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이중삼 기자】
[알림] 시각장애인 웹접근성 보장을 위한 대체텍스트입니다.
1.
세 아이 팔아 생계비 마련… 한 평민의 절규
2.
때는 1809년 조선 제23대 순조 시절. 정복삼(鄭福三)이라는 평민의 이야기다.
3.
정복삼(鄭福三)은 아내 심이(深伊)와 위로는 부친을 모시고 아래로는 세 아이를 키우는 가난했지만, 평범한 평민이었다. 첫째는 12살, 둘째는 4살, 막내는 갓난아이였다.
4.
그러나, 1809년 살인적인 흉년으로 행복했던 이 가족의 일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5.
가난과 흉년이 겹쳐 살길이 막막해지고 고향에서 생계를 꾸려 나갈 방도가 없게 된 정복삼(鄭福三)은 부친과 세 아이를 이끌고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로 지내게 됐다.
6.
그러던 중 부친이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나게 되고, 업친데 덥친격으로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세 아이를 데리고 더 이상 떠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7.
결국 정복삼(鄭福三)은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착한 곳은 경상북도 경주. 하지만 생계가 문제였다.
8.
정복삼(鄭福三)은 아내와 논의 끝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바로 세 아이를 노비로 팔아서 생계비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9.
조선시대 평민은 스스로를 팔아 노비가 될 수도 있었다. 이때 쓴 문서가 ‘자매문서’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어버이가 멋대로 팔 수 있었다. 아이들 의사는 상관없었다.
10.
정복삼(鄭福三)은 자매문서를 쓰고 세 아이를 35냥에 노비로 팔았다. 19세기 조선시대에는 살기 어려웠던 평민들이 스스로 노비가 되거나, 아이를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