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주인공은 왜 다 남자냐고 묻는 아들에게
만화 주인공은 왜 다 남자냐고 묻는 아들에게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9.06.18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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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뜨개질이든 축구든 네가 행복하다면 OK

어느 날 텔레비전 만화를 보던 아이가 물어왔다.

"엄마, 이상해. 왜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다 남자야?"

어린아이는 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어른을 당황하게 한다. 아이에게 기습 질문을 받은 나는 그럴 리가 있냐며 여자 주인공도 많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아이가 즐겨보는 만화를 하나씩 떠올려보니 이어서 답해줄 말이 마땅치 않았다. 실제로 한 명만 빼고 전부 남자아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여자아이는 별다른 특징도 없고 비중이 작다. 어린아이 눈에도 이 점이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면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곧 여자아이들이 즐겨 보는 만화를 아이에게 권해보면 어떨까. 우선 일곱 살 남아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유치원에서 여자친구들이 '공주책'을 두고 서로 보겠다고 다툼을 벌인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는 그 책은 여자아이들 것으로 단정 짓는다. 슬쩍 물으니 자기를 포함해 남자 친구들은 그 책에 전혀 관심이 없단다. 일곱 살이니 이렇게 선을 긋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또한 만화 주인공을 자기와 동일시하며 보려면 성별이 같아야 흥미로울 것이다. 유치원 생활을 하며 또래 집단에서 받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이가 '남자 만화', '여자책' 등 성별로 어떤 대상을 가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무심코 보다 보면 어린아이가 성 역할에 대한 선입관이 생길까, 엄마가 심각해지는 만화도 인기 만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노출되는 환경 아니던가. 왜 만화 속 주인공은 항상 남자이며 여자는 조금 나오는지, 아이가 질문을 해오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

사실 아이가 보는 만화 중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만화가 하나 있다. 영웅 이야기가 기본 뼈대인데 아이는 이 만화를 매우 재미있게 보면서도 남이 알까 걱정한다. 자신의 관심사를 찾고 좇아가는 건데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작은 봉제인형을 여전히 좋아하면서도 사람들이 눈치챌까 걱정한다.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 인형 등은 남자인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비단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본래 제가 가진 성향과 관심사를 타인의 시선이나 고정관념 때문에 접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가 '나는 누구'인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행복해지길 바란다. 세상 모든 부모처럼. 그림책 「뜨개질하는 소년」(크레이그 팜랜즈 글, 마가렛 체임벌린 그림,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2015)의 소년 '라피'처럼.

그림책 「뜨개질하는 소년」 중 한 장면. ⓒ책과콩나무
그림책 「뜨개질하는 소년」 중 한 장면. ⓒ책과콩나무

라피는 '질문이 아주아주 많은 아이'답게 남들과 다름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왜 자기는 친구들과 달리 '시끄러운 소리나 거친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지, '나는 누구'인지 고민한다. 그러다 마음에 쏙 드는 활동을 찾는다. 바로 뜨개질! '나는 누구일까요?' 근심 가득했던 라피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친구들이 놀리고 웃음을 터트려도 라피는 뜨개질을 멈추지 않는다. 자존감이 강한 아이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니 아이에게 영향을 주었을 부모가 궁금해진다. 라피가 처음 뜨개질을 배우고 들떠서 부모에게 이야기를 전했을 때 그들이 보인 태도에 주목하게 된다. 만약 나였다면 한 치의 망설임, 되물음 없이 아이의 요구에 응해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아이가 곧잘 하는 말 중 하나다. "남자, 여자 그런 거 없어!" 성별로 가르지 말고 성별로 한계를 두지 말라는 뜻을 담은 일곱 살 아이의 목소리다. 문제는 고정관념에 길들여진 나다. 어떤 이야기 끝에 아이 입에서 "남자도 치마 입어도 돼"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당장 아이가 그 복장으로 유치원에 등원하려 한다면 어쩌나 짧은 고민이 스쳤다. 엄마로서 나는 아이에게 뭐라 말하고 어떤 태도를 보일까.

라피 엄마의 말에서 힌트를 얻는다. 자기가 여자애 같냐고 묻는 라피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아이를 끌어안는다.

 "아니, 엄마는 네가 아주… 라피 같은데."

부모의 지지를 받은 아이가 성별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건강하게 자랄 것은 당연하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일곱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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