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줄' 보여준 아내에게 근사한 리액션 하고 싶었는데
'두 줄' 보여준 아내에게 근사한 리액션 하고 싶었는데
  • 칼럼니스트 김명규
  • 승인 2020.02.18 11: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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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육아일기 MAY] 제일 근사한 것은 역시 '진심'뿐이다
라이브 육아일기 MAY. ⓒ김명규
라이브 육아일기 MAY. ⓒ김명규

“오는 길에 혹시나 해서 사 봤어.”

퇴근한 아내의 손에는 임신테스트기가 들려있었다. 아내는 저 말 한마디를 툭 내뱉고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거 아침에 해야 더 정확한 것 아닌가?”

나 역시 ‘에이, 설마’하는 마음이 컸기에 남 얘기하듯 대답했다. 1분 정도 지났을까.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내도 별일 없다는 듯 화장실에서 나왔다. 나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니지?”

아내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나도 덩달아 눈을 2.5배 정도 더 크게 떴다. 아내의 손에 들린 플라스틱 막대에는 붉은색 두 줄이 나타나 있었다.

◇ 나도 다른 남편들 못지않게 멋진 리액션 하고 싶었다고!

혹여나 독자께서 오해하실까 싶어 미리 말하자면 임신 소식이 기쁘지 않거나 예상치 못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임신을 확인했던 당시인 2019년 6월은 보통 아기를 갖기 적당한 시기라는 결혼 1년 차를 맞이한 시점이기도 했고, 우리는 종종 우리의 얼굴을 아기 얼굴로 바꿔주는 포토 앱(App)을 갖고 놀면서 우리의 아기를 상상하기도 했다. 심지어 몇 개월 전 다녀온 여행 중에 아기가 찾아와 준다면 태명을 ‘샌프란’으로 할지 ‘시스코’로 할지 고민하기도 했는데….

임신이 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알려주는 두 개의 라인을 보는 순간, 나의 ‘리액션’을 관장하는 뇌세포들은 시험 종료 5분 전 OMR카드 마킹이 밀린 것을 발견한 고3 학생처럼 혼란스러워했다.

"'리액션 세포'야, 얼른 근사한 '결괏값'을 보여줘라!" ⓒ김명규
"'리액션 세포'야, 얼른 근사한 '결괏값'을 보여줘라!" ⓒ김명규

그런데 왜 혼란스러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많은 남자들이 갖고 있을지 모를 ‘좋은 남편, 좋은 남자’ 콤플렉스 때문이지 않나 싶다. 한 남자의 인생에 있어 거대한 감동의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임신 소식을 듣고, 아내에게 '우리의 아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에 그 무엇보다 기쁘고 감동했어요'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그 순간 쓸데없는 계산을 하느라 반 박자 늦은 리액션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살짝 비겁한 핑계를 대자면 미디어를 탓해보고도 싶다. 당장 유튜브에 ‘임신 소식 남편 반응’ 등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영상 속 남편들의 반응은 어쩜 그렇게 모범적인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임신 소식에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특히 환희와 동시에 아이처럼 오열하는 남편을 봤을 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벌려 손뼉을 쳤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였나 보다. 나도 언젠가 나의 아이가 찾아온다면 영상 속 저들 못지않은 최고의 리액션을 취하겠노라고 다짐했던 것이….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나를 우왕좌왕하게 만든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었다. 정작 아이를 가진 아내의 마음은 어떤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혹시 아내는 아직 신혼을 더 즐기고 싶은 건 아닐까?’

‘혹시 아내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건 아닐까?’

‘혹시 아내는….’

아내의 마음속에 임신에 대한 당혹감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앞에서 기쁨을 표현한답시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춘다면, 눈치도 없고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수컷’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우려됐다. 지금 생각하면 배려보단 과민에 가까운 생각이 스친 것이다.

◇ “좋아하는 모습이 멍청이 같으면서도 귀여웠어”…진심이 통했구나!

이러쿵저러쿵했지만 결국 약 1.5초간의 정적 이후 내가 취한 반응은 최고의 리액션을 위한 고민의 ‘결괏값’이 아닌 그저 몸이 가는 대로,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주인공 조인성처럼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테스트기를 쳐다보며 괴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오열하며 나의 진심을 토해내는 것. 그리고 그 진심을 아내가 알아줬다!ⓒ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화면 갈무리
드라마 주인공처럼 오열하며 나의 진심을 토해내는 것. 그리고 그 진심을 아내가 알아줬다!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화면 갈무리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소리는 ‘코끼리랑 말 울음소리의 중간 즈음’이라고 했다. 분명한 건 그리 근사한 리액션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더 생생하게 그 당시를 표현하고자 유일한 목격자인 아내에게 그 순간의 기억을 물어보았다. 넷플릭스에 심취한 그녀가 말하길….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잘은 기억 안 나지만, 좋아하는 모습이 아주 멍청이 같으면서도… 귀여웠어.”

기대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당시 나의 진정성은 잘 전달됐던 모양이다. 그래, 그 어떤 화려하고 멋진 리액션이라한들, 진심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반갑다. 메이야

*칼럼니스트 김명규는 결혼 2년 차 2020년 2월에 딸 아빠가 되는 프리랜서 MC 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다양한 매체에서 그림 그리는 진행자 ‘구담’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초보 아빠인 구담의 '라이브 육아일기 MAY'는 매달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육아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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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k**** 2020-02-18 19:48:18
너무 좋은글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구담님 화이팅!

y**** 2020-02-18 12:20:44
저는 테스트기 두줄에 첫마디를 '이를 어쩐다?'했다가
3년간 구박받았어요

김명규님처럼 했어야 하는데..
정말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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