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도 기억 안 나”… 1년 전의 '학대'가 남긴 것
“친구도 기억 안 나”… 1년 전의 '학대'가 남긴 것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8.08.09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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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아동학대 후 1년②] '피해아동 부모의 1년' 인터뷰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식사 지도를 이유로 토사물을 아동 입에 넣고, 홀로 아동을 방치한 채 교실 불을 꺼버리는 등의 아동학대 사건이 지난해 7월 경기도 부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했다.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앞에서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그 해 8월 4일에 열었다. 베이비뉴스는 집회 취재 이후 1년 동안 아동학대 사건을 취재했다. 베이비뉴스는 5차 중 3차례 공판에 참석해 어떤 쟁점을 가지고 진행됐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피해 아동 부모에게는 어떻게 1년을 지냈는지 물었다. –기자 말

<기사 싣는 순서>
① 그날의 '학대' 영상 틀자… 엄마는 법정을 뛰쳐나갔다
② “친구도 기억 안 나”… 1년 전의 '학대'가 남긴 것

지난해 8월 4일 오후 경기 부천시 중동 A 어린이집 앞에서 학부모 10여 명이 아동 학대 피해에 대한 항의 집회를 열고 어린이집 폐쇄와 보육교사 및 원장의 구속을 촉구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8월 4일 오후 경기 부천시 중동 A 어린이집 앞에서 학부모 10여 명이 아동 학대 피해에 대한 항의 집회를 열고 어린이집 폐쇄와 보육교사 및 원장의 구속을 촉구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아이 입을 타고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어느 날 밤 아이가 엄마에게 또는 아빠에게 “할 말이 있다”며 그 다음 할 말을 고르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누군가에게 맞았다“고 말한다면. 아이를 때린 사람이, 아침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내가 아이 손을 넘겨 준 선생님이라면.  

중복을 갓 넘긴 지난달 29일, 경기 부천시 중동 A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피해아동 학부모 최지은·서현희·황희경·전인영(모두 가명) 씨를 부천의 한 키즈카페에서 만났다. “여름 들어 삼계탕 한 그릇 먹을 정신도 없이 보냈다”며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회사 일 때문에, 사업을 하는 부모는 사업을 준비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지난 1년 동안 다섯 차례 공판을 지켜봤고 이제 판결을 앞둔 엄마들은 서로를 보며 웃을 여유도 생겼다. 지난여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은 서로 짧은 인사를 나누고 볼풀장을 향해 곧장 달려갔다. 

◇ 어른 두려워하고 '틱' 증상에 배변장애도… 변해버린 아이들

“우리 아이는 15개월부터 A 어린이집에 다녔어요. 그곳 기억을 하고 싶지 않아 해요. ‘A’라는 단어 자체를 안 좋아해요. ‘A에서 같이 다녔던 친구 기억나느냐’고 물어보니까 기억이 안 난대요.”

최 씨의 말에 “어른 앞에서 쾌활하고 인사도 잘 하던 아이가 어른을 두려워하게 됐다”고 맞은편에 앉은 서현희 씨가 거들었다. 사건 신고 후 이들은 부천시청의 지원을 받아 심리치료를 열 차례 정도 받았다. 서 씨의 자녀를 맡은 상담선생님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른들과 신뢰가 쌓이는 경험을 많이 해야 예전같이 돌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 씨는 아이가 요즘은 타인 앞에서 위축되는 자신을 보고 “‘제가 숫기가 없어요’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괜찮아졌다”며 웃었다.

황희경 씨는 “그해 7월에 아이가 얼굴을 씰룩거리거나 눈을 심하게 깜박거리고,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등 포악하게 행동했다”며 사건 당시를 기억했다. 외부에 나갔을 때 틱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 아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던 일도 있었다. 황 씨 자녀의 증상은 심리치료를 받고나서야 완화됐다. 그때서야 아이는 “교사가 자신을 때렸다”고 말했다. 

특히 A 어린이집 등원 당시, 교사 이아무개 씨는 황 씨의 아이에게 물을 못 마시게 하거나 용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등의 학대를 가했다. 이 때문에 아이는 응급실을 이용하는 일이 생길 만큼 배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보여줄 방법이 없는 학대사실을 황 씨는 의무기록발행증명서로 재판부에 알렸다. 응급실에서 장기간 나타난 배변 장애로 관장을 받았다는 정황을 증명서에 담았다. 황 씨는 “갑자기 깨서 소리지르고 몇 십 분 이유 없이 우는 등의 야경증 증상 요즘도 가끔 나타난다”고 털어놨다. 

한참 놀던 최 씨의 아이가 저 멀리서 엄마를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그 뒤를 전인영 씨의 딸이 따라왔다. “친구 기억나?” 최 씨가 자신의 딸에게 물었다. 첫 번째 질문에 아이는 대답을 망설였다. “친구 기억 안 나? 예전에 어린이집 같이 다녔잖아.” 최 씨는 어린이집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전 씨가 “얘, 친구가 기억 못한다고 하니까 서운하겠다”고 말했다.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그치? 기억나지?” 전 씨는 대답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처럼 만난 두 아이는 나란히 서서 음료수를 마셨다.

지난해 8월 4일 부천 A어린이집 아동학대 피해에 항의하기 위해 열린 첫 피켓 시위 당시, 한 학부모의 지인이 현장에 방문해 피해 학부모의 손을 맞잡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8월 4일 부천 A어린이집 아동학대 피해에 항의하기 위해 열린 첫 피켓 시위 당시, 한 학부모의 지인이 현장에 방문해 피해 학부모의 손을 맞잡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원장 때문에 선택한 어린이집, 학대 발생에 “뒤통수 맞은 듯”

2018년 7월 어린이집정보공개포털 기준으로 경기도 부천시에는 607곳의 어린이집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A 어린이집을 선택한 걸까. 

“처음에 상담 갔더니 원장이 ‘우리 원은 아이들 공부시키려는 곳이 아니’라는 거예요. 놀이 위주로 창의력을 깨워줘야 한 대요. 식재료도 유기농으로 쓴다고 했고요.”

이들은 입을 모아 ‘원장의 보육철학’ 때문이라고 답했다. 상담 자리에서 ‘CCTV 영상 열람도 가능하냐’는 질문에 흔쾌히 답하는 등 감동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주변에서 소개를 해준 것이 어린이집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 부모도 있었다. 이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을 때 부모들이 믿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사건 후 사과 한 번 없는 원장의 태도에 서 씨는 “뒤통수를 맞은 거 같았다”고 표현했다. 

“아이들은 잊어버리고 금방 적응하는데, 저는 잊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 심리상담 받을 때 아이보다 제가 더 힘들었어요. 상담받으러 왔다는 것도 그렇고. 그 많은 어린이집 중에, 그 많은 아이 중에 ‘왜 내 아이여야 했을까’ 생각했어요.”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신학기부터 A 어린이집 만 3세반 달님반(가칭)을 맡은 담임교사가 있었다. 그가 가족의 질병 간호를 이유로 갑자기 어린이집을 그만두자, 지난해 5월에 원장 김아무개 씨가 교사 이 씨를 달님반 담임으로 임명했다. 서 씨는 “(교사가) 바뀐 직후부터 아이들 증세가 나타났다”고 회상했다. 어린이집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이가 자지러지듯 울며 가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안 가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어르면서 보냈던 걸 후회한다”고 서 씨가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 신고와 수사는 두 달 뒤인 그해 7월 말에 진행됐다. CCTV 영상도 지난해 6월 8일부터 7월 14일 사이 촬영 분량이 증거로 채택됐다. 서 씨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주기적인 학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CCTV 영상 보관 의무기간을 늘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 씨도 “보지 못한 영상에도 폭력적인 묘사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아이를 기르는 일만큼, 아이가 겪은 아픔을 다스리는 것도 부모의 손을 필요로 했다. 서 씨는 “모든 조치가 엄마들이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고 설명했다. 부모들이 뭉쳐서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어린이집에 CCTV 열람 신청을 했다. 신고 후에는 부천시청 보육담당 부서와 직접 만나 학대 아동 심리치료와 어린이집 우선 배정을 요구해 받아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심리치료가 중단됐을 때도 ‘아이의 완벽한 회복’을 위해 부모들이 나섰다.

지난해 8월 8일, 가해 교사와 원장 구속을 요구하며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진행한 1인 피켓 시위. A 어린이집과, 시청, 법원을 오가는 이들의 시위는 해를 넘겨 올 1월까지 계속됐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8월 8일, 가해 교사와 원장 구속을 요구하며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진행한 1인 피켓 시위. A 어린이집과, 시청, 법원을 오가는 이들의 시위는 해를 넘겨 올 1월까지 계속됐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막막하고 답답한 법정공방… "이러다 회사에서 그만두라 할지도"

“사건 접수부터 재판 진행까지 피해아동 부모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대리해주는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모들을 괴롭힌 것은 ‘막막함’과 ‘기다림’이었다. 경찰 수사가 끝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도 받기 힘들다. 첫 공판 날, 이들에게 배정된 국선변호사가 갑자기 사직을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 씨는 “수사가 어떻게 끝났고 재판이 언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어 힘들었다”고 말했다. “재판이 시작돼도 어떤 증거가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고 그저 기다려야 했다”고 덧붙였다. 답답한 마음에 탄원서, 진정서를 써서 검사와 판사 앞으로 보냈다. 증인으로 나서줄 사람을 찾아 진술서를 받았다. 피해를 증명하는 것도 피해아동 부모의 몫이었다. 

짧으면 5분밖에 되지 않는 공판 때문에 직장이 있는 부모는 휴가를 쓰고, 사업을 하는 부모는 주변의 양해를 얻어 방청석을 채웠다. 재판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7월에 있던 5차 공판 종료 후에 기자에게 “이러다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은 부모도 있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이 대화 주제로 올라왔다. 1년 먼저 겪은 부모들은 같은 아픔을 가진 부모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혼자 행동하지 마세요. 같은 반 부모에게 연락해서 비슷한 일 있는지 물어보고, 최대한 많은 수를 모집해서 정식으로 원장에게 CCTV 영상 열람을 요구하세요.”

서 씨는 “내 아이가 학대당했다는 정황이 있으면 다른 아이도 피해봤을 확률이 높다”며 사건 확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 씨는 “아이의 피해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다”며 “피해가 없더라도 단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CCTV 영상을 꼭 확보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인 아이도 사건을 잊을 수 있어요. ‘우리 아이는 정서적으로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증상이 안 보여서 괜찮다. 상처를 괜히 끄집어내면 힘들지 않냐’고 묻는 분도 있어요. 그래도 꾸준히 심리치료를 받게 하셔야 해요. 아이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상처가 나타날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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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en**** 2018-08-16 04:28:08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예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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