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핑계로 '모른 척' 해온 것들에 답해야 하는 순간
아이 핑계로 '모른 척' 해온 것들에 답해야 하는 순간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9.08.3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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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아이가 어느날 수족관 바다동물이 불쌍하다 말했다

아이가 돌 무렵부터 종종 국내외 수족관을 다녔다. 수족관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접근하기에 쉽고 편한 장소였다. 다른 곳보다 아이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닌 수족관 중에는 돌고래 쇼를 하는 곳도 있었다. 나는 감탄하고 환호하며 쇼를 지켜봤다. 아이와 함께.

아이가 자라며 말을 하고 아는 게 늘어날수록 바다동물에 대한 아이의 호기심도 커졌다. 아이는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 전부 신기해했다. 그러면 나는 신이 나서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늘어놓곤 했다.

아이는 이제 일곱 살이 되었고 여전히 바다동물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다만 신기한 것과는 별개로 관람은 빠르게 마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관람이 끝난 뒤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곳, 기념품 가게. 

아이는 그곳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갖고 싶은 것을 고른다. 그러니 아이가 수족관에 가고 싶다며 나를 재촉할 때면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이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당분간 수족관으로 발걸음하지 않기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이 결정에는 이유가 더 있다.

지난봄, 아이의 요청으로 수족관에 가는 길이었다. 들뜬 아이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엄마, 물고기는 거기서 태어난 거야?"

◇ '모난 엄마' 되기 싫어 모른 척 했던 문제에 답 해야 하는 순간… '이 책'을 읽는다 

우리는 잘 꾸며진 수족관의 겉모습만 볼 뿐 바다동물이 그곳에 이르게 된 배경, 이후의 삶은 아는 바가 적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 동물원의 어두운 실상을 접하고 놀랐던 최초의 순간이 아이의 질문으로 떠올랐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딱히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찾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판단을 미뤘던, 까맣게 잊고 지냈던 문제였다. 하지만 아이가 생겼고 이 어린아이는 동물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며 동물원, 수족관으로 나를 잡아끈다. 때때로 유치원에서 해당 장소로 체험학습을 하러 가기도 하고 '찾아오는 동물원'이 원으로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불편하지만 모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모른 척하게 된다.

"물고기는 거기서 태어난 거야?"라는 아이 질문에 "일부는 그곳에서 태어났겠지만 일부는 사람들이 데려왔을 거야"라는 불확실한 대답을 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대화 때문이었는지 아이는 바다동물이 불쌍하다며, 이제 수족관에 오지 않겠노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제 덩치에 맞지 않는 좁디좁은 수조에서 바다코끼리가 내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집에 온 뒤 아이에게 "엄마는 적극적인 반대 입장은 아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수족관이나 동물원이 불편하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너는 좀 더 자란 뒤 네 입장을 정할 수 있다"고 덧붙여 이야기했다.

그날처럼 아이를 키움으로써 눈 감고 모른 척했던 수많은 문제 앞에 엄마로서 답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현명한 대답을 할 지혜가 나에게는 부족하지만 다행인 건 아이가 고민하는 이런저런 문제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그림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가 정해주는 답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다.

「안녕, 썬더!」(이작은 글, 그림, 리틀씨앤톡, 2015년). ⓒ리틀씨앤톡
「안녕, 썬더!」(이작은 글·그림, 리틀씨앤톡, 2015년). ⓒ리틀씨앤톡

다른 말을 덧붙이는 대신 책 몇 권을 아이와 함께 읽었다. 「안녕, 썬더!」(이작은 글·그림, 리틀씨앤톡, 2015년)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사자 이야기다. 사자의 이름은 '썬더'. 관람객은 소풍을 온 유치원생, 그리고 어린아이와 함께인 가족들이다.

사자 우리를 둘러싼 아이들은 끊임없이 썬더를 부른다. 하지만 썬더는 온종일 웅크려 있을 뿐 응답하지 않는다. 가족이 그립고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동물원에 갇힌 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니 아이는 곧바로 썬더가 불쌍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오늘도 동물원에 왔어. 그리고 수많은 동물들을 보았지."

동물원의 평범한 하루를 묘사했을 뿐인데 쓸쓸함이 가득한 장면이다.

「안녕, 썬더!」와 달리 아이는 그림책 「우리, 집」(진주·진경 지음, 고래뱃속, 2015년)속 작가의 메시지는 읽지 못했다. 「우리, 집」은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면 문제없지 않겠냐는 사람들의 얕은수를 지적한다.

"맛있게 밥을 먹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시원하게 볼일도 봅니다. 종일 물놀이를 하고 맘껏 뛰고 놀기만 해도 혼내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부지런히 꾸미기도 합니다. 든든한 가족과 함께 크고 넓은 집에서 편안하게 지냅니다."

「우리, 집」(진주·진경 지음, 고래뱃속, 2015년). ⓒ고래뱃속
「우리, 집」(진주·진경 지음, 고래뱃속, 2015년). ⓒ고래뱃속

동물원이라고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림책 속 동물들의 생활환경은 안락하고 쾌적하다. 하지만 당장은 감출 수 있어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동물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함일 뿐 그들을 '우리'에 가두고 있는 한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 집」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렇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우리 집입니다."

사람이 잘 꾸며놓은 ‘우리’가 아니라 동물들의 진짜 ‘집’인 고향 땅이 펼쳐지며 이야기는 끝난다.

지금은 아이가 이 책의 진짜 메시지를 읽지 못하지만 자라며 아이는 차츰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도 아이는 그림책을 읽으며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친구 되는 길, 공존에 대한 생각의 씨앗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일곱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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