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촌 학원가에서... 열일곱의 첫 레벨테스트
평촌 학원가에서... 열일곱의 첫 레벨테스트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3.10.16 08: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가 한번 해봤어] 아이와 나 사이에서 균형 잡기

지난 9월 초. 아이는 오후 5시에 학교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평촌 학원가에 도착해서 아이를 기다렸다. 수학학원 두 곳에 상담 예약을 잡아둔 터였다. 열일곱에 첫 레벨테스트라니. 나도 애도 참 어지간했다 싶다. 

사는 곳이 평촌 인근이라 주변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부터 이곳 학원으로 라이딩 다니는 엄마들이 있었다. 아이는 주로 인강으로 공부했고 학원은 다니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 하기 전 겨울방학에 '윈터스쿨'을 5주간 다닌 게 전부였다(중3 여름방학에 시작한 영어 과외는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끊었다). 1학기 때만 해도 혼자 할 수 있다고 하더니(성적이 좋아서는 아니다), 2학기 중간고사 이후 진도가 문제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빠르게 평촌 학원가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취해서 학원 한 곳을 추천받았다. 전화로 입학 문의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이는 상담조차 할 수 없었다. 학원에서 정하는 최소 진도를 마쳐야 레벨테스트의 자격이 주어진다며 아이의 수학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이 수학 진도를 내가 알고 있어야 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당장 진도를 모르니 확인하고 알려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물으니 아직 공부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했다. 그걸 벌써 공부하냐면서. 그렇다. 내 아이는 '선행'이 아니라 '현행' 중심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이는 같은 반 친구들이 추천해 준 학원 두 곳의 이름을 댔다. 이곳들은 다행히 최소 진도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평촌 학원가. ⓒ최은경
평촌 학원가. ⓒ최은경

그 학원들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받기 위해 아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큰 대로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수백 개의 학원 간판이 이어졌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아이들이 들고 나는 버스정거장 앞에서 한동안 거리의 풍경을 지켜봤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고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학원에 다녔던 아이들과 공부 양을 비교할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숙제인 만큼 어떻게든 돈을 냈으니 하게 되는 것이다. 안 하는 걸 부모들이 가만 둘 리 없을 테고. 학원을 다니지 않은 내 아이는 늘 '이만큼' 했으면 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러니 성적이...). 나 역시 학원도 안 다니는데 '그만큼'이라도 하는 게 어딘가 할 때가 많았고.

평소 노력한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온 나는 학원가에 쏟아지는 저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할 수는 없겠구나, 비교해서도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걸 바라면 도둑놈 심보겠구나. 나는 그저 아이가 공들인 시간만큼의 결과를 존중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많은 걸 바라지 말자는 다짐도 하게 됐다.

첫 번째 레벨테스트 결과는 상담 선생님의 이 한 마디로 대신하련다. "어머니, 왜 이제 학원에 오셨어요." 아이는 자신이 공부하지 않은 범위의 시험 문제라며 풀이 시간1시간의 반도 채우지 않고 실실 웃으면서 나왔다(우리 딸, 멘탈 강하네). 두 번째 레벨테스트는 공부한 내용에서 나와서 그런지 한 시간을 다 채워 풀고 나왔다(물론 풀었다고 다 맞은 것은 아니다).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저희 시험 문제가 좀 어려운 편이긴 해요. 난이도 상급 문제에서 많이 틀렸네요. 그래도 개념은 얼추 이해하는 것 같아요. 완전하진 않지만. 학생들 가운데 수학 3회독 했다는 아이도 있고, 2회독 했다는 아이들도 있지만, 회독(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보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해도 개념을 못 잡는 아이들이 있어요. 이제라도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학생의 경우는 주말반을 들어야 해요." 

'황금 같은 주말에 학원을...' 아이는 고민 끝에 주말반에 들어가기로 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두 번의 레벨테스트 후 혹시라도 기가 죽었을까 싶어 "너, 수학학원 일찍 안 다닌 거 후회해?" 물었더니 아니란다. "그때 안 해서 지금 이렇게라도 할 생각을 하는 거"라고. "내가 아낀 학원비가 얼마냐"면서 오히려 당당하다. 학원비 아껴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학원비가 덜 든 건 사실이었다. 그뿐인가. 라이딩 안 했지, 학원 알아보는 거 없었지 편하게 학부모 노릇을 한 것도 사실이고. 역시 뭐 엄마 편하라고 그랬겠냐마는. 

아이는 생각보다 학원 선생님이 괜찮은 것 같다며 만족하고 다닌다. 숙제도 그렇게 많지 않단다. 주말반이지만 평일에도 학원에 나오라고 하면 두 말 않고 가서 문제를 풀고 온다. 요즘처럼 수학 공부를 많이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했는데도 중간고사 성적이 안 오르면 다른 학원에도 한번 가보겠다는 신통한 말도 한다. 뭔가 자신에게 맞는 학원을 스스로 찾아보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오히려 좋다. 적어도 내가 나서서 다른 학원을 알아보진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아빠들은 모르겠지. 내 아이가 다닐 학원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짧게 생각하면 입시까지 3년도 안 남은 거지만, 길게 보면 2년 반 후면 학창 시절을 마치고 또 다른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것뿐이다. 돌아보면 스무살 이전의 삶은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진짜는 스무살 이후라는 생각도 든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끝났다 싶으면 뭔가 다시 시작되고 진로가 달라지기도 한다. 전공 대로 가는 사람도 있고, 전공을 바꾸는 사람도 있고, 다른 일을 알아보거나, 해외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도 있고, 조직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창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도 아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겠지. 인생이 뭐 계획대로 되던가. 그러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내려놓게 된다. 부모랍시고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해준다한들 곧이곧대로 말 듣는 아이도 아니고. 문제는 하루는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이다가도 또 하루는 내 맘같지 않은 아이 모습에 속상해서 잔소리가 나온다는 것. 내 마음도 오락가락이요, 아이 공부도 오락가락이다. 나도 아이도 다 같은 인간이기에 이러는 걸까? 나약한 인간들이 별 수 있나.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지. 아이와 엄마의 삶은 (어쩌면 평생) 서로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겠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