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에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나라도 쥐어뜯으라고 주고 싶었다 
진통에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나라도 쥐어뜯으라고 주고 싶었다 
  • 칼럼니스트 김명규
  • 승인 2020.04.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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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육아일기 MAY] 탄생이란 이름의 마지막 관문②
ⓒ김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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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진통이 시작됐다… 힘내라는 말조차 미안했던 '그날'에서 이어집니다.) 모든 경험에는 반드시 ‘처음’이 있다. 처음 먹어본 피자, 처음 가본 학교, 처음 마셔본 술…. 그리고 여기에 차마 적을 수 없는 각자의 ‘처음’은 우리에게 설렘 혹은 두려움을 안겨주곤 한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겪은 출산은 앞서 말한 그 어떤 경험의 처음보다 강렬했다. 

아내가 분만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자궁문이 3cm 열린 상태였다. 아내는 침대에 눕자마자 무통주사를 맞았다. 주사액이 한참 들어갔는데 아내는 “도대체 언제부터 무통주사 효과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분노가 섞인 것 같은 아내의 질문에 나는 바로 분만실을 박차고 나와 한눈에 봐도 연륜이 느껴지는 간호사 선생님께 “뭔가 잘못된 것 같으니 확인 좀 해주세요!!!”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는 수액을 확인하고선 온화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주사 잘 들어갔어요. 무통주사라고 아예 안 아프게 해주는 것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아내와 나는 무통주사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無(없을 무)’까지는 아니어도 ‘微(작을 미)’ 정도는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주삿바늘은 아내의 몸에 야무지게 꽂혀 있을 뿐, 미미한 효과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그 주삿바늘을 야속하게 노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진통이 아주 잠시나마 줄어들 순 있지만, 장담은 할 수 없는, 그렇다고 안 맞자니 아쉬운 주사라고 불리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무통이라며! 적어도 미통정도는 해 줘야지!" ⓒ김명규
"무통이라며! 적어도 '미통'은 해 줘야지!" ⓒ김명규

진통이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는 이제 진통이 올 때마다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 머리카락을 안 잡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너무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니 뭐라도 다 내어주고 맘껏 쥐어뜯으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우리에겐 너무 긴 ‘10cm’… “거의 다 됐대”라는 위로도 소용없었다 

출산에도 나름의 단계가 있었다. 진통이 왔을 때 처음부터 힘을 준다고 아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진통을 한참 견뎌내다가 자궁문이 10cm 이상 열려야 그때부터 힘을 주는 단계로 넘어간다. 말이야 간단하지만, 이 과정이 얼마나 걸리냐에 따라 산모가 겪어야 할 고통의 총량이 결정된다. 누군가는 몇 분 만에, 누군가는 수십 시간도 걸릴 수 있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아내의 자궁문이 활짝 열리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의료진이 아내의 자궁문 상태를 확인할 때마다 귀가 쫑긋 세워졌다. 

“자, 이제 6cm 정도 열렸어요! 이 정도 속도라면 금방 분만할 수 있겠어요.”

이 말에 ‘와, 드디어 반은 넘겼구나’ 싶었는데, 분만 당사자인 아내는 지금까지도 죽겠는데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상황에 절망하는 듯했다. 거기다 대고 “자기야!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라고 말하는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손가락 한 개 정도의 길이에 불과한 10cm가 이렇게 길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출산의 10cm는 내가 아는 10cm와 다른 것인가. 우리에게 그 '10cm'는 너무 길고도 길었다. ⓒ김명규
출산의 10cm는 내가 아는 10cm와 다른 것인가. 우리에게 그 '10cm'는 너무 길고도 길었다. ⓒ김명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묵직해지는 진통…. 아내는 그 느낌을 ‘허리를 덤프트럭이 밟고 지나가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그 고통을 아내는 직접 느끼고 있었다.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칠 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핸드폰을 열어 아내가 그렇게 예뻐하던 고양이 사진을 보여줬다. 당시엔 아내가 핸드폰을 집어 던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했지만, 나중에 들은 바로는 고양이 사진이 잠시나마 위로가 됐다고.

힘겨운 사투를 벌이던 아내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 이제 안 될 것 같아…. 수술할래. 수술시켜줘…. 제발!”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신 중 아내는 이렇게 신신당부해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꼭 자연분만할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수술하겠다고 하면 오빠가 꼭 말려줘. 알겠지?”

아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 역시 “원하는 대로 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지칠 대로 지친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의료진에게 달려가 대뜸 “수술 준비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별말 없이 아내에게 다가가 “아이고, 수술할 거면 진즉에 했었어야지!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너무 아깝잖아요. 조금만 더 힘내요. 이제 다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토록 듣고 싶었던 “자궁문도 이제 거의 다 열렸다”고 말하며 늦어도 한 시간 안에는 분만하겠다는 말을 덧붙인 후 분만실 문을 나섰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자기야…정말 조금만 더 참으면 된대…”라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힘들면 그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나 보다. 나의 말을 들은 아내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다 거짓말이야…”라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핸드폰에 저장된 고양이 사진을 보여줬다. 아내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됐다고. ⓒ김명규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핸드폰에 저장된 고양이 사진을 보여줬다. 아내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됐다고. ⓒ김명규

그리고 아내는 장모님과 통화했다. 당시 코로나19 사태로 면회객이 제한돼 장모님은 분만의 현장에 함께하실 수 없었다. 곧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여인이 울먹거리며 ‘엄마’를 찾는다. 그 소리에 내 마음도 울컥했다. 하지만 다행히, 같은 경험을 해본 처지에서 장모님이 아내에게 해준 위로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아내는 다시 인고의 시간을 보냈고, 나는 시계와 아내를 쉴 새 없이 번갈아 보며 한 시간 내로 아기를 만날 수 있길 기도했다.

그렇게 40분 정도 지났을까? 의료진 두 분이 들어오시더니 아내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아내에게 분만하기 좋은 자세를 취하게 하곤 “아기가 많이 내려왔고 자궁문도 충분히 열렸으니까 이제 호흡과 힘주기만 잘하면 돼요”라고 하셨다. 드디어 우리가 ‘마지막 단계’에 왔다는 기쁨과 동시에 이제 정말 가장 힘든 순간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 엄마가 ‘힘’ 줄 때, 아빠도 함께 ‘끙’…그렇게 널 만났어 

드라마를 보면 남편이 분만을 시작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온 힘을 쏟는 장면이 종종 나오던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사실 이런 남편의 행동은 몹시 비효율적인 데다 산모에게도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고. 오히려 힘주는 데 방해가 되니 아내가 먼저 손을 잡아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튼튼한 침대 난간으로 아내의 손을 인도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예비 아빠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아내가 ‘힘’ 주는 사이, 남편은 뭘 해야 할까? 멀찌감치 서서 “우리 아내 파이팅!” 응원이라도 해야 할까? 나는 아내의 호흡을 도왔다. 아내가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 소리를 내어 숫자를 세어주고, 힘을 줄 때 나 역시 ‘끙’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있는 힘껏 함께 힘을 주었다. 이때, 진통을 견디며 모든 체력이 바닥났음에도 온몸의 힘을 쥐어짜 내는 아내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의례 하는 이야기인진 모르겠지만 간호사들도 아내에게 “잘한다! 잘한다!”라며 칭찬할 정도였다. 

숨 가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때’가 됐는지 의사 선생님이 오시고 나는 잠시 밖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10분 정도 흘렀을까, “남편분 들어오세요”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힘쓰고 있는 아내의 머리맡에 서서 떨리는 마음을 붙잡았다. 그리고 곧 들려온 아기 울음소리….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흐으엉’ 하는 탄식이 나왔다. 해냈다는 표정의 아내를 보는 순간 기특함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남편분, 이쪽으로 오셔서 탯줄 잘라 주세요.”

분만실에서 처음 메이를 만났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김명규
분만실에서 처음 메이를 만났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김명규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을 차리고 생애 처음으로 탯줄을 봄과 동시에 그것을 잘라내는 순간을 맞이했다. 능숙하게 싹둑 잘라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탯줄이란 게 원래 좀 질긴 모양인지, 아니면 내가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몇 차례에 걸쳐 힘겹게 잘라내 그게 좀 아쉬웠다.

그리고 우리 아기 ‘메이’와 처음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남자가 되었다.

*칼럼니스트 김명규는 결혼 2년 차 2020년 2월에 딸 아빠가 되는 프리랜서 MC 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다양한 매체에서 그림 그리는 진행자 ‘구담’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초보 아빠인 구담의 '라이브 육아일기 MAY'는 매달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육아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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