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없는 ‘가모장’ 사회, 생각해본 적 있나요?
결혼 없는 ‘가모장’ 사회, 생각해본 적 있나요?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8.09.03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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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모계사회 부족 그린 「어머니의 나라」 북콘서트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어머니의 나라」 의 역자인 이민경 작가는 “아이의 성별이 아이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굉장한 자산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어머니의 나라」 의 역자인 이민경 작가는 “아이의 성별이 아이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굉장한 자산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결혼이 남편과 아내로 이루어져 있어 한 쌍의 부부가 영속적인 핵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모쒀식 주혼(走婚)은 결혼이 아니다. 모쒀 사회에는 결혼이라는 개념도 없고, 따라서 가족 내에 아내나 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나라」 중)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높은 요즘, 가부장 사회에 대한 의문도 그만큼 커졌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결혼’에서 벗어나기로 한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다.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선택들을 할 수 있을까.

서울 마포구 레드빅스페이스에서 「어머니의 나라」(추 와이홍 지음, 이민경 옮김, 흐름출판, 2018) 북콘서트가 지난달 22일 진행됐다. 이다혜 씨네21 기자 진행으로 책을 번역한 이민경 작가와 ‘비혼, 결혼 바깥을 상상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의 나라」는 싱가포르의 로펌의 변호사이자 저자인 추 와이홍이 모계사회를 유지하는 중국 모쒀족 사회에서 6년을 보낸 이야기를 담았다. 추 와이홍은 미혼 여성으로 가부장적인 질서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가족도, 취미생활도 없이 하루 15시간씩 일을 해왔다. 싱가포르강 너머 노을을 보다 “이대로 살면 삶은 결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단박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말 사는 동안 이렇게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주는 환경에서 편안하게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성인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끔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포근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낀다.” (「어머니의 나라」 중)

그는 “여성인 나는 진정으로 소속된 적 없는” 곳에서 빠져나와 중국 윈난성의 모쒀족 사회에서 6년을 보내는 동안 “스스로가 진정으로 (사회에) 수용되는 기분”을 느낀다. 여신을 모시면서 결혼과 아버지, 혼외자식이라는 개념이 없는 모쒀족, 이 사회에 사는 동안 추 와이홍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강요받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잘못된 신념에 맞서 핏대를 세울 일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레드빅스페이스에서 ‘비혼, 결혼 바깥을 상상한다’는 주제로 「어머니의 나라」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레드빅스페이스에서 ‘비혼, 결혼 바깥을 상상한다’는 주제로 「어머니의 나라」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병간호는 딸과 며느리가, 재산은 아들에게’ 주는 한국 사회

부계사회는 아이가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버지의 재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 꾸려지고, 집안의 중심은 아버지가 된다. ‘가모장적 질서’를 가진 모쒀족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가족의 중심인 것이 질서의 전부일까. 북콘서트에서 이민경 작가는 “모쒀족은 결혼·임신·출산·육아를 이루는 질서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이다혜 기자의 분석에 동의했다. 

이 작가는 “아이의 성별이 아이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 성별을 잘못처럼 느끼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자산처럼 보였다”고 답했다. 모계사회가 가부장 사회와 비교해 ‘성별이 삶을 위축시키는 이유가 아니라는 점’과 ‘여성이 삶을 꾸리는 단위가 연애나 결혼이 아니라는 점’을 인상적이라고 짚었다. 

모계사회의 ‘가족’은 할머니-어머니-딸로 질서와 중심이 이어진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재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생각해보자. 부모의 병간호는 딸과 며느리가 맡지만, 재산은 아들이 상속받는 경우가 많다. 부계혈족은 남성이 남성으로 가족이 이어지기 때문에, 여성은 남편을 찾아야 혈족으로 편입될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 선호는 서글프게도 여성의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자는 ‘후남’, ‘끝순’ 등 ‘남자아이를 갖고 싶다’는 부모의 소망을 담은 이름을 예로 들었다. “책 「82년생 김지영」 제목을 보고 ‘왜 이렇게 김지영이 많을까’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이 기자는 여성의 이름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를 참석자들에게 반문하면서, 이 작가에게는 성장과정에서 겪은 차별 경험에 대해 물었다.

이 작가는 자신이 6살 때 남동생이 태어나던 날의 경험을 설명하며 “첫째든 둘째든 딸이 태어났던 순간의 기류는 한국과 모쒀족 사회는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다혜 씨네 21 기자는 「어머니의 나라」 북콘서트의 진행을 맡아 이민경 작가와 ‘비혼, 결혼 바깥을 상상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이다혜 씨네 21 기자는 「어머니의 나라」 북콘서트의 진행을 맡아 이민경 작가와 ‘비혼, 결혼 바깥을 상상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결혼 아닌 삶’ 빨리 생각할수록 다양한 삶의 방식 보인다”

이 작가는 모쒀족 사회를 두고 “주거공간과 로맨스가 분리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꽃방’이라고 부르는 여성의 방으로 정서적 유대관계를 가지는 파트너가 찾아오고, 그는 여성의 집에 함께 거주하지 않는다. 나머지 상황에서는 각자 자신들의 혈족 속에서 머무르면서 자연히 경제공동체로 대표되는 주거공간과 로맨스가 분리되는 것이다. 

이런 모계혈통사회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파괴한다는 위협도 적다. 저자는 모쒀족의 모계혈족 사회를 “여성의 역할은 매우 강조되며 과소평가되는 법이 없다”고 서술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양육도 가족이 함께 책임을 진다. 모쒀족의 남성은 자신이 관계를 맺은 여성의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여성 형제가 낳은 아이의 양육을 담당한다.

결혼 제도가 없고, 유지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이 살던 거주지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된다. 이 기자는 “(모쒀족 사회는 여성이 결혼으로) 새로운 환경에 심겨지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과 같은 사회적 공포나 금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 작가는 ‘남성 배우자와 사랑으로 결혼해 평등하게 꾸려나가는 것을 하지 못했을 때’ 비로소 선택지로 꼽게 되는 식의 비혼을 우려했다. 이 기자는 “여자들은 결혼할 것을 염두하고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도 지속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며 “여성이 결혼을 염두하지 않으면 직업 선택의 폭은 굉장히 넓어진다”고 덧붙였다.

‘가족을 꾸려야 한다’는 것이 삶의 전제로 작동하는 이상, 비혼은 결혼의 대체재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결혼이 아닌 삶’을 빨리 생각하면 빨리 생각할수록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 작가와 이 기자 모두 ‘비혼=외로움’이라는 개념에서도 벗어날 것을 당부했다. 한 참석자는 “비혼에 관심이 많지만 결혼에도 관심이 있다”고 질문했다. 이 작가는 “질문은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는 것보다 누군가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게 부럽다’는 말일 텐데, 자신이 부러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답했다. “여기서 ‘배우자’는 어떤 의미이고, 반드시 한 명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사실 바라는 ‘배우자’ 상은 독보적인 정서적 배우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와 오랜 정서적 교류를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인 건데, 이건 ‘누군가의 재생산 노동을 담당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연애와 결혼 사이는 쪼갤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그사이에 많은 것들이 생략되면서 여성이 바라는 것과 감내해야 하는 것을 뭉쳐놓고 ‘인생은 원래 그렇다’고 말합니다. ‘결혼한 사람이 부럽다’는 말을 공감하지만, (부러워하는 것들을) 결혼이라는 형태로 획득할 수 있을까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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