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한 달 만에 “나 암 아니래”
의심 한 달 만에 “나 암 아니래”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4.02.14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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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난소암 고위험군 이야기 마지막 그리고 병원기록노트

12월 27일 오후 3시 40분. 다시 찾은 분당에 위치한 대학병원. 동네 산부인과를 찾은 이후로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의사가 내 이름을 확인한 뒤 천천히 입을 뗀다.

“지난번에 MRI 검사를 하셨는데요... MRI 상으로는 암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암보다는 자궁내막증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아주 위험한 것 같지는 않고요. 신장 기능도 안 좋고 하시니까 MRI 결과가 괜찮아서 조금 두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2개월 정도 후에 나오실 때 지난번에 했던 체혈 검사에서 수치 좀 높게 나왔던 거 다시 추적 관찰하면서 변화 양상을 좀 보고 그 다음에 사진 찍어봐서 급속도로 자랐는지, 안 자랐으면 좀 더 지켜보고 위험하게 자랐다 그러면 수술해서 체크하고...”

“자궁내막증은 뭐예요?”

“자궁 안에 생리를 하는 세포가 있는데 걔가 난소에 가서 생리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피가 고이는 거고... 그런 걸 내막증이라고 해요. 커지거나 아프면 수술을 하는데 비슷한 사이즈면 두고 볼 수 있습니다. 암은 아닌 것 같아요.”

‘암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했을 때, ‘암은 아닌 것 같다’고 했을 때 두 번 웃었다. 나도 모르게 속 깊은 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좋았다. 안도의 웃음, 나 이제 살았다는 확신. 암이라고 죽는 것도 아닌데 친구 말마따나 수술 잘 하고 치료 받으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웠을까. 그 과정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나는 신장도 좋지 않으니까 수술과 항암을 피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거고.

마음을 졸이며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한 달이지만,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긴장이 탁 풀어짐과 동시에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몸의 신호들에 대해. 없던 혹들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 2022년 12월에 유방 초음파를 했고 조직검사를 했다. 악성은 아니랬다. 추적 관찰 요망. 2023년 6월에 갑상선 초음파를 했고 세침 검사를 했다. 악성 아니고 물혹이었다. 추적 관찰 요망. 그리고 2023년 12월. 난소암 아니고 자궁내막증. 역시 추적 관찰, 다음엔 대체 뭘까. 또 어떤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당하고’ 싶지 않았다. 당하는 것은 어쩐지 억울하고 화가 나는 기분이니까. 마음도 몸도 상하게 하니까. 그래서 미리 알고 싶어졌다. 내 몸의 변화를 그냥 있는 일로 치부하지 않고 사소한 것이라도 내 몸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그걸 알아차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이것은 건강염려증과는 좀 다른 것. 예민하고 세심하게 내 몸을 돌보고 싶어졌단 뜻이다. 그러다가 생각난 한 문장이 ‘내가 만난 노화’였다. 산부인과에서 난소암 고위험군이라는 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왜였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마음속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게 어쩌면 나를 지켜줄 거란 생각도. 

나의 병원기록 노트. ⓒ최은경
나의 병원기록 노트. ⓒ최은경

마흔이 넘어가자 나타나는 몸의 신호들.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나이 들어서 그래”였다.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노화가 왔다. 노화가 오고야 말았다. 누구는 45세에 무슨 노화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노화가 때를, 사람을 가릴 리 만무하다. 노화를 촉진하는 생활습관을 가진 자라면 빨리 올 수도 있다. 오죽하면 서울아산병원 의사들이 합심해서 이런 제목의 책을 냈을까. 「당신의 노화시계가 천천히 가면 좋겠습니다」, 슬로우 에이징 프로젝트.

그렇다면 나는 노화가 얼마나 빨리 온 거야. 아직 50도 안 되었는데. 그래서 달라져보려고 한다. 쓰면서 나를 돌보려고 한다. 처리하기만 급급했던 내 몸을 이제라도 잘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나중에 내 몸에 미안할 일이 없도록. 그 시작이 「병원기록」 노트다. 기억을 믿을 수 없느니 기록할 수밖에. 산부인과 방문 날 이후로 병원 진료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두 달이 지났는데 그 사이 유방내분비학과, 치과, 내과, 신장내과, 안과를 다녀왔다. 쓰고나니 헷갈리지 않아서 좋다. 진료기록만 봐도 내 몸의 상태를 인지하게 되니 신경 써서 돌보게 된다. 계속 써볼 참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나와 여행을 갔던 언니에게 해가 바뀌기 전에 이질직고 했다. “언니, 나 암 아니래”. 언니는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놀라면서도 괜찮은 건지 물었다. 괜찮다고 하면서 24년도에는 아무 생각 않고 몸만 챙기려고 한다니까 언니가 재밌는 말을 들려줬다. ”아빠 심장내과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 나이 들면 병원을 커피숍처럼 다녀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커피값 많이 벌어놔야겠다"고 했더니 ”커피값이 나날이 비싸지는 게 문제“라고 해서 둘이 또 한참을 웃었다. 암일까 봐 전전긍긍했을 때 가장 소중한 건 특별한 게 아니었다. 가족들과 함께 밥 먹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내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었다. 이런 소중한 일상을 누리기위해서라도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산부인과 진료는 2월 21일이다.

- 난소암 고위험군 이야기는 끝. 노화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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