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순둥이였던 둘째 아이가 달라졌다. 아주 많이 달라졌다. 하루 종일 안아달라고 울고 떼쓴다. 안고 있다가 내려만 놓으면 울고 “엄마”만 찾는다. 아빠 옆에서 잘 자던 아이인데, 엄마 배 위에서만 자려고 한다. 새벽에 자다 깼을 때도 옆에 엄마가 없으면 엄마만 찾아 헤맨다. 엄마가 안 보이면 난리가 난다. 그냥 안고만 있으라고, 자기만 바라봐달라고 말없는 시위를 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엄마 껌딱지가 된 것 같다.
“아이 둘 키우기 괜찮으세요? 둘째 낳고 싶은데 배로 힘들까봐 걱정이에요.”
사람들이 물어보면 난 항상 “둘째는 그냥 스스로 자라는 느낌이에요. 워낙 순둥이라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었다. 아이가 워낙 순했다. 에너지 넘치는 첫째 아이와 달리 둘째 아이는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이유식도 스스로 먹으려고 해 식판에 담아주기만 하면 혼자 뚝딱 해치웠다. “둘째는 굶기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혼자 가만히 앉아 한 시간을 놀기도 했다. 에너지 넘치는 첫째 아이는 밥 먹이는 것도, 놀아주는 것도 모든 게 일이었는데 둘째 아이는 거저 키우는 기분이었다. 육아가 처음이 아닌 두 번째라 부담되지 않은 영향도 있었을 테다. 처음이 늘 어렵듯 첫째 아이의 육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다 힘들고 어려워 책도 많이 보고 엄마들 조언도 많이 들으며 온 신경을 쏟았던 반면, 둘째 아이는 육아 경험을 교훈삼아 크게 놀라거나 고민할 일이 없었다. 둘째 아이 덕분에 “아이들은 스스로 잘 큰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랬던 아이가 순둥이에서 징징이로 변했으니 당황스러웠다. 요즘 둘째 아이를 안아주느라 어깨며 손목이며 성한 곳이 없다. 아이는 내려놓으면 안아 달라고 계속 울었다.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인 것 같기도 한데, 순둥이로 믿었던 아이의 반란에 엄마인 내 몸은 폭삭 늙는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거야?” 소리가 자꾸 나온다. 둘째 아이가 엄마에게만 매달리니 늘 엄마를 차지했던 첫째 아이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 책 읽을 때 엄마 다리도 첫째 아이 차지, 잠잘 때 엄마 옆도 첫째 아이 차지였는데, 동생이 치고 들어오니 화가 나나보다. 첫째 아이는 자꾸 “엄마, 동생 때리고 싶어! 화나려고 해!”란다. 첫째 아이는 동생을 밀고 둘째 아이는 하루 종일 울고 조용할 틈이 없다. ‘엄마도 화나려고 해. 폭발할 것 같아’ 속으로만 삭힌다.
‘우리 순둥이 둘째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답답한 마음에 둘째 아이의 아기(지금도 아기지만!) 시절 사진들을 둘러봤다. 첫째 아이 키울 때는 매일 밤 사진들을 봤었는데, 둘째 아이 사진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정말 귀여웠구나. 얼굴이 터질 것 같아.’ ‘고개도 빳빳하게 잘 드네.’ 너무 작고 예쁜 아기, 딸이라 더 든든하고 기뻤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둘째 아이와 관련된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 엄마라고 말했더라?’ ‘언제 처음 걸었더라?’ ‘이런 순간도 있었나?’ 내 나이가 기억에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너무할 정도로 기억이 없다. 사진은 둘째 아이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해주고 있는데, 그 순간들이 급히 휙 지나가버린 것 같았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지금의 14개월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첫째 아이는 매일 매일이 감동이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둘째 아이의 14개월 인생은 엄마인 내 기억 속에 많지 않아보였다.
늘 둘째 아이는 내게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였다. 아이가 둘이라는 이유로, 또 둘째 아이가 순하다는 이유로 육아는 첫째 아이 중심이었다. 동생이 생긴 첫째 아이가 혹시 외로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더 그러기도 했다. 첫째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둘째 아이는 늘 기다리는 존재였다. 아침엔 오빠 어린이집 등원 맞춰 보내기 바쁜 엄마를 기다리고, 엄마와 단 둘이 있는 집에선 오빠 오기 전에 살림 끝내려는 엄마를 또 기다리고 말이다.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에서 노는 오빠와 엄마를 유모차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렸던 둘째 아이. 어제도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오빠에게 치여서 마음 놓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다. 자꾸 놀자고 깨우는 오빠 때문에 낮잠도 푹 자지 못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오랜만에 오빠와 평일에 시간을 보낸다며 오빠에게만 집중하고 있었으니... 무심한 엄마, 그런 엄마만 독차지하는 오빠. 둘째 아이는 어쩌면 스스로 '순하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은 결론을 내고 울고불고 떼쓰기로 노선을 변경했을지도 모른다. 관심 받으려고 말이다. 나도 둘째라 서러웠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장난삼아 부모님에게 투정 부리는데 우리 둘째 아이는 더 많이 서러웠겠다 싶다. 엄마 껌딱지 될 만 하다.
“둘째 아이는 눈치가 빨라서 첫째 하는 걸 다 따라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첫째 아이처럼 관심 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이 어린 게 얼마나 눈치껏 노력했겠나 싶어 짠한 생각이 든다. 둘째 아이도 아이 입장에선 모든 게 처음이라 부모에게 첫 번째로 사랑받고 싶었을텐데 말이다. 엄마 편하자고 당연한 듯 ‘두 번째’ 임을 강요한 것 같아 너무 너무 미안하다.
“둘째야! 그동안 무심했던 엄마를 용서해다오. 너대로 온전히 사랑해줄게. 오늘 밤은 네 옆에서 잘게. 엄마 냄새 듬뿍 맡고 자렴.”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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