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등학교의 영재·우등 프로그램 시험을 치러봤어요
미국 초등학교의 영재·우등 프로그램 시험을 치러봤어요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1.04.09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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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공교육의 기프티드 프로그램 체험기

두 아이를 미국에서 키우면서 나는 큰 아이는 만 4살이 될 때까지 기관에 보낸 적이 없고 작은 아이도 현재 만 3살이 됐지만 아직은 기관에 보내고 있지 않다. 게다가 주로 한인 인구가 많지 않은 도시에 살았거나 한인 인구가 많은 도시에 살았을 때 조차 나의 아웃사이더적 성향과 자의반 타의반의 바쁜 스케줄로 다른 한인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영유아, 아동 교육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은 편이다.

 

굳이 한인을 언급한 이유는 사실 한인들의 교육열과 교육 정보가 이 곳 미국에서도 정말 최강이기 때문이다. 기프티드 프로그램(gifted program)에 뽑힌 한국계 학생들의 수도 상당하기 때문에 나중에 찾아보니 미국내 한국 엄마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다양한 경험담이 있었다. 한국계가 아닌 미국 엄마들의 경우에도 교육열이 높은 경우는 종종 있지만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 이상(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서로 교육 정보를 이야기 한다기 보다는 만나서 아이들끼리 플레이데이트를 하는 이야기나 아이들과 놀러 갈 만한 곳을 공유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미국의 대부분의 초등학교에는 기프티드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나라 말로 굳이 번역을 하자면 영재 프로그램이나 우등 프로그램 정도될 것이다. 이 기프티드 프로그램은 각 주(state)에 따라서, 도시에 따라, 또는 해당 교육구(school district)에 따라 시작하는 학년도 다르고 운영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초등학생인 큰 아이의 경우는 기존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기프티드 프로그램이 운영됐기 때문에 접할 기회가 없다가 전학 온 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기프티드 프로그램이 운영돼서 올해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기프티드 프로그램의 시험을 처음으로 보게 됐다.

 

아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같은 경우에는 기프티드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고 안내 받았다. 일단 보통 아이와 제일 오랜 시간 접하는 담임 선생님, 드물게는 기타 과목 선생님들께서 추천을 해주시고 부모의 동의를 얻어 몇 번의 평가 시험을 치르게 된다.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가 더 다양한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게 기프티드 프로그램을 듣도록 시험을 보는게 어떻겠냐고 먼저 권유를 해주셨다.

 

사실 노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아들래미. 대신 하나에 꽂히면 그 것만 계속 판다. 요즘의 최애 토픽은 '개미'이다. 각종 개미 종류와 습성을 다 조사하고 개미를 채집하고 관찰한다. ⓒ이은
사실 노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아들래미. 대신 하나에 꽂히면 그 것만 계속 판다. 요즘의 최애 토픽은 '개미'이다. 각종 개미 종류와 습성을 다 조사하고 개미를 채집하고 관찰한다. ⓒ이은

 같은 반 친구들과 같이 있는 걸 선호하는 아이 때문에 질문을 드렸더니 다행히 기프티드 프로그램 수혜자로 선정되더라도 반 친구들과 아예 동떨어져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몇몇 과목의 심화 부분만 추가로 듣게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 나도 동의했다. 아이는 처음에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기프티드 담당 선생님과 몇가지 학력 수준 및 인지 능력 등에 관한 시험을 쳤다. 나는 기껏해야 간단한 수업 관련 문제만 풀 줄 알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 궁금해서 어떤 시험을 봤냐고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재미있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도 같이 풀었다고 해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알고 봤더니 무언가를 유추하고 추리해서 푸는 종류의 문제도 있었나 보다.

아무 생각없이 며칠이 지나고 나서 담임 선생님께 큰 아이가 1차 시험을 통과했으니 얼마 뒤에 담당자가 다음 절차에 대해서 연락을 해 올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심층 서면 인터뷰에 가까운 두툼한 서류를 우편으로 받게 됐는데 이 서류는 보호자가 작성하게 돼 있었다. 아이가 언제 처음 말(단어, 문장, 2개 이상의 주술 호응 문장까지 각각)을 시작했는지, 언제 처음 서고 걸었는지, 그리고 언제 처음 배변훈련에 성공했는지까지 정말 세세한 정보를 다 적게 돼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사실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내용을 묻는 문항도 정말 많았다. 다음으로는 부모로서 생각하는 아이의 특성과 성격에 대한 기술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아이를 미국에서 프리스쿨과 킨더가튼을 보내면서 기관에서 정말 자주 요구하는 내용의 서류라서 그나마 수월하게 적을 수 있었다.

또 몇 주가 지나서는 해당 교육구의 전담 심리학자(school district psychologist)가 연락을 해서 2차 시험을 보러 오라고 알려줬다. 시험은 2~3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기에 준비해 갈 것은 없냐고 물어봤더니 간단히 먹을 스낵과 물 정도 챙겨오면 될 것 같다고 알려줬다. 판데믹 상황 때문에 100% 온라인 수업을 받아왔었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외출복을 입고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첫 번째 시험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험도 선생님과 아이가 1:1로 보았고 태블릿pc에 답을 표시하거나 선생님께서 직접 문제를 묻기도 하고 특정 종이에 아이가 직접 답을 체크를 하기도 했다고 했다. 사실 이 모든 기간이 마침 나의 학회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그나마 버츄얼 학회라서 다른 도시에 있지는 않았다) 학회 세션 준비와 발표 준비를 하느라 그마저도 부모가 작성하는 서류를 제외하고는 아이가 모든 시험 과정을 다 마치고 나서야 어떤 시험을 봤느냐고 한참 만에 물어볼 수 있었다.

사실 아이가 2차 시험을 보고 왔을 때 같이 밥을 먹다가 시험은 어떤 걸 봤냐고 궁금해하며 물어봤더니 “엄마, 그런데 나 꼭 붙어야 돼?”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니, 네가 재미있는 경험하면 된 거야. 엄마가 처음부터 아들한테 시험 보고 싶냐고 먼저 물어봤었잖아. 그냥 새로운 걸 경험해 보려고 본 시험이야”라고 했더니 곰곰이 생각하던 아들이 “쉬운 문제도 있고 어려운 문제도 있었어. 시험을 볼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시험을 다 보고 나니까 왠지 꼭 붙고 싶어. 그런데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두 시간 넘게 시험보고 났더니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문제 얘기할 힘도 없어”라고 대답했다. 하긴 학교 쪽지 시험 말고는 생애 처음 나름 굵직한 시험을 그렇게 장시간 치렀으니 정말 힘들긴 하겠다 싶어 더 이상 묻지 않고 간식까지 잔뜩 챙겨먹이고 푹 쉬도록 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아이가 선생님과 곰곰이 생각해 대답해야 되는 질문도 주고 받고 수수께끼 같은 것도 보고 학교 시험문제 같은 것도 봤다고 이야기 해줬다. 도대체 무슨 시험을 보는 걸까 싶어서 미국의 기프티드 프로그램 시험을 찾아보니 학업능력시험은 물론이고 IQ테스트는 필수로 보고 창의력, 인지능력을 주로 보며 거기에 사회성과 리더십, 그리고 심리,정서적 안정성까지 모두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정보가 있었다. 아이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그리고 주어진 학교 숙제 정도는 잘 챙겨주려고 노력하지만 그 외의 것에는 문외한이며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을 많이 쏟아주지 못하고 살다 보니 기프티드 시험이 그런 종류의 시험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알고 보니 대도시 지역이나 한국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한국계 학생 중에 꽤 많은 학생들이 기프티드 프로그램에 속해있다보니 자주 정보가 공유되고 하는 것 같았다.

기프티드 프로그램 수혜 학부모의 권리에 대해 설명한 안내문. ⓒ이은
기프티드 프로그램 수혜 학부모의 권리에 대해 설명한 안내문. ⓒ이은

어쨌든 어영부영 엄마랑 상관없이 큰 아이는 시험을 잘 통과하고 오늘 정식으로 기프티드 프로그램을 듣게 됐다고 합격통보를 받았다. 나는 여전히 기프티드 프로그램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고 봐도 좋지만 선생님들이 자세한 커리큘럼과 앞으로의 계획을 추후에 알려주신다고 선생님들만 믿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달 말에 기프티드 프로그램 담당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교장 선생님, 교육구 전담 심리학자 선생님, 그리고 학교 커리큘럼 담당 선생님들과 미팅 날짜를 잡자는 이메일도 받았는데 무언가 어리둥절하다. 아이는 반 친구들과는 계속 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볼 때 만났던 선생님들이랑 앞으로도 가끔씩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그럴 거라고 선생님들이 시험 본 뒤에 아이에게 말씀하셨다고 아이가 최근에 새롭게 말해주었다) 새로운 수수께끼(?) 문제들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하는 중이다.

미국 내에서도 기프티드 프로그램 운영 자체가 우열반을 나누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프로그램에 속한 아이들도 속하지 못한 아이들도 잘못된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기프티드 프로그램을 없애자는 주장이 자주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다수의 교육구에서 이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잠재성과 가능성에 공교육이 도움을 주고 격려를 해주려는 차원에서이다. 더구나 나 같은 외국 엄마의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초중고를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 학교의 커리큘럼과 교육 강조 부분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사실 이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휘리릭 전광석화처럼 끝내버리고 수업이 너무 쉬워서 지루하다는 아이에게 무리는 주지 않되 약간의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다면 사실 외국인 엄마 입장에서는 참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담임선생님께서 적극 권장하셔서 더 마음이 놓였는데, 지금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한 명도 빼놓지 않고 한 명 한 명 개개인에게 모두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 분으로 유명하시기에 나는 그냥 믿고 따르기로 했다. 애초에 큰 아이가 반 아이들과 계속 일반 수업도 같이 들을 수 있다면 시험을 보고 싶다고 승낙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기프티드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방식의 커리큘럼으로 이뤄지는지 큰 아이가 느끼는 이 프로그램의 장단점은 뭔지 추후 칼럼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우선 지금은 아이가 이 새로운 기회와 경험을 마음껏 즐기고 탐구해보기를 바랄뿐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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