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호기심을 되찾아준 나의 둘째
집 나간 호기심을 되찾아준 나의 둘째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19.04.0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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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호기심을 잃은 아빠들에게

몸은 어른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그리 밝지 않다. 뉴스에 흘러나오는 이야기도 나와 상관없겠거니 하며 현상만을 주워듣고, 이내 흘려버린다. 삶의 수많은 과업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희미해지고, 20대에 죽어라 읽었던 철학책과 삶의 탐구 서적들은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구이 같이 나의 집 나간 호기심을 자극하는 녀석이 있었으니….

하나는 회사용, 하나는 둘째의 장난감용 안경이다. ⓒ문선종
하나는 회사용, 하나는 둘째의 장난감용 안경이다. ⓒ문선종

햇빛에 반짝이는 나의 안경에 미숙한 한 덩어리의 존재가 주섬주섬 다가온다. 내 앞에 바짝 다가서더니 조막만 한 손으로 내 안경을 휙 하고 낚아챈다. 만지고, 볼에 비비고, 입에 넣어본다. 그리고 물끄러미 날 쳐다본다.

안경이 없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신경질적인 아빠의 눈치를 뒤로하고, 안경을 빨아 침을 묻히고, 이리저리 보고, 굴려보고, 바닥에 두드려보고 이내 던져버린다. 그렇게 해먹은 안경이 수도 없다. 그래서 요즘은 집에서 쓰는 안경, 회사에서 쓰는 안경을 따로 둔다.

생후 8개월부터 지금의 25개월까지. 나는 요즘 우리 둘째의 폭발적인 호기심을 경험하고 있다. 호기심의 대상을 멀리하거나 치워버리면 울고, 소리친다. 끙끙대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달려든다. 불빛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녀석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울 것이다.

어느 순간이 되자 녀석이 나를 괴롭히기보다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탐구하고,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사랑이 전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녀석에게 지독한 사랑의 괴롭힘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도 둘째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만큼 호기심을 갖고 있는지? 반문하게 됐다.    

◇아이의 호기심에 200% 응답해야 하는 이유

둘째는 매의 눈으로 아빠를 관찰하는 인문학자입니다. ⓒ문선종
둘째는 매의 눈으로 아빠를 관찰하는 인문학자입니다. ⓒ문선종

25개월이 된 둘째는 지금 "이거 뭐야?"라는 말에 재미를 붙였다. 손가락으로 내 얼굴 곳곳을 가리키며 "이거 뭐야?"를 반복하는데 "그건 아빠 안경이야", "그건 눈이야", "그건 입술이야"라고 꼬박꼬박 답해주지만 둘째는 수십 번 넘게 묻고, 다음날 또 묻는다.

하루는 내 입술을 가리키면서 "이거 뭐야?"라고 물을 때 짜증이 나서 "이건 엉덩이야"고 했더니 "아니야. 이건 입술이야"라는 것 아닌가. 녀석을 우습게 봤는데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녀석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자기가 질문한 것이 '입술'이라고 알고는 있는데, 정말 자신이 아는 것이 맞는지, 말을 할 때 어떻게 아빠가 말하는지 보려고 물어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관찰의 인문학자들이다. 모든 행동과 말의 이면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심오함이 있다. 이것에 응답해주지 못한다면 어른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책임감(responsibility)은 응답하다(response)와 능력(ability)의 합성어로 '응답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호기심에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 제대로 보려면, 아이들처럼 '관찰의 인문학자'가 되자

아내가 아이를 봐달라고 했을 때 오직 '눈'으로만 아이를 본 경험이 있다. 아이를 보라는 그 진정한 의미의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보고 있지만 제대로 못 보고 있다. 답은 간단하다. 아이들처럼 관찰의 인문학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 늘 내가 보려고 비추었던 스포트라이트 옆에는 어둠에 가려졌던 수많은 새로움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본다는 것은 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내 아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우리 부모들이다. 아이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 모두 관찰의 인문학자가 되자!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똑같던 내일의 출근길도, 귀찮았던 삶의 골목들도 새롭게 보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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