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엄마를 쓰겠어?" 아줌마의 재취업 도전기
"카페에서 엄마를 쓰겠어?" 아줌마의 재취업 도전기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9.02.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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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경단녀' 안 되려고 소송하던 이가 떠오른 날

20대 중반부터 노동조합 일을 시작했다. 첫 사회생활을 한 곳은 핸드폰 부품을 만드는 작은 회사였는데,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은 확대경과 현미경을 보며 제품을 검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있었다. 지금까지 노동조합 일을 업으로 삼으며 살게 된 것은 그 때의 인연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20년 동안 한 일이 노조 만드는 노동자들 지원하고, 해고자들과 함께 투쟁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교육하고, 조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작 내 아이들의 영유아기를 돌보지 못했지만, 그리고 한 번도 최저임금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이 일은 분명 보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이 좋았다. 어떻게 말하면 나이 마흔이 넘은 나는 이 일에서 전문가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러던 지난해, 어떤 상황으로 인해 이 일을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 이 기회에 다른 일을 좀 해보는 거야.”

20년간 엇비슷한 노동을 해오며 자칫 ‘익숙하게 머물렀던’ 몸과 마음에 활기를 불어 넣고 싶기도 했다. 돈도 벌어야 했고. 그래, 좋게 생각하자. 우선 워크넷을 비롯해 각종 구직사이트에 등에 등록했다. 이름을 넣고, 나이를 넣고, 학력을 넣고, 이력을 넣어야 하는데…. 이력에서 딱 막혔다.

노동조합에서 일한 이력을 적어봤자, 여타의 회사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거다. 그래서 그냥 아이만 키웠다고 말해야겠다는 심산으로 노동조합 이력을 넣지 않았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면접보러 가게 된다면, 주눅 들지 말아야지. ⓒ베이비뉴스
면접보러 가게 된다면, 주눅 들지 말아야지. ⓒ베이비뉴스

◇ 나이에서 걸리고 경력에서 걸리고

처음에 공략한 업종은 카페였다. 순진했지. 때는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알바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8월이었다. 워크넷 구인광고 대부분은 '나이 30세 이하'를 명시하고 있었다. 작은 회사들도 '35세 이하'로 나이 제한을 둔 곳이 많았다.

“아직도 구인에 나이제한이 있다고?”

이상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이었다. 큰애가 이렇게 말했다.

"카페에서 엄마를 쓰겠어?"

아이의 말을 듣고 1차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그래서 다음으로 선택한 곳은 학원이었다. 비록 20년 전이긴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쳐본 적이 있다는 호기에서 시작된 생각이었다. 이것도 순진했지. 2차 ‘현타’가 왔다. 이번엔 경력이 문제였다. 면접을 보는 사람마다 텅 빈 경력의 이유를 물었다. 내세울게 없었던 나는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아이 둘을 키웠어요. 이제 아이들이 커서 일을 좀 해보려고요.”

면접자는 “경력도 없이 처음 이 일을 하시다니, 특이하네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게는 마치 “경력이 넘치는 젊은 선생들도 많은데 이 아줌마 무슨 깡이지?”라는 뜻으로 들렸다. 슬슬 화딱지가 났다.

'아니 이 사람들아, 어디든 일을 시작하게 해줘야 경력이 생기지. 맨날 경력자만 찾으면 나는 어쩌라고.'

처음 구직을 하면서 용기백배했던 나는,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면서 점점 위축됐다. 내 나이는 마흔이 넘었고, 내 경력은 새 일자리를 구하는데 별로 쓸모가 없고. 나는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 “'경단녀'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던 그녀   

언젠가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동물실험을 하다가 해고된 여성노동자를 만난 적이 있다. 수의사 자격증이 있어 재취업이 어렵지 않아 보이는 그녀가 어째서 복직 확률이 낮은 해고무효소송을 굳이 벌이는지 궁금했다. '설령 복직하더라도 이미 교수들의 눈 밖에 난 그녀가 일하기 쉽지 않을 텐데'라는 현실적인 물음에, 아직 어린 자녀 둘이 있다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경단녀가 되고 싶지 않아요.”

같은 계통의 일자리에 재취업을 하려면 평판이나 소문이 중요하다. 이렇게 ‘해고’가 됐다고 낙인이 찍히면 설령 이후에라도 재취업이 불가해, 자기는 그 즉시 경단녀가 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녀가 요구한 것은 “자발적 사직으로 처리해달라. 내 발로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됐다. 이 직장 이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언제 다시 취업하게 될지 모를 텐데, 많이 불안하겠구나. 

모 취업 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만큼 30~40대 실업률이 높다고 한다. 그 이유 중 가장 첫 번째가 나이 제한 때문인데, 그나마 경력 없이 취업이 쉬운 서비스 업종의 나이 장벽은 더욱 높다. 

특히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임신과 육아기를 감내해주는 회사가 별로 없어서 그렇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시기를 지나 재취업을 하게 되는 연령대가 대략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다. 그때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을 벗어나 엄마 손길이 대체적으로 덜 가는 시기다.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이 되면서 사교육비를 비롯한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지출이 급격히 늘어난다.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가계를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취업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10년 전에 멈춰 있는 내 빈곤한 이력서를 취업시장에 내밀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또 이력서를 쓴다. 전화야 와라. 제발.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가 오면 나는 평소에는 신지 않던 구두를 신고,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는 옷을 입고 면접관 앞에 앉겠지. 물론 상대방은 경력이 없다는 나를 신기하게, 혹은 측은하게 바라보겠지만 주눅 들지 말아야지.  

아! 경력단절이 무섭다던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 아이를 잘 키워내고 다시 노동시장에 나갔을 때, 지금의 나처럼 주눅 들면 안 될 텐데. 3년 또는 5년쯤 비어버린 이력을 보며 누군가 그녀의 이력서를 무시한다면, 그녀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내 인생에 한 번도 경력이 단절된 적은 없었어요. 당신들의 그 수많은 아이들을 길러내고, 당신들의 단절 없는 사회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이렇게 내 이력에는 공란이 생긴 것뿐이랍니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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