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당일 "오늘 못 만나겠다"는 카톡
얼마나 놀라고 다급했으면 새벽 5시 20분에 카톡을 보냈을까. 나와의 약속을 캘린더에 저장해 놓지 않아서 회사 미팅 일정과 겹쳤단다. 고로 나와 점심은 먹을 수 없고 짧은 티 타임 정도만 가능하니 약속을 바꾸었으면 한다는 거다. 으흠. 그런데 어쩌나. 나는 이날 약속을 잡음과 동시에 병원 정기검진 예약을 잡아서 서울로 가긴 가야 하는데… 나는 안식월 중이라
얼마나 놀라고 다급했으면 새벽 5시 20분에 카톡을 보냈을까. 나와의 약속을 캘린더에 저장해 놓지 않아서 회사 미팅 일정과 겹쳤단다. 고로 나와 점심은 먹을 수 없고 짧은 티 타임 정도만 가능하니 약속을 바꾸었으면 한다는 거다. 으흠. 그런데 어쩌나. 나는 이날 약속을 잡음과 동시에 병원 정기검진 예약을 잡아서 서울로 가긴 가야 하는데… 나는 안식월 중이라
길가에 널린 게 꽃이다. 진달래를 시작으로 벚꽃이 진 지금 우리 동네에는 철쭉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올해 철쭉축제는 볼 만하겠다. 이번 봄 벚꽃 없이 축제 기간을 보낸 곳도 있다는데 다행히 철쭉 없는 축제는 아닐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면 남편과 나는 점심을 대강 챙겨 먹고 오후에는 산책을 나선다. 사실 나는 아침 산책을 가고 싶은데 남편은 주
시간이 되면 가급적 산에 가려고 한다. 그날은 쉬는 날이었고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에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오전을 보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녁까지 침대 밖을 떠나지 못할 것 같아 옷을 갈아입고 주섬주섬 양말을 신었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데는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뒷산으로 향했다. 역시 나오기가 어렵지, 일단 나오면 “좋다, 좋다, 참 좋다” 소리가
12월 27일 오후 3시 40분. 다시 찾은 분당에 위치한 대학병원. 동네 산부인과를 찾은 이후로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의사가 내 이름을 확인한 뒤 천천히 입을 뗀다. “지난번에 MRI 검사를 하셨는데요... MRI 상으로는 암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암보다는 자궁내막증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아주
12월 19일 골반강 MRI 검사 날이다. 오후 7시 20분 검사인데 오후 1시 반 이후로는 금식이었다. 시간상 퇴근 후에 병원에 가도 될 것 같았는데, 맘을 좀 더 편히 가지려고 오후 휴가를 냈다. 긴장했는지 이날도 병원에 일찍 도착했다. 신장 환자의 경우, 간혹 간호사들이 조영제를 투여하면 안 되는 걸 잊는 경우가 있다는 내용을 봐서 검사실로 들어가기
어수선한 밤을 지나 아침이 왔다. 너무 긴장했는지 예약 시간보다 산부인과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산모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고 의사와 만났다. “지난번에 초음파 봤을 때 없던 난소에 혹이 생겼는데 모양이 암 같아 보이진 않아서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혈액검사를 해봤는데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어요. 이렇게 나왔다고 해서 암이라는 건 아닌데.
‘안녕하세요. 2023년 국가건강검진 대상자입니다. 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빠른 시일 내에 가까운 검진기관에 예약하신 후 암 검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내온 알람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올 봄에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랑 다 받았는데, 또 할 필요는 없겠지?’ 싶어서 미뤄온 검사였다. 11월이 끝나갈 무렵 또 검사를 받으라는
4년 전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다. 인테리어 사장님이 내게 비밀 하나 알려준다는 듯 속삭이며 말했다. "옆집 아주머니가 대단하시네요. 조심하세요." 듣자 하니 인테리어 공사할 때 여러 번 민원을 넣은 모양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사하면 조심해야겠다"가 아니라 공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였다. 그래야 이웃의 미움을 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공사가 끝나
"엄마, 나 오늘 새벽 2시에나 잘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말인가 싶어 들어봤더니 졸업 기념으로 롤링페이퍼(여러 사람이 편지지를 돌려 가며 편지를 쓰는 것)를 하기로 했는데 도안을 다 그리지 못했고 논설문 쓰기 숙제도 남았다는 거다. 아이는 저녁 밥을 먹기 전부터 아이패드로 도안을 그리고 있었다. 반 친구들 투표를 통해 도안이 결정되는데 꼭 뽑히고 싶다
"나 화요일에 회식이야." 남편 말에 내가 말했다. "그럼 나도 회식해야지. 얘들아, 내일 저녁은 우리도 치킨에 회식하자." 재택러에게 저녁 회식이 얼마만인가.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2호가 신이 나서 말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6학년 전체 학생이 독서골든벨했는데 나 몇 등 했게?" "응... 글쎄..." "엄마, 나 4등 했어." "오, 완전 잘했네!
지난 9월 초. 아이는 오후 5시에 학교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평촌 학원가에 도착해서 아이를 기다렸다. 수학학원 두 곳에 상담 예약을 잡아둔 터였다. 열일곱에 첫 레벨테스트라니. 나도 애도 참 어지간했다 싶다. 사는 곳이 평촌 인근이라 주변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부터 이곳 학원으로 라이딩 다니는 엄마들이 있었다. 아이는 주로 인강
8월에 두 아이를 낳았다. 쌍둥이를 낳은 것은 아니고 4년 터울로 큰아이는 11일에, 둘째 아이는 23일에 낳았다. 큰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였다. 더위를 심하게 타시는 시어머니가 가끔씩 조리원에 오실 때면 종종 복숭아 5개가 든 상자를 내미셨다. 산모는 딱딱한 것을 못 먹으니까 물렁한 복숭아를 사 오셨던 거다. 한 박스를 다 먹을 만하면 또 사
광화문이 회사인데 생각해 보니 제대로 구경을 한번 못 해 봤다. 덕수궁 안을. 담 하나 넘는 게 뭐라고 20년이 넘도록 덕수궁 담장 밖만 빙빙 돌고 만 거였다. 그런 곳을 한여름 폭염에, 계획도 없이 우연히 가게 되었다. 고1딸과 함께. 여름방학에 한옥이나 궁에 가보고 싶다는 아이 말에 무작정 길을 나섰다. 일기예보를 보고 혹시 몰라 우산을 하나만 챙겼는데
애가 탄다. 콩국수 때문이다. 언제부터 콩국수가 이렇게 좋아졌을까? 콩이라면 쏙쏙 골라내던 나였는데... 나이 들면 사람 입맛도 변한다더니 내가 그 증인이 될 줄이야. 올 여름은 특히나 콩국수를 즐겨 먹었다. 왜 그런가 봤더니 내 입맛에 맞는 콩국수를 찾겠다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기 때문이다. 1호는 중국집. 중국집에서 웬 콩국수냐 하겠지만 이 집 콩국수
시간이 되었다고 손으로 손목을 가리켰다. 손목시계도 안 하고 있으면서. 아이는 알아들었다는 듯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내려놓았다. 대신 수학 문제집을 집어 들었다. 5분이 지났을까. 무언가를 공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찍찍 긋는 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찢는 소리도 났고 “짜증 난다”는 말도 들렸다. “아, 짜증 나.” 뭐가 짜증이 난다는 걸까. 공부
중학교 3학년 때인 지난해 봄 3월. 아이가 자퇴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였다. 이유를 듣는 과정에서 아이가 말했다.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어. 쓸데없이 규율을 강요하고. 교실에 앉아 있는 게 비효율적이고 내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 차라리 인강 들으면서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잘 된다고.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 진학을 빨리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대학 후배가 오랜만에 동영상과 사진을 보내왔다. ‘오잉? 이 옷은...’ 후배의 아이들이 입은 화이트 드레스는 내가 보내준 옷이었다. 친정 오빠 결혼식 때 한번 입은 옷인데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던 것. 마침 후배가 두 딸을 키우고 있어 나중에라도 입히면 좋을 것 같아 보냈던 기억이 났다. "우리 아이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
어쩐지 주말에는 온 식구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같이 있다 보면 좋을 때보다 지칠 때가 많다. 아침 겸 점심도 먹어야 하고 저녁도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 집에 있으니 빨래, 청소기, 옷 정리 등 뭐라도 하게 되어서다. 쉬고 싶은 데 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초6, 고1 아이들은 각자 할 일로 제 방에서 나오지 않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남
"야, 여기 맛있다. 어떻게 알았어?" "그치! 맛있지. 나 우리 회사 회식 반장이잖아." "야, 네 연차가 몇 년인데... 지금 회식 반장을 해?" "연차 많으면 회식 반장 하란 법 없냐? 난 오히려 좋은데!" 친구랑 나눈 이야기 한 토막이다. 코로나 3년을 거치는 동안 딱히 회식이랄 게 없었다. 재택이 기본 근무였던 탓도 있지만 회사를 가는 날이라 하더
이날이 올 줄 몰랐다. 2003년 입사해서 줄곧 한 회사에서 20년을 일하는 날이. 입사 10년은 제2의 사춘기였다.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있는 건가? 아직 좋아하나? 계속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해야 할까?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차고 넘쳤다. 그후로 10년이 더 지난 20년을 맞은 마음은 일 하는 나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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