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사춘기 딸의 '병(病)중진담'
'미운' 사춘기 딸의 '병(病)중진담'
  • 칼럼니스트 권정필
  • 승인 2019.05.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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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엄마의 동반 성장기] "엄마가 나 때문에 아프면 어떡해?"

“엄마, 나 아파.”

등교 준비를 하던 아이가 날 찾더니 아프단다. 콧소리가 맹맹하면서 잔기침을 하는 아이 손을 잡고 병원에 갔더니 감기란다. 병원에서는 열이 나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일단 아이에게 약을 먹인 뒤 등교를 시켰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다.

하교 후 아이는 피곤하다며 낮잠을 잤다. 밤이 되자 아이는 기침을 심하게 하고 열이 마구 올랐다. 밤새 기침을 하며 끙끙 앓던 아이의 체온은 39도가 넘어갔고, 아이와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진료를 받은 아이는 B형 독감 확진을 받았다. 학교에 독감에 걸렸음을 서둘러 알리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으며 주의사항을 듣고, 오전 약속을 취소하고, 밥을 못 넘기는 아이를 위해 죽을 끓이고, 죽도 힘들다 하여 다시 미음을 끓이고, 도저히 못 먹겠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겨우 겨우 미음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약을 먹었음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계속 나를 찾았다.

“엄마, 어지러워.”

“엄마, 배 아파.”

“엄마, 토할 거 같아.”

“엄마, 엄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아이가 찾을 때 옆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많이 아파? 머리에 수건 대줄까?”

“울렁거리면 어쩌나, 배 좀 문질러 줄까?”

“토할 거 같으면 엄마가 등 두드려 줄까? 이렇게 아파 어째…."

딸아이의 B형독감 확진으로 처음 받아 본 타미플루. 다소 두려웠다. ⓒ권정필
딸아이의 B형독감 확진으로 처음 받아 본 타미플루. 다소 두려웠다. ⓒ권정필

눈앞의 아이가 이렇게 아픈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옆에서 안타까워하는 일 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열에 올라 물 마시는 일조차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며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팔다리를 주물러 주고 이마에 물수건을 대 주는 일뿐. 한참을 안아주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고 물수건을 갈아주던 그때, 선잠에 들었던 아이가 잠꼬대처럼 나에게 말했다.

“나 때문에 엄마도 독감 걸리면 어떻게 해. 아프면 어떻게 해?”

요즘 사춘기로 나와 매일 신경전을 펼치며 미운 말만 하던 딸아이였는데, 아픈 자신의 옆에 있는 내가 걱정됐나 보다. 나는 3초간 멍하니 아이를 쳐다보다 웃으며 아이를 타박했다.

“별 걱정을 다하네. 아프면 약 먹으면 되지. 넌 낫기나 해. 자, 물 좀 마시고 얼른 자.”

가볍게 넘기는 내 말에 아이도 어설피 웃으며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이의 말로 오늘의 고생스러움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다. 쌕쌕거리며 잠자는 아이의 이마를 쓸어주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지금처럼 예쁜 말만 해주면 좋겠지만 다 나으면 다시 미운 사춘기 딸로 돌아오겠지. 그리고 나 역시 폭풍 잔소리꾼 엄마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은 진심일 테니 그걸로 되었다 싶다.

독감 판정을 받은 지 이틀 후, 다행히도 아이의 열은 떨어졌다. 열이 떨어지면서 아이는 슬슬 미운 말 하는 사춘기 딸로 돌아왔고, 나 역시 잔소리꾼 엄마가 되었다. 그래도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했으니(물론 이것이 신체적 아픔을 의미하진 않겠지만) 딸도 나도 조금은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칼럼니스트 권정필은 현재 사춘기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아이들의 방황과 성장을 보며, 함께 방황하며 다시 한 번 성장하고픈 평범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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