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사랑의 매’ 논쟁? 아동은 ‘덜 된 사람’이 아니다”
“아직도 ‘사랑의 매’ 논쟁? 아동은 ‘덜 된 사람’이 아니다”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6.15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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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동인권」저자, 국제아동인권센터 활동가 김희진 변호사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지난 4일 서울 내자동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김희진 변호사를 만났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4일 서울 내자동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김희진 변호사를 만났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모든 인간의 존엄과 삶의 가치는 우열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동인권에 대한 약속은 평등과 비차별, 공정함에 대한 신뢰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동과 성인 모두가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활동가인 김희진 변호사가 그의 책 「아동인권」(푸른들녘)을 끝맺으며 쓴 문장이다. 지난달 출간된 「아동인권」은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사회의 합의를 근거로 출생등록제, 베이비박스, 노키즈존 등 아동과 관련된 이슈를 아동 중심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아동을 위한 방향성을 모색한 책이다.

책을 계기로 지난 4일 서울 내자동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100년에 가까운 아동인권 증진의 역사 가운데 김 변호사가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은 것은 1989년 유엔아동권리협약 채택이다. “아동 역시 모든 인권의 주체라는 것을 확인한 최초의 국제 인권 협약”라는 점 때문.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권리협약을 이행함에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원칙으로 ▲비차별 ▲아동 최상의 이익 ▲생명·생존 및 발달 ▲의견 표명과 참여라는 ‘일반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특히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원칙은 ‘아동 최상의 이익’이라고 꼽았다.

“‘아동 최상의 이익’ 원칙은 정말 어려운 개념이에요.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르게 해석돼야 마땅하죠. 모든 상황에서 과연 아동에게 최상의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일지를 사회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그런 노력이 없지 않은가 해요. 아동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위한 ‘기꺼운 마음’이 없지 않나.”

김 변호사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동과 관련된 기본법으로 해석되고 있는 ‘아동복지법’의 한계도 지적했다. “아동의 인권을 보호나 복지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는데 그것은 인권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 이후 만들어진 다양한 법제도들이 모두 아동복지법에 들어가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아동복지만이 아닌 아동정책이나 아동학대, 아동자립 등 아동복지법이 이름에 맞지 않는 다양한 내용들을 무리하게 담고 있다”며, “아동과 관련한 기본법이라면 ‘복지법’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단호하게 없애고 새로운 걸 만들 의지가 없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변호사는 ‘기본법’으로서 아동복지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김 변호사는 ‘기본법’으로서 아동복지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 “베이비박스 논쟁의 중요한 포인트는 국가의 책임 방기”

지난달 23일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해 “2015년 아동정책기본계획 때보다는 확실히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 더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또 “아동보호 체계에서 공적 책무성 강화 의지가 분명하게 나타났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봤지만, 비판할 지점은 더 많았다.

“포용국가 아동정책 중 하나가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아동보호 서비스를 통합지원 한다는 건데, 이름과 역할이 맞지 않죠. 아동인권 문제를 아동복지로 한정한다는 아쉬움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어요. 아동도 ‘한 사람’이라고 바라본다면, 모든 부분에 대한 권리가 어떻게 고려돼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김 변호사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언급된 보호(익명)출산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우선 “(미혼모 등 익명출산을 고려하는 부모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한순간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며, “아이 역시 부모와 함께 살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익명출산을 택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아이가 부모를 알 권리는 마땅히 보장돼야 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익명출산제는 조심스럽게 논의는 할 수 있지만 아동인권 증진을 위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 아무 설명 없이 익명출산을 언급했다는 건 결코 아동인권적 관점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익명출산제와 마찬가지로 베이비박스 논쟁은 참 조심스럽고 예민한 주제다. 김 변호사는 베이비박스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쟁에서 ‘공공의 역할이 생략돼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아동의 생명을 “우연히 마주치는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데, “이 같은 ‘우연’은 아동보호를 위한 최선이 될 수 없다”(119쪽)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아동에 대한 신상기록이 베이비박스 운영자들의 선의에 따라 다행히 보관된다 하지만, 보관되지 않는다 한들 누가 확인하며 누가 책임을 묻겠느냐”고 말했다. 또 “아동과 부모에 대한 기록들이 보관되고, 아동이 알고자 할 때 어떻게 그 기록을 찾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베이비박스도 궁극적으로 없어야 하지만 당장 없앨 순 없어요. 포인트는, 국가가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는 거죠. ‘누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네? 그럼 됐다.’ 공공의 책무는 베이비박스에 가지 않아도 괜찮을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겠구나’라는 사회적 지지망과 안전망을 마련하는 거죠.”

지난달 30일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은 그 ‘포용’의 범위가 대한민국 국적을 출생과 함께 취득한 경우에 한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관할 영토 내에서 국적과 관계없이 출생등록 될 권리를 실행하기 위한 어떠한 책임감도 표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 역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이주’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며, “이주아동 또한 정책의 당사자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뺀 것으로, 배타적인 정책의 벽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5월 베이비뉴스는 생모의 거부와 복잡한 법적 절차 때문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미혼부 가정의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8개월 아기 데리고 웨이터 일도… 어느 ‘미혼부’ 이야기) 김 변호사는 책에서 그 사례를 인용해 “미션 임파서블한 출생등록” 문제를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한 사람의 신분 자체를 오롯이 인정한다기보다는 가족관계 속에서 신분이 증명되다 보니 증빙을 위해 갖춰야 할 서류가 너무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출생신고는 왜 부모만이 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등록하는 건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인데 우리 사회는 아예 이런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적 절차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아동의 법률행위 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니까 대리인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부모가 없으면 대리인은 누가 될 것인가. 출생등록 등 아동이 관련된 법률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서, 법원이든 지자체든 당장 아동을 대리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독자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김 변호사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는 ‘이주’라는 단어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김 변호사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는 ‘이주’라는 단어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 “노키즈존 문제, 법으론 해결 못해… 아동기 인권교육 중요”

포용국가 아동정책 발표 이후에 사회적 논쟁이 일어났다. 바로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민법 개정 추진’이라는 내용 때문이었다. 김 변호사는 그런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사실 좀 놀랐다”며, “여전히 ‘사랑의 매’라는 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당연한 물건으로 인식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아동을 ‘아직 덜 된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죠. 성인들 중에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고 정말 나쁜 사람도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때리려고 하지는 않잖아요. 근데 왜 아이들은 말을 안 들으면 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걸까. ‘맞지 않으면 태도가 안 바뀐다’는 건 아동에게만 적용되는 인식이죠.”

‘노키즈존’ 역시 늘 뜨거운 논쟁을 불러오는 이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3년 채택한 일반논평 제17호에서 아동에 대한 공공장소 사용이 제한되는 현실을 우려하기도 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도 13세 이하 아동의 출입 및 이용을 금지하는 것은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말 그대로 우리가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민하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준다”며, “아동을 양육하는 게 아동인권을 보장하고 증진하는 과정 중 하나라는 사회적 합의도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노키즈존을 만들지 말라고 법으로 정할 순 없다”며, 결국 “사람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사람의 변화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동기부터 아동인권이 왜 중요한지 알리는 것이 출발점이라 생각한다”며, “아이들이 내 권리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권의 기본 원칙은 ‘비차별’과 ‘평등’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서로 동등한 당사자입니다. 다만 누군가의 권리 보장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가 기꺼이 양보하고 배려할 수 있으며, 이 세상은 그 과정이 반복되며 나의 권리도 존중받게 되는 선순환으로 유지됩니다.”(110쪽)

「아동인권」 서문의 첫 문장은 “2014년의 세월호 참사는”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불행히도 우리가 ‘인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때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 직후일 경우가 많다. 어떤 사고나 사건으로 안타까운 희생을 치른 다음에야, 어떤 제도가 개선되거나 사람들의 인식이 나아지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아동인권 인식 변화에 대해 묻자, 김 변호사는 “가장 큰 변화는 아동 당사자들, 청소년 당사자들의 변화”라고 답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촛불이 박근혜 탄핵 촛불까지 이어지면서 가시적으로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냈고, 그 변화가 우리 사회의 목소리의 다양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변호사에게 ‘희망의 증거’들을 나눠주시라 부탁했다. 아동인권 활동가로서 ‘해결해야 할’ 숙제만큼이나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또한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다.

“희망의 증거는 ‘역사’ 아닐까요. 지금까지 더디지만, 물론 때로는 후퇴한 적도 있지만 분명 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기대는 계속해서 높아져왔어요. 그 역사 속에서 아이들이 변화해가는 모습이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라고 생각해요. 사실 희망을 본다기보다 지금 이 순간 절망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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