니다.

수린이네 반 교실 문이 열리고 A가 들어왔습니다. A는 B에게 다가갔습니다.

“너냐?”

한번만 더 거짓말을 하면 학교폭력 117에 신고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수린이에게 말했습니다.

“수린아, 다른 친구가 내 얘기 하면, 다음부턴 나에게 먼저 와서 물어봐 줘.”

A의 등장에 B는 줄행랑을 쳤고, 같은 반 친구들은 “와! 좋겠다!”를 연발했답니다. 수린이와 A의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열 살의 수린이와 A는 여전히 잘 지냅니다.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 서로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수린이의 연작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어떤 그림으로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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