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노스가 육아하다 한의원 다니는 상상
타노스가 육아하다 한의원 다니는 상상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9.06.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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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트윈스 육아일기] 남편의 부항 자국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나오는 악당 타노스는 손가락 하나로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킨다. 아이언맨이 입는 기능성 수트도 없고 토르의 망치처럼 똘똘한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우주를 점령했으니, 그야말로 21세기 우주 최강 천하장사라고 말해봄 직하다.

그런데 그런 타노스도 쌍둥이 독박육아를 하면 힘들어서 나자빠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봤다. 밤새워 울어대는 쌍둥이들 번갈아 달래다가 밤잠 설치고, 좀 키워놓고 나니 종일 놀아달라고 몸 부대껴오는 쌍둥이들 상대하다가 온몸에 한방파스 붙이는 상상 말이다. 

이 상상을 왜 했냐면, 요즘 남편이 거의 매일 한의원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 회사 근처 한의원에 가는 일이다.

평일엔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해선 애들 목욕시키고, 밤이면 안 잔다고 버둥대는 애들 잡아다가 재우고, 주말이면 애들 데리고 여기저기 목마 태우고 다니고, 또 쉽게 예민해지는 와이프 기분 풀라고 혼자 놀다 오라 내보내고 가끔 독박육아 하다 보니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저리는 육아 후유증이 남편에게 온 것이다.

한의원에서는 ‘이거 보통 침으론 치료가 안 될 것 같으니 약침이나 추나요법을 받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남편은 그 제안을 받고 그 한의사가 자신에게 약침 혹은 추나요법을 판매하려는 속셈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태가 정말로 보통 침으론 해결이 안 되는 상태인지 망설였다고 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정말로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목마 태우는게 어깨 건강에 참 안 좋다는데, 애가 저렇게 좋아하니 안 할 수 있나. ⓒ전아름
목마 태우는게 어깨 건강에 참 안 좋다는데, 애가 저렇게 좋아하니 안 할 수 있나. ⓒ전아름

남편은 (복부비만일지언정) 근육량도 많고 애초에 기초체력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고 나선 '아이고 목이야, 손목이야, 허리야'같은 소리를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 즈음에는 하루 종일 애들을 안고, 목마를 태우고 다니다가 손목 인대가 늘어나 일주일이나 깁스를 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몸이 크고 체력이 좋은 남자도 반나절 정도 애 둘을 혼자 보고 나면 한의원에 다니는 게 일인데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온몸의 영양분이 쪽쪽 빠진 상태의 아기 엄마들은 어떤가. 나 역시도 아기 낳고 감기에 자주 걸리고, 시간 나면 무조건 한의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됐다.

손에 물 마를 날 없으니 손에는 늘 상처가 나 있는데 살림하고 애 보느라 약도 마음 놓고 바르기 어렵다. 내가 자주 아프니 언젠가는 아빠가 나를 위로한다고 한 말이었겠지만 “아름아, 그래도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대~ 잘 이겨낼 수 있지?”라고 했다. 그 말에 왜 그렇게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던지. 

옛날 같았으면 “엄마가 뭐가 강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게 산 거지!”라고 대들고 서로 또 앙칼지게 싸워댔겠지만, 이제는 연로한 부친 앞에서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아 몰라~아퍼!” 하고 말았다.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게 그런 말뿐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을 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것일까? 모성의 위대함을 강조하려고 탄생한 그 말이 나는 도리어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는 전업주부의 어마어마한 노동량을 ‘후려치기’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상응하는 속담도 있다. ‘집에서 애 보느니 뙤약볕에서 밭맨다’는 말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독박육아의 고됨을 여실하게 잘 담아낸 말이랄까.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는 자신이 몰살시킨 부족의 아이 가모라를 자식 삼아 데려간다. 짐작컨대 그 당시 가모라는 우리 나이로 치면 다섯 살에서 많아야 일곱 살 정도 되어보인다.

아무리 똑똑해도 애는 애인 것을. 타노스는 ’미운 일곱 살‘ 가모라를 육아하느라 힘들지 않았을까. 가모라가 맨날 울고 떼쓰고 타노스 머리 꼭대기 위에서 노는 일상이 반복됐다면, 밥 먹으라고 하면 숟가락 집어던지고, 어린이집 가라고 하면 안 가겠다고 발버둥치고, 머리 예쁘게 묶어달라고 바락바락 대든다면.

어쩌면 타노스는 헐크와 싸웠을 때보다 더 쑤시고 결리는 허리와 어깨에 한방파스를 붙이며 "하, 어쩌자고 딸내미를 하나 들여서 이 고생을 하나"란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어떤 날엔 "(우주 최고 악당일지언정) 아빠 힘내세요 가모라 있잖아요"같은 노래를 불러줬다거나, 예상치 못한 영특함을 보인 날엔 우주에 부유하는 그 어떤 별보다 가모라가 제일 빛나 보였으리라. 그래서 영화에서 가모라를 희생양 삼을 때 가모라를 키우며 울고 웃었던 날들이 떠올라 그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 아닐까. 출근하는 남편의 목에 선명한 부항 자국을 바라보며 쓸데없는 상상을 해봤다.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어쩌다 쌍둥이 엄마가 된, 서울 용산에 사는 30대 여성이다. 얼떨결에 유부녀가 됐지만 아이를 낳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결혼 전엔 이런저런 글을 쓰고, 이런저런 잡지를 만들며 일했다.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하루, 밥으로 시작해 밥으로 끝나는 하루를 살고 있지만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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