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 정말” 인사 안 하는 우리 아이
“답답해 정말” 인사 안 하는 우리 아이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11.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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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엄마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

아이의 어떤 성격이나 행동이 나를 닮았다 느낄 때가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엄마인 나와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아이가 나를 닮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왕이면 엄마 아빠의 장점만 아이가 닮아주면 좋으련만 엄마 마음과 달리 아이는 부모의 단점도 어김없이 닮아간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인사를 안 해서 고민이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에게 아이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갓난아기 때부터 다닌 동네 소아과 선생님에게도 아이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는 겨우 인사를 했는데 다른 반 선생님에게는 인사를 빼먹기 일쑤였다. 아이는 친척집에 가서도 입을 다물고 인사를 안 했다. “인사해야지” 부드럽게 타일러도 쭈뼛거리기만 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뿐만 아니라 누가 선물이라며 뭘 줘도 감사 인사를 안 했다.

아이가 인사를 안 해도 그때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물론 이맘때 바른 인사 습관을 키워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서 부지런히 아이에게 인사를 시키기는 했다. 인사를 잘한 날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자잘한 장난감이나 군것질거리를 손에 쥐여주며 인사를 부추겼다.

아이가 엄마 말을 듣고 인사를 하는 날도 있었지만 엄마가 포기해야 하는 날도 많았다. 인사 문제로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조언을 듣고 하라는 대로 해봤지만 아이는 내 마음같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느슨하게 생각했다. 아직 어리니 괜찮다고 여겼고 아이를 대신해 내가 인사를 했고 고민은 거기에서 멈췄다.

‘이게 아닌데…’라고 느낀 건 또래 친구들이 인사를 잘하는 모습을 본 이후였다. 여섯 살이 되었지만 아이의 인사는 영 시원치 않았다. 당장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마주치는 아이들만 봐도 선생님께 인사를 잘하는 건 물론이고 친구 엄마인 내게도 인사를 잘했다. 그 아이들의 엄마가 “○○ 엄마야, 인사드려야지” 하며 아이에게 일러주면 사교성 좋은 아이들은 곧잘 인사를 건넸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 누나나 또래 친척을 봐도 우리 아이처럼 수줍어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번번이 엄마 뒤로 숨는 아이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아이가 인사를 안 해도 다들 괜찮다며 아이를 다독여줬지만 엄마인 내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아이의 감정보다 우물쭈물하는 아이 때문에 민망했던 내 마음을 더 크게 살폈다.

나중에 왜 인사 안 했냐고 아이에게 물어보면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꼬여서 본의 아니게 못했다는 말만 했다.

‘우리 애는 왜 인사를 안 할까?’ 아이의 마음을 차근차근 헤아려봤다.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맞닥뜨리는 감정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었다. 겁 많고 내성적인 엄마의 모습을 아이는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문제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물론 아이가 인사를 빼먹어도 허허실실로 대했던 내 태도도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아저씨를 보고 아이가 몹시 호들갑을 떨며 내 뒤로 몸을 숨겼던 적이 있다.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면 으레 내 뒤로 몸을 숨기는 아이지만 그날은 정도가 심해서 살짝 짜증이 났다. 그런데 둘만 남게 되자 아이는 키가 너무 큰 사람이라서 무서웠다며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게는 그저 키가 좀 큰 사람이었을 뿐인데 아이 입장에서는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어른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안 되겠구나 느꼈던 순간이었다. 아는 사람인데 아이가 왜 인사를 안 하지 답답해했는데 어쩌면 내가 단단히 오해한 건지도 모르겠다. 친숙하다는 건 내 생각일 뿐 아이에게 그 사람들은 아직 낯설고 어려운 타인이었던 것이다.

그림책 [아직은 작은 나]의 한 장면
그림책 「아직은 작은 나」의 한 장면 ⓒ북뱅크

그림책 「아직은 작은 나」(가사이 마리·오카다 치아키, 북뱅크, 2018년)에는 엄마 치맛자락 뒤로 몸을 숨긴 어린아이가 나온다. 아이는 엄마 뒤에 서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채 세상을 바라본다. “아직은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도 잘 못해요”라고 고백하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우리 아이의 모습이 읽힌다.

책장을 한 장 넘기면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두려워하는 아이를 엄마가 어떻게 다독여줘야 하는지 나와 있다. 겁 많은 아이를 위해 엄마는 따뜻하게 아이의 어깨를 감싸고 격려한다. 덕분에 아이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 보인다. 아이의 감정을 살피고 격려하는 게 아이의 성장에서 중요하다는 진리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원인을 알았다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와 함께 인사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부끄럽다고 인사를 안 하면 그게 더 부끄러운 거니 용기를 내자고 말해주곤 한다. 나 역시 낯선 이웃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려고 한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는 진리를 떠올리며 쑥스러움을 이겨내는 중이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인사를 나눴는데 아이가 슬그머니 나를 따라 인사를 했다. 남들 눈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테지만 나로서는 퍽 감동스러웠다.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부모에게 항상 큰 기쁨인 것 같다.

그림책 말미에 이르러 주인공 아이는 말한다. “이것저것 잘 할 수 있게 되면 더는 작은 나는 아닐 거예요.” 아이라서 ‘아직’ 잘 못하는 일이 많을 뿐이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아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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