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진통이 시작됐다… 힘내라는 말조차 미안했던 '그날'
아내의 진통이 시작됐다… 힘내라는 말조차 미안했던 '그날'
  • 칼럼니스트 김명규
  • 승인 2020.03.30 17: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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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육아일기 MAY] 탄생이란 이름의 마지막 관문①

많이들 아시는 것처럼 보통 출산 예정일은 착상이 이루어진 때부터 40주 뒤. 하지만 예정일은 말 그대로 예정일 뿐,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 역시 많이들 알고 계실 것이다. 나 역시 주워들은 이야기로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의 메이는 예정일에 ‘짠!’ 하고 이 세상에 나올 것이라 너무도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36주 차에 담당 선생님께서 “당장 다음 주에 나와도 이상한 거 아니에요”라고 말씀하셨다. 겉으로는 티를 많이 안 냈지만, 과거 육군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클릭 몇 번 만에 의도치 않게 입대 날짜를 받았을 때처럼 입술이 마르고 심박수가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듯했다. 

임신 초기와 중기에는 주차별로 나타나는 증상이 알려진 것보다 조금 늦거나 빠르거나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내가 임신 36주 차에 들어서는 아내의 작은 증상을 호소해도 인터넷을 뒤지거나 주변 경험자에게 물어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내가 임신 36주차가 지나자 '이상하다'는 말에 호들갑을 떨게 됐다. ⓒ김명규
아내가 임신 36주차가 지나자 '이상하다'는 말에 호들갑을 떨게 됐다. ⓒ김명규

D-DAY 이틀 전날 밤, 잠들기 전 아내는 “왠지 싸한데?”라며 혼잣말을 했다. 분명 혼잣말이었음에도, 앞서 말했듯이 호들갑의 아이콘이 돼버린 나에게는 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왔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뭐가! 뭐가 어떻게 이상한데?”라고 소리치는 나에게 아내는 또 혼잣말로 “이슬도 계속 비치고 평소보다 배 뭉침이 심하고 잦다”며 이불을 덮었다. 

평소에 워낙 무덤덤하고 침착한 스타일의 아내였기에 이정도 표현만으로도 나에게는 당장 진통이 시작된 것처럼 느꼈다. 올 것이 왔다면서 당장 병원에 가보자는 나에게 아내는 ‘내일 아침에 가도 충분하다’고 얼른 불이나 끄라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쉽게 잠에 들 수가 없어 누운 채로 한참동안 인터넷 속 경험자들의 후기를 뒤적거렸다. 문제는 워낙에 많은 케이스들이 있다 보니 더 헷갈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별 이상 없이 곤히 잠든 아내를 보며 나도 곧 잠에 들었다.

◇ 앱이 알려준 ‘가진통’의 시작…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선생님 말씀

D-DAY 전날. “오빠 병원 가야 할 거 같아.” 아내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아침 8시 30분. 어제의 기세로는 동트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병원 갈 채비를 할 거 같은 나였지만 밤사이 긴장이 풀렸는지 그러질 못했다. 

서둘러 준비를 하며 아내에게 지금의 증상을 물었다. 아내는 “이슬도 많이 비치고 배 뭉침이 규칙적으로 오는 게 이게 가진통인 거 같다”며 “아닐 수도 있지만 확인차 한번 가보자”고 했다. 난 다시금 ‘그래 드디어 진짜 그날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운전대를 꽉 쥐었다.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방문한 병원에서 검진을 해본 결과 아직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담당 선생님은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오라'고 하셨다. ⓒ김명규
담당 선생님은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오라'고 하셨다. ⓒ김명규

담당 선생님이 “아직 좀 남은 것 같으니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있다가 진짜 이상하다 싶으면 다시 오라”고 말했다. 허무하기도 했지만,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덕분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먹고 싶다던 햄버거를 포장해와 야무지게 먹고 낮잠까지 잤다. 

그렇게 잠든 지 2시간여 뒤, “아, 배 아파…”라는 아내의 말이 들렸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는 그저 ‘이상하다’고 했는데 ‘아프다’는 표현을 하는 거 보니 ‘이번엔 진짜 진짜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오전 경험 때문인지 침착하게 스마트폰 앱으로 아픔이 오는 간격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사용한 앱은 일정 시간 동안 진통이 올 때마다 체크하면 그 값으로 이것이 가진통인지, 단순 배 뭉침인지를 판별하는 앱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확인해보니 앱은 “가진통 시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하는 아내를 부축하여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그때는 오후 7시. 일반 진료실은 업무가 끝나, 바로 분만실로 이동해 아내를 침대에 눕혔다. 곧이어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셨고 검진을 해본 결과 자궁문은 하나도 열리지 않았고 아기의 위치 역시 전혀 변함이 없다고 하셨다. 

‘아니, 아내가 이렇게나 아파하는데 조금도 아니라 전혀 시작되지 않았다고? 나라면 모를까 아내는 엄살이 심한 사람도 아닌데… 그럼 대체 진짜 시작하면 얼마나 아프다는 거지?’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들면서 아찔함이 느껴졌다. 병원에서는 이대로 분만실에서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집에 갔다가 다시 올 것인지 선택하라 했고 아내는 그 와중에 보일러를 안 끄고 온 거 같다며 집으로 다시 가자고 했다. 선생님께서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병원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집에서 기다리는 것을 추천하셨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최소 3배 이상 아프거나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오라’고 하셨다. 아내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 자궁문은 열렸고, 아내의 끝모르는 싸움도 시작됐다

그렇게 다시 집에 돌아와 우리는 귤을 까먹으며 최대한 편안하게 그때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세 번째 귤을 까먹을 때쯤 아내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도 최고 수준의 통증으로 보였는데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니 내 마음은 타들어 갔다. 

내 마음 같아서는 당장 둘러업고 병원을 향하고 싶었다. 아내는 헛걸음은 두 번 하고 싶지 않았는지 온 정신력을 발휘했고, 버텨 보고자 했다. 마치 신중하게 사냥감과 거리를 좁혀가는 암사자처럼 ‘아직은 아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되뇌는 것 같았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흐른 뒤, 아내는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나왔고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나지막이 “이제 가야 할 거 같다”고 말하며 보일러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걷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괴로워하는 아내를 부축하며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한세월처럼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1층으로 이사할 걸’, ‘아까 그냥 병원에 있을 걸’하는 괜한 후회들이 밀려왔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말처럼 아까의 방문 덕에 분만실까지 조금도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었다. 분만실 선생님들도 아내의 표정을 보고 ‘이번엔 진짜구나’ 싶으셨는지 별다른 말 없이 서둘러 준비를 해주셨다. 

아내는 끝모르는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답답했고 괴로워했다. ⓒ김명규
아내는 끝모르는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답답했고 괴로워했다. ⓒ김명규

분만실에 도착하면 끝인 줄 알았다. 아내를 침대에 눕힌 후 보호자는 입원 수속과 같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모든 과정이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우왕좌왕 헐레벌떡이었다. 

일을 마치고 분만실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낯선 환자복 차림으로 옆으로 누워 괴로워하는 아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나려 했다. 진짜 너무 아파서 울고 싶은 사람 앞에서 우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주먹을 꽉 쥐고 참아냈다. 

담당 간호사가 ‘이제 자궁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이제 아내는 출산까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이때 나는 길 잃은 꼬마처럼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곁에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답답해하고 또 괴로워했다. 힘내라는 말조차 너무도 미안한 밤이 깊어갔다.

*칼럼니스트 김명규는 결혼 2년 차 2020년 2월에 딸 아빠가 되는 프리랜서 MC 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다양한 매체에서 그림 그리는 진행자 ‘구담’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초보 아빠인 구담의 '라이브 육아일기 MAY'는 매달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육아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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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k**** 2020-03-30 17:56:49
자칭 1호 팬입니다 ㅋㅋ 제목도 너무 좋고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글이에요.
계속 좋은 글 부탁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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